‘PC 시장의 왕좌’였던 인텔이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전략을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카 시장으로 확대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PC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새겨 넣은 것처럼 자동차에도 인텔이 개발·생산한 칩과 솔루션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인텔 아톰 E3900(왼쪽), A3900(가운데) 프로세서의 모습. 아톰 프로세서의 구조(오른쪽)

인텔은 IoT와 스마트카에 최적화된 차세대 프로세서 ‘아톰’ 시리즈를 출시했다고 11일 밝혔다. IoT용은 아톰 E3900시리즈, 자동차용은 아톰 A3900라고 부른다.

이명기 인텔코리아 이사는 “IoT와 자동차용 프로세서는 지연시간 없이 거의 실시간급으로 데이터 처리가 이뤄져야 하고 보안성과 신뢰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며 “새롭게 출시된 E3900과 A3900은 다양한 산업 영역과 인간의 생활·업무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0.000001초마다 신호 주고 받는 ‘아톰 E3900·A3900’

인텔이 선보인 E3900은 IoT 복잡성과 빠른 개발환경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E3900은 기존 전 세대 제품에 비해 컴퓨터 성능을 1.7배 끌어올렸다. 또 소형 FCBGA패키지 및 14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실리콘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돼 작게 만들 수 있고 전력 소비량은 낮다.

인텔 아톰 E3900 프로세서의 성능표

특히 E3900D은 새로운 그래픽 엔진을 탑재해 전 세대 제품 대비 3차원(3D) 그래픽 처리 성능이 2.9배 향상됐다. 컬러 프로세싱 및 멀티 프레임 기술도 추가됐다.

성능이 낮은 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퓨터의 경우 초당 데이터 처리량이 높은 풀HD, 초고화질(UHD), 3D 영상을 볼 때 끊김현상이 발생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톰 E3900을 쓰면 끊김없이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E3900은 인텔 고유의 TCC기술이 적용돼 네트워크에서 100만분의 1초 단위의 정확성을 구현한다. TCC는 프로세서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기와 100만분의 1초마다 신호를 주고받아 데이터 전달 지연시간을 최소화하는 인텔의 특허 기술이다. 사실상 거의 실시간 수준에서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는 셈이다.

인텔이 IoT 영역 확대에 나선 배경은 IoT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코 IBSG자료에 따르면 기기와 사람, 기기와 기기 등 서로 연결되는 기기수는 오는 2020년까지 500억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기기들을 통해 발생하는 데이터 처리량은 연간 44제타바이트(44조 기가바이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약 1기가바이트 수준의 HD급 영화 44조개를 내려받는 데이터 수준이다

이명기 인텔코리아 이사가 11일 여의도 인텔코리아 사무실에 열린 기술설명회에서 아톰 E3900 프로세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텔은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갈수록 데이터 처리량이 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맞춰 아톰 A3900 프로세서도 공개했다. 이 제품은 내년 1분기 출시예정이다.

스마트카에서 프로세서는 중요한 핵심부품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기술은 자동차 외부에 위치한 다양한 센서, 카메라의 데이터를 통해 구현된다. 만약 차량 앞에 장애물이 보일 경우 환경을 인식·분석해 즉각적으로 브레이크를 잡고 스티어링휠(운전대)를 꺾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작동까지 해야한다. 1초라도 입력, 분석, 판단, 실행 등 어느 한 단계라도 늦어질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보통 자율주행차에 장착된 센서와 카메라 등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경우 초당 15~25메가바이트 수준이다. 하지만 아톰 A3900 프로세서는 초당 최대 50메가바이트 수준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만큼 빠르고 안정된 처리가 가능하다.

◆ ‘자율주행’에 빠진 인텔, BMW·모빌아이·SKT와 협력

인텔은 자율주행차 프로세서 진화를 위해 독일 자동차 제조사 BMW와 이스라엘 자동차 소프트웨어(SW) 업체인 모빌아이와 동맹을 맺었다. 이들 업체는 오는 2021년까지 자율주행차 플랫폼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BMW는 자체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플랫폼 ‘아이넥스트(iNext)’을, 인텔은 자율주행에 필요한 복잡한 연산을 담당할 100 테라플롭스(teraflops- 초당 1조번 연산)컴퓨터를, 모빌아이는 실시간으로 위치를 표시해주고 주행 환경을 모델링해주는 도로 경험 관리(Road Experience Management, REM)을 주로 개발하게 되며 3개 회사 기술을 서로 통합될 예정이다.

(왼쪽부터)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 헤럴드 크루거 BMW 그룹 회장, 암논 샤슈아 모빌아이 회장 겸 CTO

3개 회사는 2021년까지 ‘레벨5’ 수준의 자율주행자동차 구현에 필요한 기술을 구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운전자가 핸들에 손을 대거나 주의를 크게 기울일 필요가 없는 단계가 레벨3, 주행시간을 여가나 업무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는 레벨4, 차량에 운전자가 탑승할 필요 없는 단계는 레벨5다. 현재 자율주행차 기술은 레벨 3 수준에 와 있다.

인텔은 자율주행 통신 기술 중의 하나인 ‘차량 간 통신(V2X)’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V2X는 자동차와 관련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는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동차’, ‘사물과 자동차’, ‘인프라와 자동차’ 등의 통신으로 구성, 각종 센서를 이용한 감지 및 차량제어를 통해 사고를 방지한다.

권명숙 인텔코리아 사장(오른쪽)과 최진성 SK텔레콤 종합기술원장(왼쪽)이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텔은 SK텔레콤과의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텔과 SK텔레콤은 2017년 5G 기반의 커넥티드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를 실제 차량에 탑재해 실증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에서 프로세서와 함께 통신망 역시 중요한 핵심기술이다.

프로세서에서 빠르게 처리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만 실시간급의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통신망이 느릴 경우 프로세서에서 지시한 명령어가 전달이 안돼 전체적인 시스템의 성능저하를 일으키는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내년도 HAD(Highly Automated Driving·고도자율주행)이 가능한 시제품을 공개하고 자율주행 시험 운전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3개 회사가 중심이 돼 자율주행차 업계의 표준화도 추진하고 자율주행차 플랫폼도 공개해 다른 자동차 회사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