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유럽의 불사조 기업 <1> 니토리
미국서 가구와 생활용품 함께 파는 아이디어 얻어
제조·유통·판매 통합해 비용 절감… 25년간 연 14% 성장

은 8월 17일 자(163호) 커버스토리에서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김창주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 게리 데이비스 영국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함께 일본과 유럽 기업 가운데 불황에서도 지속 성장에 성공한 60개 기업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 기업들을 골라 성장과정, 경영전략, 성공요인 등을 사례연구로 상세히 소개한다. 편집자

일본 1위 가구 회사 '니토리(ニトリ)'는 지난 3월 로봇 물류 창고를 공개했다. 도쿄 바로 옆 가와사키(川崎)시에 위치한 이 창고는 60대의 자율주행 로봇이 스스로 움직여 발송해야 하는 물건을 찾아 담당 직원에게 가져다 준다. 창고에는 3만개의 컨테이너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로봇에 필요한 물건을 입력하고, 로봇이 컨테이너에 담아 가져온 물건이 정확한지 점검하는 것이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니토리 매장. 니토리는 일본 전역에 346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박리다매와 다품종 대량생산 전략으로 매출과 이익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창고에서 취급하는 물건은 8000개가량. 소형 가구나 식기 등 생활용품이나 인테리어용품이 주를 이룬다. '기존 물류센터 대비 공간을 40% 정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하 효율은 3.75배 개선됐다'는 게 니토리 측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로봇을 활용한 무인 물류 창고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것은 니토리가 처음이다. 니토리는 노르웨이 물류자동화 전문업체와 함께 관련 시스템을 공동 개발했다.

니토리의 새 로봇 물류 창고는 니토리의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니토리는 1967년 창업자 니토리 아키오(似鳥昭雄) 회장이 24세의 나이에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시작한 '니토리 가구 도매센터'를 모태로 한다. 니토리는 1981년까지는 삿포로 일대의 가구 유통 업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7년 연 매출 100억엔을 돌파하고, 1993년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에 진출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91년 일본 부동산 거품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이 니토리에는 폭발적인 성장기였다. 니토리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앞세워 그 전까지 1위 업체였던 오오츠카(大塚)가구를 밀어내고, 스웨덴 이케아(IKEA)의 진출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2015년 니토리의 매출은 4580억엔(5조원), 영업이익은 730억엔(800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은 16%에 달한다. 1990년 매출(160억엔) 및 영업이익(10억엔)과 비교하면 각각 28.6배, 72.0배 늘어난 셈이다. 연평균 신장률로 환산하면 각각 13.8%(매출), 17.9%(영업이익)다. 니토리의 성장률은 일본 상장사 3500여곳 가운데 1위다. 점포수는 346개(2016년 2월 현재). 일본의 웬만한 도시에는 모두 입점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토리의 직원 1인당 매출도 4500만엔(4900만원)까지 늘었다.

◆ 성장 비결1. 가구뿐 아니라 인테리어용품 일체를 팔다

니토리는 가구뿐만 아니라 생활용품과 인테리어용품까지 판매한다. 니토리는 이같은 영업방식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니토리는 다른 일본 가구 회사와 사뭇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판매 제품이 가구뿐만 아니라 생활 소품과 벽지·커튼·카펫 같은 섬유 제품 등 인테리어 분야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니토리는 자사를 가구 회사가 아니라 집 안 비품 전체를 뜻하는 '홈 퍼니싱' 회사라고 소개한다.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을 팔겠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일본 가구 업계의 고급화 일변도 전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홈 퍼니싱을 전면에 내건 이유는 일본의 생활 문화에서 집 안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를 기존 업체들이 해결해주지 않고 있기 떄문이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서구식 생활방식이나 음식 문화가 중산층뿐만 아니라 그 하층까지 폭넓게 퍼졌다. 하지만 가구 회사와 인테리어 회사 어느 쪽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환경 솔루션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완전한 서구식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다. 아키오 회장이 일본의 경제 수준과 주거 문화 사이의 괴리에 주목한 계기는 1972년 미국 시찰이었다. 그는 "미국의 가정은 집 안을 편안한 장소로 꾸미고, 손님을 자주 맞이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하자는 인식이 강했다"며 "이윽고 일본도 미국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니토리가 가구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제품 전반으로 폭을 넓힌 것은 채산성 측면에서도 그 점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구는 주택을 새로 사거나 이사할 때 구매하기 때문에 한 번 붙잡은 고객이라도 다시 매장을 방문하려면 몇 년이 지난 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쿠션이나 식탁보 등 구매 빈도가 높은 홈패션용 제품을 구비하면 고객의 방문 회수를 늘리고, 고객당 판매 금액과 빈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인테리어 제품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단위 매장의 매출을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매장수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

아키오 회장은 "가구만 팔아서는 수백개의 점포를 동시에 운영하는 체인점 형태 사업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커튼 등을 질 좋고 싸게 만들어 판매하면 집 안을 꾸미려는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성공비결 2. 제품 개발-판매-물류 수직 통합
결국 제품 생산 및 구매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과 마케팅 분야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같이 함께 가는 것인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품 개발·생산·조달·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 가구 회사와 다른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만 했다. 니토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기존 제품의 3분의 1 수준의 낮은 가격대에 제공하면서, 인테리어 제품까지 포함해 다품종 대량 판매 체제를 운영·유지하기 위해 상품 기획·디자인·생산·유통·판매까지 모두 맡아 일괄 진행하고 있다. 유니클로·자라·H&M 등 의류 회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제조소매업(SPA) 방식을 가구 업종에 적용한 것이다.

