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에너지 벨트’(Smart Energy Belt)로 동북아시아 전역을 잇자”

지난 9월 9일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신재생에너지재단(REI) 설립 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에너지로 동북아시아를 잇는 ‘스마트 에너지 벨트’를 만들자”며 동북아시아 전력망을 통합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9월 30일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손 회장은 동북아 인접국 간 전력망을 하나로 잇는 ‘아시아 슈퍼그리드(Asia Supergrid)’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전력 분야를 비롯해 사물인터넷(IoT)·인터넷·인공지능(AI)·모바일·스마트로봇 등에 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중국-한국-일본 등 인근 국가간 전력망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논의가 활력을 얻고 있다. 일본의 통신회사인 소프트뱅크와 한국의 전력 회사인 한국전력이 주도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가간 전력망이 연결되면 땅 값이 싼 몽골 등지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고 남는 전력은 다른 국가에 팔 수 있다.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국가들은 저렴하게 에너지를 수입하는 등 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에너지 영토 확장”…같은 꿈 꾸는 日 손정의- 韓 조환익

동북아 슈퍼그리드 프로젝트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 발생 이후 전력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인적인 사업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손 회장은 당시 몽골의 광활한 고비 사막 지대에 풍력과 태양광 등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해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하고, 국가간 통합된 전력망으로 전력을 거래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자는 구상을 내놨다.

한국에서는 2011년 9월 전 국민이 전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9·15 대정전’ 사태가 터지면서  독점적인 전력 사업 구조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은 전력시장을 개방하고 전력망을 공유하는 ‘스마트 에너지 벨트’(Smart Energy Belt)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전은 1961년 출범한 이래, 한전의 발전 5사가 운영 중인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구입하고, 이를 다시 공장과 가정 등으로 파는 형태로 전력 판매를 독점해왔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그러나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기 위해 내수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전의 독점체제를 스스로 깨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신재생에너재단(REI) 국제심포지엄에는 동아시아 각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좌측부터 토마스 코베리에르 REI 의장, 올렉 부다르긴 러시아 전력공사 사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류젠야 GEIDCO 사무총장,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마이클 리이브리히 블룸버그 신에너지 파이낸스 회장, 애머리 로빈스 하버드대 교수.

조환익 사장은 “파리 신기후체제 이후, 전통적인 에너지 소비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한전의 업(業)도 바뀌고 있다”며 ”국내에서 전기만 독점적으로 팔아서는 승산이 없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을 통해 해외로 진출해 에너지 신산업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전력시장 개방을 비롯한 에너지 신산업 분야는 연구개발(R&D)과 실증, 보급, 상용화와 하위 경쟁 등이 동시에 일어나는 독특한 발전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급변하는 흐름에 하루 빨리 뛰어들어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고 말했다.

한전은 이 같은 판단 아래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지속적으로 면담하며 동북아 전력망 공유 등 ’에너지 영토 확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몽고에 7기가와트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조환익 사장은 올해 8월 대통령 경제사절단으로 몽골을 방문해 울란바타르(Ulaanbaatar)시에서 일본 소프트뱅크(Soft Bank), 몽골 에너지 개발회사 뉴컴(Newcom)과 함께 몽고 지역 신재생에너지 개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생산과 IT 분야의 융·복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몽골, 중국, 러시아 등 양자간 협력 논의와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네가와트 파트너십(Negawatt partnership⋅발전량을 늘리지 않고도 절전이나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전기를 절약해 재판매)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아시아 스마트 에너지벨트에 대한 후속 논의는 11월 나주에서 한전이 개최하는 BIXPO에서 이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전력시장 개방으로 신사업 기회 쏟아진다... IT 기술과 결합하는 전력시장 가능성 커져

전문가들은 ”동북아 전력망 공유 논의를 계기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었던 전력 공급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생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미 전력 판매 시장이 개방된 일본의 경우, 통신사인 소프트뱅크가 전력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소프트뱅크는 일본의 최대 전력 회사인 도쿄전력과 함께 전기, 통신, 인터넷서비스를 함께 묶은 결합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8월 미와 시게키(Miwa Shigeki) 소프트뱅크 전략기획실장, 조환익 한전 사장, 엔크볼트 냠자브(Enkhbold Nyamjav) 뉴컴 사장이 몽골의 신재생사업 공동개발 및 투자협력 MOU를 체결하고 있다.

한전도 소프트뱅크처럼 전통적인 전력 판매 사업에만 머물지 않고, IT기술과 통신 등을 결합해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환익 사장은 지난 4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전이 보유한 철탑 4만2000개, 전주가 880만개에서 얻는 데이터만해도 2억6000만건이 넘는다”며 “기기와 전선에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달아 먼지, 습도, 진동 등을 측정하면 통신업 등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신시장이 열린다”며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력 시장이 개방되면 국내에서는 한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들은 한전의 전력망과 ICT를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서 다양한 사업 모델을 앞다퉈 내놓을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는 '발전→송배전→판매' 단계로 이어지는 기존 전력망에 ICT를 접목한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을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력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전보다 싼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자가 나오긴 어렵다. 대신, 통신사 등이 결합 상품을 만들면 요금 할인 혜택을 받거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한 친환경 전기를 선택할 방안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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