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물가와 체감물가 괴리 커…소비자물가지수 품목 현실과 차이
한은, 존재 이유 '물가 안정' 책임 회피 모습에 내부에서도 질타 목소리

지난 6일 김장을 하기 위해 서울 남성시장을 찾은 강리연(33)씨는 배추 가격에 깜짝 놀랐다. 한 포기에 9000원. 작년 이맘 때는 3000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강씨는 한참을 망설이다 반찬 전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배춧값이 폭등하면서 김장에 꼭 들어가야 하는 고춧가루 등의 가격도 2배 이상 올랐다. 김장은 포기했다. 강씨는 "정부가 물가를 이렇게 관리해도 되냐"고 성토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오는 13일 물가 설명회를 연다. 현재 물가 수준이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크게 밑도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향후 물가 전망과 물가목표 달성을 위한 통화정책 운영방향도 제시할 계획이다. 벌써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 설명회다. 하지만 7월 설명회와 마찬가지로 저물가를 타개할 마땅한 해법이 없어 이 총재의 고심이 깊다는 게 한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가당국은 저물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국민들은 고물가라고 생각한다.
한은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달 조사하는 '물가인식'은 지난 8월 2.4%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공식 발표한 8월 물가 상승률 0.4%와는 2.0%포인트나 차이가 있다. 물가인식은 지난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을 담은 지표다. 9월 소비자물가가 1.2% 상승하며 전달보다 크게 상승하긴 했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인식과는 여전히 적잖은 괴리가 있다.

물가를 두고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 차가 큰 것도 이례적이지만, 너무 높은 물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낮은 물가를 우려하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껏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걱정한 적은 없다. 대통령과 정부, 한은에 이르기까지 물가 걱정은 곧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뜻했다. 대체 이런 일은 왜 발생하는 걸까.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괴리 큰 통계물가와 체감물가…주택 가격 물가지수에 포함 안돼

전문가들은 측정의 문제와 심리적 요인을 든다.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기준에 문제가 있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심리가 실제 통계와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①평균의 함정
소비자물가는 가계소비 지출에서 비중이 큰 481개 대표품목의 가격변동을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5년마다 개편하는데 최근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종이사전처럼 소비자들이 더 이상 자주 소비하지 않는 품목들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 무상지원이 확대된 예방접종비 등도 포함돼 있다.

반면 최근 소비자들이 자주 소비하는 호텔 등 휴양시설 이용료, 파프리카, 블루베리, 휴대폰 수리비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조사대상 지역에 세종시가 빠져 있는 문제도 있다.

물가 지표를 공식 발표하는 유경준 통계청장은 '평균의 함정'이라는 이론을 사용해 체감물가와 실질물가의 괴리를 설명했다. 소비자물가는 전체 가구가 소비하는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측정되지만, 개별 가구는 이 품목 중 일부만 소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름값 하락이 저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자동차가 없는 가구에서 느끼는 물가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또 취학자녀가 없는 가구의 경우 교육물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소비자물가에 포함된 항목들과 소비자가 실제 소비하는 품목은 다르다"며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을 구매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높다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특히 "소비자 물가를 측정하는데 있어 주택 가격 상승 등 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을 물가 상승으로 오해해서 물가 상승 폭이 크다고 여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 역시 "대중들은 집값 등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올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집값처럼 가계 경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이 지수에 빠져 있다 보니 최근 체감물가와 통계물가간 인식 차이가 커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에 전세와 월세는 포함되지만 주택 가격은 제외돼 있다. 한은은 "투기적 수요로 주택 가격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고, 주택 가격에 대한 정보가 확실치 않아 주택 가격을 물가지수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②가격인식의 비대칭성
심리적 요인도 체감물가와 실질물가 사이의 차이를 벌리는 데 역할을 한다. 소비자물가는 가격 상승과 하락을 동일하게 반영하지만 체감물가는 가격이 올라간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과의 가격이 10% 오르고, 바나나의 가격이 10% 하락한 경우 소비자들은 사과의 가격이 오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가격 인식의 비대칭적 성향이다. 한은은 "소비자들이 가격이 올라갈 때는 실제보다 두 배 오른 듯이 느끼고 내려갈 때는 원래 가격만큼 체감한다"는 분석이 담긴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③여러번 구입하는 물건이 더 크게 보이는 현상
구입 빈도도 체감물가에 영향을 준다. 소비자물가는 구입 빈도를 감안하지 않지만 체감물가는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콩나물과 TV의 경우 자주 구입하는 콩나물 가격이 오르고, TV 가격은 내려갈 경우 소비자물가 변동은 적지만 체감물가는 크게 오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소비를 줄이기 힘든 품목 가격이 오른 점도 체감물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장바구니 물가의 대표 지표인 '신선식품지수'는 9월 한 해 전에 비해 20.5%포인트나 올랐다. 이는 5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특히 한 달 전과 비교해봐도 15.4%포인트나 올랐는데, 이는 8월에 1만원 주고 사던 식품을 9월에는 1만1540원을 지불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④소득증가세의 둔화
최근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소득 수준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점도 소비자들의 체감물가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경기 침체 속 소득 증가율이 워낙 낮아서 물가 수준이 높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소득이 늘지 않으니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살람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 뾰족한 해결책 없는 한은…"책임 회피" 비판도

