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국내 증권사를 그만둔 김영한(42)씨는 3개월 전 경기도 수원에 10평 남짓 되는 까페를 오픈했다. 퇴직금에 은행 대출까지 합쳐 대학교 근처에 가게를 마련했는데 얼마 전부터 손님이 많이 줄었다. 오픈 행사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1500원씩 팔다가 500원 올렸기 때문인 것 같다. 당장 손에 쥐는 돈이 줄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던 생각도 접었다. 가게 근처에 또 다른 까페가 생긴다는 소문이 있어 요즘 잠이 안 온다.

지난달 중순 점심시간인데도 음식점이 늘어선 서울 서초구의 한 거리가 한산하다.

자영업자가 또 다시 급증하고 있다. 은퇴 후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폐업을 하는 케이스가 속출하며 작년부터 자영업자 증가세가 잠잠했는데,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 수출 부진과 구조조정 여파로 실업률은 고공행진하고 취업자 수는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도 못 쓰는 영세 자영업자들만 증가하고 있어 경제에는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 8~9월에만 16.5만명 증가…알바도 없는 영세업자가 89%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만6000명 증가했다. 증가 폭은 2012년 9월(11만1000명) 이후 4년 만에 가장 컸다. 자영업자 수는 지난 2014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15만7000명이 줄었는데 8월에 증가한 데 이어 9월에도 늘었다.

심원보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자영업자들이 몰려있는 도소매, 숙박음식점업의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것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면서 "직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은퇴해 자영업에 뛰어든 것일 수도 있고 취업이 안된 사람들이 가게를 오픈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9월 두 달 간 증가한 자영업자 수는 16만5000명에 달한다. 이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89%인 14만7000명에 달했다. 사업장 규모가 작거나 경영 여건상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데 주로 영세자영업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두 달 간 1만7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한카드의 조사결과 자영업 업종 중에서 노래방, 옷 가게, 한식당, 중식당의 폐업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서 자영업자가 많이 늘었다. 8~9월에 10만5000명이 증가해 전체 자영업자 증가분의 64%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경상남도에서 7만6000명, 대구에서 5만8000명 증가했다. 서울은 작년 7월부터 자영업자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이 폐업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

영세 자영업자 증가는 최근의 경기 여건, 고용 한파와 무관하지 않다. 고용창출 효과가 다른 업종에 비해 높다고 평가 받았던 제조업의 취업자 수는 7월부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소하고 있다. 7월에 6만5000명, 8월에 7만4000명, 9월에 7만6000명 줄면서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창업 문턱이 낮아 자영업자들이 주로 몰리는 숙박 및 음식점업의 경우 취업자 수가 지난 6월부터 매달 10만명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 폐업한 자영업자 23%가 식당 운영…자영업자 대출 급증 '뇌관'

문제는 자영업자가 몰리는 음식점과 소매업의 폐업율이 높다는 점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에 문을 닫은 자영업자 10명 중 4명 이상이 식당이나 편의점, 옷가게 등 소매업을 운영했다. 폐업 사유는 '사업 부진'이었다. 서울시에서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 중 절반은 3년 안에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 되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사가 잘 안돼 퇴직금이나 저축 등 보유자산을 까먹은 자영업자들이 운영자금과 생활비를 금융권에서 조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사업자금 중에서 은행, 보험회사, 상호신용금고 등 금융권에서 조달하는 자금 비율은 2013년 27.9%에서 2015년 32.2%로 늘었다. 스스로 영위한다는 자영업자 본래 뜻과는 다른 상황이 된 것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인사업자가 제2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은 6월 말 기준 39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6월(29조8000억원)보다 9조9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새 대출 규모가 33.2% 폭증한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의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자영업자의 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년퇴직을 한 베이비붐 세대의 소규모 창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자들이 자영업으로 대거 유입될 경우 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며 "경기회복세 둔화,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소매판매와 음식업종의 업황도 긍정적이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자의 경우 폐업하거나 수입이 줄면 재무건전성이 임금근로자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다는 점이 문제다.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 자산은 상용근로자보다 많지만, 평균 부채도 그만큼 많다.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2013년 기준 자영업자가 74.6%로 상용근로자의 56.2%보다 상당히 높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은 자영업자가 26.3%, 상용근로자가 17.2%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