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부터 2년여간 쿠팡의 기술 부문을 총괄했던 짐 다이(Jim Dai·사진) 쿠팡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최근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짐 다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고객관리시스템(CRM)·빅데이터 전문 기업 ‘캄씨(CalmSea)’의 CEO 출신으로, 쿠팡 합류 당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쿠팡은 2014년 5월 “실리콘밸리의 역동적인 개발 문화와 고급 기술인력을 흡수해 기술 우위를 점하겠다”며 캄씨를 인수했다.

이커머스 및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M&A를 통해 채용한 고급 인력이 2년여 만에 소리 없이 회사를 떠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경우 ‘인재 인수(Acquihire)’ 시 해당 인력이 중간에 퇴사하지 못하도록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연간 수 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쿠팡의 경영 상황 등이 짐 다이의 퇴사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한다. “쿠팡의 해외 사업 전략에 변화가 생겨 쿠팡의 중국 진출을 주도했던 짐 다이가 떠났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 조용히 떠난 짐 다이… CTO 직책도 사라져

11일 이커머스 업계와 쿠팡에 따르면 짐 다이 CTO는 지난 8월 쿠팡을 떠났다. 쿠팡 관계자는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퇴직 사유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개발자 조직을 총괄하는 CTO로서 작년까지 쿠팡 신입 개발자 채용공고에 등장했던 짐 다이의 코멘트는 올해 슬그머니 사라졌다. CTO란 직책도 없앴다. 쿠팡이 지난 9월 진행한 채용공고엔 CTO 대신 ‘핵심기술총괄’이란 독특한 직책이 등장한다. 다른 직책으로 새로운 인물에게 CTO 역할을 맡긴 셈이다. 두 사람의 직책이 다르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인력 교체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쿠팡의 최고 경영진. 윗줄 왼쪽 첫 번째가 김범석 대표, 아랫줄 붉은 박스가 루디 다르마완 핵심기술총괄이다.

쿠팡 미국 홈페이지(http://www.coupang-usa.com)에 따르면 핵심기술총괄은 루디 다르마완(Rudy Darmawan)이 맡고 있다. 루디 다르마완은 올해 5월부터 쿠팡의 핵심기술총괄을 맡았고, 쿠팡에 합류하기 전인 2006년부터 2015년까진 아마존에서 근무한 것으로 나와 있다.

쿠팡 관계자는 “현재 쿠팡의 기술 부문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루디 다르마완”이라며 “CTO와 핵심기술총괄은 다소 역할이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두 직책이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짐 다이가 물러난 이유에 대해서도 최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짐 다이는 쿠팡에 합류하기 전 30여 년간 오라클(Oracle), 인포믹스(Informix) 등 글로벌 IT기업에서 DB 구축,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 조직 총괄 관련 업무를 두루 거쳤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캄씨 인수 당시 “성공적인 고객 중심 서비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캄씨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 쿠팡의 위기?… 전략 변화 관측도

C레벨(최고위급) 임원이자 핵심 기술 인력인 짐 다이의 이탈을 두고 관련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한 M&A 전문가는 “쿠팡의 캄씨 인수는 직원들의 가치를 높이 산 인재 인수로 볼 수 있는데 2년여 만에 회사를 떠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회사 하나를 통으로 채용하는 개념이라 보통 4~5년은 반드시 근무하도록 계약을 한다”고 말했다.

쿠팡 상품 매출 원가율 추이. 상품 매출 원가율이 상승하면 이익이 줄어든다.

이 전문가는 이어 “한번에 보너스나 스톡옵션을 지급하지 않고 근무 기간에 따라 분할 지급하는 게 대표적인 이탈 방지 장치”라며 “여러 명 중 한 명이라도 떠나면 전체가 보너스를 받지 못하도록 계약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악화한 쿠팡의 경영 상황이 짐 다이의 퇴사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쿠팡은 작년에 배송 인력(쿠팡맨) 고용, 물류센터 건립 등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며 5479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

쿠팡의 해외 사업 전략에 변화가 생겼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상하이 출신인 짐 다이 CTO는 쿠팡의 중국 상하이 지사를 총괄하는 등 쿠팡의 중국 진출을 주도해왔다”며 “쿠팡의 중국 진출 전략에 변화가 생겨 짐 다이가 회사를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