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혁신을 만들어내는데 재앙(disaster) 같은 존재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트럼프의 행보를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다."
9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 실리콘밸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의 중심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사실상 '반(反) 도널드 트럼프'를 외쳐 왔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실리콘밸리 창업자, 투자자와 임원 145명은 공식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형 IT 기업은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60배 더 많은 기부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힐러리의 당선을 절실하게 원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 후원금 125만달러(약 14억1300만원)를 낸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는 한때 실리콘밸리에서 '왕따'로 내몰릴 정도였다.
이처럼 실리콘밸리가 합심해 트럼프 낙선에 나섰던 이유는 그의 주요 공약이 하이테크(첨단기술)·IT 분야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TFA)을 재협상하거나 탈퇴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애플, 아마존 등이 세계 각지에 가지고 있는 유통망에 차질을 줄 전망이다. 실리콘밸리의 정책·세금제도·교육 등을 논의하는 '실리콘 밸리 리더십 그룹(Silicon Valley Leadership Group)'은 TTP를 지지한 바 있다.
트럼프는 미국 대표 기업인 애플이 미국 본토가 아니라 중국 등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들여오고 있다는 점을 거칠게 비판한 전례도 있다.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애플 제품들을 미국서 생산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공약처럼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 제품을 생산할 경우 생산단가가 최소 30% 이상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애플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트럼프는 하이테크·IT 기술자들에게 발급되는 전문직 취업비자 'H-1B 비자'를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드러낸 바 있다. 해외의 고급 인력 채용에 적극적인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은 전문직 이민 관련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실리콘밸리 내 많은 IT 기업 창업자가 이민자 출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맞춰 합법 이민 중에서도 취업이민과 취업비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이민제한 정책을 내걸고 있다.
트럼프의 ICT 산업 이해도가 힐러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는 선거운동에서 ICT 문제를 다룬 적이 거의 없고, 주로 석탄·자동차 산업 등 전통 '공장 산업' 육성과 그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의 이익에만 우선순위를 뒀다. 매년 세계 최대의 IT·가전 박람회를 주최하고 있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트럼프에게 기술 우선 전략을 발표하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세번이나 내기도 했다.
이는 힐러리가 미국 ICT 업계 인사들을 자신의 선거운동과 공약에 조언자로 활용하며 '기술과 혁신에 관한 이니셔티브'를 공약으로 발표한 것과 대조된다. 힐러리는 고급 인력의 이민 제도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도 공약에 내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