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부동산 버블: 중국
#베이징 동북쪽 외곽지역인 왕징(望京) 초입에 있던 구멍가게와 인근 식당이 이달 초 한 부동산 중개업소로 재단장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베이징은 중개업소 간판과 정장을 입고 전단을 건네는 중개업소 직원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실감하게 한다. 대낮에 왕징 거리에서 마주치는 정장 입은 젊은이 중 열에 아홉은 중개업소 직원이다.
#동료 특파원이 사는 베이징의 방 3개짜리 150㎡(약 45평) 임대 아파트 주인이 집을 1500만위안(약 25억5000만원)에 내놓았다. 인근 아파트가 최근 1380만위안(약 20억7000만원)에 팔렸다는 소식에 영향을 받았다. 2007년 150만위안(약 2억5500만원)을 주고 분양받은 이 주인은 당시만 해도 구매 자금의 80%를 은행 대출받을 수 있어서 자기 돈은 30만위안(5100만원)만 냈다.
◆ 부동산 '공황' '광풍' 표현 자주 등장
올 들어 중국 언론의 부동산 기사에는 '공황' '광풍'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베이징 올림픽 개최 한 해 전만 해도 중국 부동산 가격이 최고점이라는 얘기가 돌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상하이에 추가 주택 구매를 위해 가짜 이혼을 하느라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현지 주민에게만 주택 구매를 허용하는 규제 탓에 위장 결혼까지 하는 사례가 다시 늘고 있다는 뉴스도 쏟아진다. 항저우에서는 선착순 분양 소식에 고객들이 몰리면서 개발업체 문짝이 떨어져나가는 동영상이 돌기도 했다.
선전에서는 9월 말 한 채 88만위안(약 1억4900만원)하는 6㎡ 규모 쪽방 아파트 9채가 2시간 만에 팔렸다가, 당국이 판매 중단 명령을 받았다. 영국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롱뷰이코노믹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선전이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이어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2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4개)에 불던 부동산 광풍은 2선 도시(성도 포함해 중급 이상 36개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10월 12일까지 1선 도시 주택 토지원가는 전년 동기 대비 72%, 2선 도시의 경우 86% 급등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급기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부동산 투기와 전면 전쟁에 나섰다. 최근 리 총리는 "주택 가격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집값을 잡지 못하는 지방관리들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우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했다.
내년 가을 공산당 지도부를 재구성하는 당대회 이전에 지방정부의 고위급 인사이동이 이뤄질 예정이어서 지방정부 지도부는 긴장 상태다. 10월 1일 시작한 국경절 연휴 전후로 20개가 넘는 지방정부가 투기 억제책을 쏟아낸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팡정(方正)증권은 국경절 전후에 쏟아진 잇단 부동산 투기 억제책으로 매매 열기가 급속히 식고 있다며 18개월 연속 오르던 이번 부동산 가격 상승국면이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국경절 연휴 6일간(10월 1~6일) 신규 주택 매매량은 204채로, 2015년 같은 기간(319채)에 비해 36% 감소했다. 전월 같은 기간(9월 1~6일)에 비해선 73.7% 격감했다.
◆ "중국 부동산 버블은 작년 증시 버블 데자뷔"
하지만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투기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보인다. 국경절 연휴에 산시성 시안에서 주택을 둘러본 고객 가운데 시안 후커우(戶口·호적)를 갖지 않은 외지인 비율은 20%로 이들은 "시안 집값은 '배춧값(싸다의 의미)'"이라는 말을 연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상하이에서 온 고객이 시안 아파트 12채를 싹쓸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네이멍구 등 일부 내륙지역의 중소도시는 '유령도시'로 불릴 만큼 부동산 재고가 쌓여있다.
중국 당국은 불법 부동산 투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주택도시건설부는 지난 4일 베이징· 상하이·선전·쑤저우 등지의 45개 부동산 개발 중개업체의 허위 광고 등의 법규 위반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청두에서 아파트 60채를 한 번에 매도한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업체의 분양을 중단시켰다.
부동산 거품이 지난해 붕괴된 증시 거품의 데자뷔라는 지적도 나온다(JP모건자산운용 타이후이 수석시장전략가). 2014년 6월 13일 2070.71을 찍은 상하이종합지수는 2015년 6월 12일 5178.19로 최고점을 찍은 뒤 현재 3000선 전후를 맴돌고 있다. 중국 증시 거품 붕괴 당시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신용융자 잔액이 시가총액(유통주 기준)의 12%를 차지한다"며 "이는 세계 증시 역사상 어느 나라의 증시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투기 억제가 자칫 부동산 경기를 급랭시켜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동시에 투자 수요를 늘리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는 내년 3월 부동산 보유세 입법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하이·충칭 등에 시범 적용해온 부동산 보유세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투기 억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달 중순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매년 1300만명 이상의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에게 도시 후커우를 부여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농민공의 도시 정착을 위한 것으로 부동산 수요층을 두껍게 할 것으로 보인다.
◆ 플러스 포인트: 중국 부동산 관련 부채 급증
지난 8월 중국 은행의 신규 대출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86억 위안이 부동산 담보대출과 연관성이 높은 중장기 가계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이 중국 부채 급증의 주범인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달 중순 5개 국유 상업은행과 12개 민간 상업은행 책임자들을 불러 부동산 대출 회의를 소집했다.
부동산개발업체가 발행한 채권 규모도 올 들어 8월 초까지 7588억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2% 증가했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개발업체의 채권 발행 규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앞서 자기 자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부동산 구매 계약금까지 P2P(개인 대 개인) 대출을 통해 불법 대출받는 게 성행하자 올 3월 중국 당국이 이에 대한 규제에 착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