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의 거제고용센터에는 요즘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오는 사람이 하루 40명 안팎에 이른다. 작년 이맘때 20명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체감 실업자'가 배로 늘어났다. 거제고용센터 관계자는 "이 지역 조선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실업급여 신청자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타 지역 고용센터에서 직원들을 파견받아 일할 정도"라고 말했다.
부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이모(37)씨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씨의 회사는 직원이 100명쯤인데 올여름 이후에만 1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현대중공업에서 주는 일감이 줄어들자 회사가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회사를 나가게 되면 눈높이를 한참 낮춰도 취업할 곳이 마땅히 없을 것 같아 무조건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는 데다 조선·해운업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고용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 업계 파업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과 같은 돌출성 악재(惡材)까지 겹치면서 가을 고용시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9월 실업률 11년 만에 최고치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9월 실업률은 작년 9월보다 0.4%포인트 증가한 3.6%였다. 9월 기준으로는 2005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다. 9월 취업자 증가 폭(작년 9월 대비)은 26만7000명으로 지난 5월(26만1000명) 이후 가장 작았다. 9월부터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 시작하기 때문에 고용 시장에 훈풍이 불어야 하지만 반대로 취업자는 줄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고 있어 '고용 절벽기'가 되고 있다. 특히 장기(長期) 실업자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6개월 이상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장기 실업자는 1년 전보다 5만5000명 늘어난 16만7000명을 기록했는데, 증가 폭이 9월 기준으로 1996년 이후 최대치다.
지역별로는 구조조정에 들어간 조선업·해운업이 주력 산업인 부산·경남·울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부산은 9월 실업률이 작년 2.6%에서 올해 4%로 급등했다. 상승 폭이 전국에서 가장 크다. 경남 실업률도 1년 사이 2.3%에서 3.4%로 늘어났고, 울산도 3%에서 3.5%로 증가했다. 국내 조선업계 종사자는 20만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내년까지 많으면 6만명가량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거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31)씨는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근처 식당이 많이 문을 닫았고, 결국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 일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현대차 파업과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도 고용에 악영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제조업 종사자 숫자가 계속 줄고 있다. 9월에 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443만6000명으로 1년 사이 7만6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사이 17.2%에서 16.7%로 감소했다.
최근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는 현대자동차 파업과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 사태도 장기화될 경우 고용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두 회사는 한국 경제의 심장 격인 데다, 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는 348곳이며 임직원은 20만명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국내외 협력업체가 2700여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현대차나 삼성전자, 그리고 협력업체들이 매출 감소를 겪는 정도지만 최근 사태가 장기화되면 어쩔 수 없이 인력을 줄일 가능성도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마저 추락하면 고용 한파
그나마 고용을 늘리는 분야는 건설·부동산 업종이다. 저금리 기조로 불붙은 부동산 경기 덕분에 부동산업과 임대업 종사자는 작년 9월 54만2000명에서 올해 9월 57만7000명으로 3만5000명 늘었다. 건설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도 183만8000명에서 187만9000명으로 4만명 넘게 늘었다.
건설경기는 고용 지표가 급격하게 나빠지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부동산 호황이 멈출 경우 심각한 고용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함이 드리워져 있는 상황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아파트 공급 과잉 등으로 현재의 부동산 경기 활황세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며 "집값 상승세가 꺾여 건설업이 주춤하면 다른 산업에 파급 효과가 큰 건설업의 특성상 일자리를 잃는 사람 숫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