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약가치 논란'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연구개발비를 회계처리하는 과정이 상당히 불투명할 뿐더러 해외 제약사들에 비해 과도하게 신약 가치를 부풀리는데도 그게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다.

신약 개발은 '확률의 게임'이라고 한다. 신약 개발이 중도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한미약품 사례처럼 기술해지 사례는 또 나올 수 있다. 이번 주가폭락 사태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제약사 주가를 부풀리는 주범은 '마일스톤'이라는 것이다. 마일스톤은 신약의 임상시험 초기 단계에서 기술판매 계약을 체결한 뒤 결과가 진척될 때마다 받는 수익을 의미한다. 신약을 기술수출 했다고 하더라도 임상실험이 실패하면 마일스톤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약품 연구원들이 신약 연구개발(R&D)에 열중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확률의 게임'이라고 일컫는다.

◆ 신약 마일스톤 기정사실화...샴페인 먼저 터트린 증권사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미국 제넨텍사와 표적항암제(HM95573)의 한화 약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금은 8000만달러(889억원), 단계별 마일스톤은 8억3000만달러(9244억원)다.

신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4단계에 걸친 임상실험을 거쳐 판매까지 길게는 5년 이상이 소요된다. 문제는 임상에 성공해 상용화되는 신약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미국바이오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모든 의약품 후보 물질의 임상 1상부터 품목 승인까지의 성공률은 9.6%에 불과하다.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 후보 물질이 최종 의약품으로 허가 받는 확률도 49.6%로 절반에 못 미친다.

국내 제약사의 신약성공률은 이보다도 더 낮은 500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한미약품 등 제약사와 이에 대한 실적을 평가하는 증권사는 신약의 미래가치를 평가할 때 마일스톤을 기정사실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개발마일스톤 뿐만 아니라 최종 신약 승인 뒤 시판에 들어간 후 일정매출이 달성됐을 때 받는 판매마일스톤, 상용화된 후 발생한 매출에 대한 로열티인 러닝로열티까지 모두 추정실적에 포함한다.

실제 한미약품이 지금까지 9조원의 신약 기술수출을 했다고 밝혔지만 현재 매출로 인식된 신약 매출은 약 5000억원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가 된 폐암신약 '올무티닙(HM61713)'도 베링거인겔하임사와의 기술수출 계약금액은 약 8100억원(7억3000만달러)으로 공시됐지만 계약해지 이후 실제 받은 금액은 6500만달러(720억원)로 10분의 1 이상 축소됐다.

그러자 주요 증권사들은 한미약품 목표주가를 부랴부랴 낮췄다. 현대증권은 122만원에서 71만원으로 51만원 41.8%가량 내렸으며, 유진투자증권은 109만원에서 74만원으로, 대신증권은 100만원에서 70만원 등으로 급히 하향조정 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권사들의 주가 부풀리기 보고서는 한미약품과 같은 급작스러운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자세한 개발전략을 공개하지 않기때문에, 사실 신약의 현재가치 뿐만 아니라 미래가치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신약 성공률 낮은데...해외 제약사는 '개발비=비용', 국내 제약사는 '개발비=자산'

국내 제약사들의 개발비 회계처리 기준이 불투명한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보통 연구개발비는 회계적으로 비용과 자산으로 나눠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정통 제약사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나기까지 신약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을 자산화하지 않는다. 이는 글로벌 제약업계의 전반적인 회계처리 방식이다. 자산은 미래에 수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신약개발이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반면 국내 중소형 제약사들은 신약이 성공하기도 전에 개발비를 자산으로 인식한다. 마치 연습생이 아이돌 스타가 되기도 전에 엔터테인먼트 자산으로 삼는 식이다.

수익이 나지 않은 신약 개발을 자산으로 처리하면, 이는 신약개발의 미래가치를 기정사실화해 결국 주가 뻥튀기로 이어진다. 신약 개발이 실패하면 주가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투자자들의 손실로 돌아가게 된다.

주식시장에 정통한 한 회계사는 "해외 제약사들은 수익모델이 탄탄하기 때문에 개발비를 비용으로 인식해도 이익을 낼 수 있어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한다"며 "반면 신약개발만 하는 국내 중소 제약사들은 수익모델이 좋지 않기 때문에 개발비를 비용으로 인식하면 재무제표가 악화되고 주가도 하락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약개발 실패시 계약금 반환요건 등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도 사업보고서 주석에 일부 기재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등 불투명하다. 제약사들은 계약금을 3년 동안 나눠서 수익으로 인식하거나 어떤 때는 1년에 한꺼번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정확한 회사의 실적을 추정하기 어렵다.

제약사들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문감사인 제도를 도입해 제약 등 전문 업종에 대한 회계 감사를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분식회계는 건설, 조선, 제약 등 전문 업종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감사를 하는 회계사들이 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보니 문제를 적발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며 "특정 업종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회계사들이 감사를 하는 '전문감사인 제도'를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