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공시(公示)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자동차 내장 소재 전문 기업인 한화첨단소재가 1053억원을 들여 한화건설의 미국 부동산 투자법인인 한화아메리카(HADI)를 인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부동산 회사가 어떤 기업이길래 자동차 소재 기업이 인수에 나선 걸까요. HADI는 2002년 한화건설이 미국 내 부동산 투자 사업을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입니다. 설립 이후 특별한 성과 없이 1000억원 안팎 자산 규모를 유지해 왔습니다. 미국 내 콘도 등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었고, 현재는 한화가 미국 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만든 한화홀딩스 USA라는 지주회사의 지분 29%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은 매출이 없는데, 당기순이익은 매년 10억원 정도씩 냈습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이자 수익을 본 겁니다. 자동차 소재 부문에선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한화첨단소재는 HADI를 인수하면서 "부동산 사업에 진출하려는 것은 아니고, 향후 북미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할 때 현지에 법인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향후 활용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상합니다. 한화첨단소재는 이미 미국 앨라배마주와 버지니아주에 각각 생산 법인을 두고 있습니다. 보통 회사를 인수할 때는 적어도 사업 계획을 밝히지만 이번엔 계획 하나 없이 덜컥 떠안기로 했습니다. 누가 봐도 최근 2년 새 1조원 가까운 영업 손실을 기록한 한화건설을 돕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첨단소재는 일부 자동차 내장 소재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LG화학에는 배터리 안정성을 최대한 높여 폭발 위험을 낮추는 배터리 곽을 납품하기도 합니다. 올 초 멕시코에 생산 설비를 지었고, 현재 중국 충칭에 세 번째 생산 공장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규모는 작아도 알짜 회사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번 인수로 신용평가사 신용 전망이 한 단계 낮아졌습니다. 한화첨단소재의 작년 매출(7610억원) 대비 너무 큰돈을 썼기 때문에 재무 구조가 나빠졌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한화측에선 "회계상으론 매출과 순익이 늘어나는 구조로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인수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장세에 올라서던 우량 기업이 그룹 내 부실기업을 살리자고 투자할 돈을 꺼내썼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