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3일 "경제·사회정책의 모든 전반에 걸쳐 국무총리로서의 지휘권을 다 행사하겠다"면서 박근혜 정부 주요 정책 기조의 변화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던 김병준 지명자는 각종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여러번 나타냈다. 국회 인준 절차를 마치게 되면 경제·사회 정책의 전권을 갖게 될 김병준 총리 지명자가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박근혜 정부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 지명자는 이같이 수정 가능성이 큰 박근혜 정부 정책 중 하나로 국정교과서 제작 움직임을 지목했다. 그는 "교과서의 국정화가 우리 사회에 합당한 것인가, 지속될 수 있는가 의문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교육부는 집필이 끝난 국정교과서 원고를 28일 외부에 공개하는 등 내년 3월 교과서 현장 적용을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지명자가 책임총리에 취임하게 되면 국정교과서 도입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경제계에서는 이날 김 지명자가 박근혜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정책 중 하나로 재정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국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과)의견이 다를 수 있고, 사드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면서 "한편으론 이쪽이 저쪽이 옳은 것 같아도 제 소신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지만, 또 한편으로 저렇게 볼수도 있겠구나 해서 (총리 지명)을수락했다"고 말했다.
김 지명자가 언급한 재정 문제는 법인·소득세 증세 문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각종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없는 복지' 구상에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사회양극화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등 복지서비스의 점진적인 확대가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을 통해 재정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김 지명자의 구상이다. 이같은 생각은 '투자확대와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증세를 해서는 안된다'는 현 정부의 조세정책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때문에 김 지명자가 '사회·경제 정책 지휘권'을 행사하는 책임 총리에 취임하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돌리는 것부터 첫걸음을 뗄 가능성이 커졌다. 김 지명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우리 국정은 대통령과 총리의 뜻이 맞다고 해도 어렵다"면서 대통령 중심의 기존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의 구상을 뒷받침하는 국정운영이 아니라 야당과 시민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국정운영을 펼치겠다는 게 김 지명자의 구상이다.
이 때문에 법인세·소득세 등을 포함한 경제·사회정책 기조가 김 지명자가 추진하는 여야정, 시민사회 간 상설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앞으로는 협치 구도가 아니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면서 "대통령과 총리 사이 의견이 다르더라도 총리 중심의 여야 거국 내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협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김 지명자의 입장이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명자와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임 지명자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과 정부 정책은 '진정성·일관성·신속성' 덕목을 갖춰야 한다"면서 "일단 만들어진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인·소득세 등 시장을 상대로한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지녀야 한다는 게 임 지명자의 철학과 김 지명자의 국정운영 방식이 충돌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기존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의 시각차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지명자를 책임총리로 내세운 것이 정부와 여당 중심의 국정운영으로는 사태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만큼 일부 정책기조 변화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야당과의 정책 협의 과정에서 기존 정책기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한 정부 관계자는 "책임 총리제하에서 경제정책을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제도를 유연하게 운용하면 현재 경제부총리가 갖고 있는 경제정책조정권 틀을 유지하면서도 총리에게 경제정책과 관련된 보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