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추가 규제가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단은 지켜보겠다'며 거래를 미루는 일이 늘었습니다."

2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거래가 끊겼다"며 "앞으로 어떤 규제책이 나오느냐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단계적 안정 시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원론적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조만간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거론되는 규제책은 서울 강남권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나 전매 제한 기간 연장, 청약 재당첨 금지 등이다.

본지가 21일 학계와 연구원, 시장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현재 부동산 시장 규제가 필요한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8명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투기 세력을 걸러내는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만 비정상적 과열

전문가들은 모두 현재 부동산 시장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비정상적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개포동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3~4개월 사이 수천만원이 오르는 등 그동안 시세가 무섭게 뛰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최근에는 10억원 가까운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서울 압구정동 재건축 아파트를 미리 사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30~40대의 문의를 많이 받는다"며 "이러한 과열 조짐은 이제 강남을 넘어 강북권 재개발 아파트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과열 양상이 서울 강남권에만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와 신규 분양 시장을 제외하면 서울 기존 주택 값은 올해 들어 2% 상승에 그치는 등 과열로 보기 어렵다. 대구나 경북·경남, 충북·충남 등 지방은 올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문제가 되는 것은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기 세력"이라며 "실수요를 죽이지 않고 투기 세력을 잡는 족집게식 선택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너무 세고, 청약 재당첨 금지 너무 약해"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규제 중 가장 강도가 센 것은 '강남권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다. 강남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면 아파트 계약 후 입주할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하고, 5년간 청약 재당첨 금지,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 사실상 금지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너무 강도가 세다"고 답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강남만 잡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본격 규제한다'는 신호로 여겨져 전국 부동산 시장이 냉각할 수 있다"고 했다. '청약 재당첨 금지'와 '청약 1순위 자격 요건 강화' 규제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현재 전국적으로 청약 1순위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1순위 자격을 강화하고 재당첨을 금지한다고 해도 효과가 작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꼽은 규제는 '전매 제한 기간 연장'이다. 본지가 설문조사한 10명 중 5명이 "현재 서울 민간 아파트는 6개월인 전매 제한 기간을 1년 이상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송인호 KDI연구위원은 "현재 서울은 6개월인 전매 제한 기간을 입주 때까지인 30개월로 늘려야 투기 세력이 청약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이러한 추가 규제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추가 규제는 시장의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냉각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의열 주택협회 정책실장은 "불법 분양권 시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거래 당사자 간 금융거래 내용을 증빙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투기 세력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