체감물가와는 큰 괴리가 있지만 지금 우리 물가 수준이 낮은 것은 맞을까. 초저금리 상태가 장기화되면 돈이 풀려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정상이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 부진과 수요 부족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황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물가 현상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라면서 "저성장 속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세계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족과 함께 국제유가 하락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올 초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40달러대 후반까지 올라섰지만, 1년 전에 비해선 여전히 10달러 이상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또 여기에 더해 세계적인 경기부진으로 주요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정책금리를 낮추다보니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한국의 원화 강세로 이어졌고, 이때문에 수입 물가가 하락해 저물가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은이 저물가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다. 한은이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준금리 인하뿐이다. 하지만 이미 현재 금리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인 1.25%다. 연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고 국내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시장 과열 등으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들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설령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물가상승 효과가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한은에게는 큰 부담이다. 한은이 계량모형을 이용해 금리 인하와 물가 상승 효과를 분석한 결과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씩 금리를 인하했지만, 물가 상승률 효과는 각각 0.21%포인트, 0.16%포인트에 그쳤다.

과거처럼 경제성장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환율 변동으로 물가가 불안한 경우라면 금리를 조정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최근처럼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으로 나타나는 저물가는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서울 소공동 본관 1층에 한은 설립 목적 이유인 '물가 안정'을 돌로 새겨 놓았다.

한은이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첫 번째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장 전망치가 너무 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당초 1월 전망 때만 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1.4%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4월 전망치 발표 때는 1.2%로 낮췄고, 7월에는 다시 1.1%로 내려 잡았다. 이 총재는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평균 1.0%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히며 전망치를 또 낮췄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지난 7월 열린 물가설명회에서 "물가 안정이 한은만의 책임이라고 하는 시각은 잘못됐다"라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총재 뿐만 아니라 많은 한은 고위 임원들은 계속해서 "물가 안정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한은에게 묻는 것은 과하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 사에에도 비슷한 견해는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저물가는 국내외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원자재 수요 감소로 나타는 현상이라 꼭 한은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며 "경제의 힘이 떨어지는 게 주된 원인"이라고 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도 "저물가는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행법 1조1항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물가 안정에 대한 책임이 한은에 있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런 모습에 한은 내부에서조차 이 총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금통위원은 "한은이 물가 안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설립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한은이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을 지라도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당국으로서 가장 중책을 짊어진 것은 맞다"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는 "한은만의 책임이 아닌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은이 장기 침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 해결 제시를 하지 못하는 채 금리를 내리고 돈만 풀어 부동산 투기로 거품이 생긴 점에 대해서는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