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과 행성 어디엔가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까. 인류가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질문이지만, 아직 명확한 답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지구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지구가 생명체의 첫 번째 고향이 아닐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평균 온도가 457~462도에 이르는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행성인 금성(金星)에서 과거 생명체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0억 년 전 금성은 거주 가능한 행성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 비행센터 마이클 웨이 박사는 17일(현지 시각) 미국 패서디나에서 열린 '미국 천문학회'에서 "각종 관측자료를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약 30억 년 전 금성에는 깊이 2000m에 이르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했고, 구름이 끼거나 비가 내리기도 하는 온화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수십억년 전 금성 화산 활동을 담은 상상도. 과거 금성은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온화한 기후였고, 화산 활동과 같은 지각변동도 빈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문학자들은 금성을 '지구의 사악한 쌍둥이'라고 부른다. 두 행성의 크기와 질량, 중력 등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금성의 질량(質量)은 지구의 82%, 중력은 91% 정도 된다. 또 지름도 금성이 지구보다 고작 600㎞ 정도 작을 뿐이다. 하지만 금성 표면은 중금속인 납조차 녹아버릴 정도로 뜨겁고 대기는 강한 산성 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기압 역시 지구의 90배가 넘는다. 웬만한 물체는 곧바로 찌그러져 버린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금성은 오래전부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웨이 박사 연구팀은 46억 년 전 태양이 처음 형성되고 남은 암석과 먼지 등이 뭉쳐져 금성이 탄생한 뒤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탄생 초기 금성과 지구는 거의 흡사한 환경으로 발달했다. 특히 지구 상에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가 막 등장하던 30억 년 전 금성 역시 적당한 온도와 풍부한 물이 있었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것처럼 금성에서도 미생물과 같은 초기 생명체가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웨이 박사는 "29억 년 전 금성 표면의 온도는 약 15도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7억1500만 년 전에도 15도 정도로 지구와 거의 유사한 환경이었다"면서 "이 긴 시간 동안 생명체가 탄생했다면 지구 상의 생명체처럼 진화도 거듭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무인탐사선 '아카쓰키(새벽)'를 금성 궤도에 진입시켰던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사토 다케히코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생명체가 살았는지 아닌지는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금성의 과거가 지구와 유사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산화탄소·자전이 죽음의 행성 만들어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금성은 지구와 달리 '죽음의 행성'이 됐을까. 과학자들은 금성의 느린 자전(自轉)과 이산화탄소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태양은 내부의 핵융합 반응으로 인해 수십억 년에 걸쳐 점점 더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어 왔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의 자전을 하는 것과 달리 금성은 243일에 한 바퀴를 돈다. 같은 부분에 오랫동안 태양 에너지를 쪼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태양 에너지가 점차 세지면서 금성의 표면 온도는 계속 상승했고 바다는 수증기가 돼 증발했다는 것이다.

특히 금성의 대기에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있다. 이 이산화탄소와 증발된 수증기가 금성을 거대한 온실로 만들면서 태양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쌓였고 그 결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웨이 박사는 "언젠가 금성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착륙선이 개발된다면 금성 내부를 조사해 과거 생명체가 만들어낸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