이같이 강한 수직계열화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외부 업체에 맡기는 일반 기업의 경영 방식과는 상충된다. 하지만 수직계열화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이 때문에 니토리는 일치감치 값싼 제품을 대규모로 생산해줄 수 있는 해외 회사를 찾아나섰다. 창업 초기부터 아키오 회장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부도난 공장을 찾아가 일종의 '땡처리' 제품을 입도선매하거나, 일본 전역을 돌면서 가구 공장으로부터 물건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판매 가격을 끌어내렸다. 1986년에는 대만제 가구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1994년에는 가구 제조 자회사를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2004년부터는 베트남 직영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니토리는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중국, 싱가포르 등 6개국에 15개의 해외 거점을 구축해 자체 생산과 아웃소싱을 병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유기농 제품이 유행했을 때 중국 내륙 신장 지구까지 찾아가 현지 농민들로부터 목화를 사들이는가 하면, 벨기에산 못지않은 레바논산 카펫을 발견하고 이를 들여오기 위해 내전이 끝나지 않은 레바논에 담당 직원이 상주하기도 했다.

수천개에 달하는 판매 물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제품 회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물류 분야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니토리는 홋카이도 지역 가구 판매 회사였던 1980년, 삿포로 인근에 6층 규모의 대형 물류 센터를 건설했다. 이 물류 센터는 일본 가구 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로봇을 활용해 웬만한 작업은 자동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PC 등 IT 시스템도 가구 업계에서 가장 빨리 받아들였다. 지역마다 촘촘히 깔린 직영 매장과 생산 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생산하는 공급망관리(SCM)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선 물류 분야 투자가 필수적이라 판단했다.

아키오 회장은 "직원들의 생산성을 자동차 산업, 금융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든 사업 분야에서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 성공비결3. 철저한 현장 경영

니토리의 세 번째 무기는 일본 특유의 고객 밀착형 영업이다. 니토리는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갖고 있는 스웨덴 이케아는 교외에 창고형 대형 매장을 소수 운영하는 것과 달리 도심에 소형 매장 다수를 설치하고, 고객과의 물리적 접점을 늘리는 방식을 편다. 맞춤형 가구 서비스도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가구의 재료, 사이즈, 기능 등을 주문하면 여기에 맞춰 제작한다. 구매 금액이 1만8500엔(20만원)이 넘을 경우 무료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트럭을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한다.

제품 개발에서는 철저한 품질 위주 경영을 펼친다. 가격이 저렴한 것과 품질은 별개라는 게 아키오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침대 매트리스를 처음으로 자체 생산했을 때 매달 베트남 공장을 직접 방문해 품질을 점검했다. "좋은 매트리스는 건강 식품이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으로 고급 브랜드 못지않은 제품을 만들라는 게 그의 주문이었다. 2004년에는 혼다자동차 중국 지사장을 영입해 자동차 회사의 엄격한 품질 관리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니토리는 자체 품질 분석실을 운영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품질 판정사' '품질 관리 담당자' 등의 자격 제도를 마련했다.

직원 인사에서도 니토리는 임직원은 누구든지 몇년간 영업·생산·물류 등 현장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각 현장 부서 간 순환보직제도를 활발하게 운영한다. 가령 2~3년간 영업 관련 일을 하면서 관련 업무를 익히면 물류 등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아키오 회장은 "훌륭한 경영이란 모순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극복하는 것"이라며 "폭넓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Plus Point: 고성장 핵심 동력은 40년 오너 경영
니토리의 고성장 비결로 여러 가지가 언급된다. 하지만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니토리 아키오(似鳥昭雄) 회장의 리더십이다. 그는 1967년 가구점을 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최고경영자(CEO)로 일해왔다. 그는 해외 진출, 생산 공장 건설, 물류 투자 등 굵직한 사안에서
일본 대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여러 차례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 성공을 거뒀다. 강력한 오너 경영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다.

아키오 회장은 현재 러시아령(領)인 사할린 태생으로, 1947년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어렸을 때부터 암거래 쌀 배달과 채소 판매 등을 하면서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학업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꼴찌를 도맡아 했다. 홋카이도 공업고등학교에 겨우 합격했지만 공부 대신 돈벌이를 요구하는 부모와 가난한 집안 형편 속에서 싸움과 유흥을 일삼았다. 겨우 삿포로 단기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꼼수'를 써서 지역 명문대인 홋카이가쿠엔대(北海學園)에 편입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 영업직으로 취업했지만 숫기 없는 성격 때문에 6개월 만에 해고되기도 했다. 가업이었던 건설사 니토리콘크리트가 문을 닫고 난 뒤, 그 부지를 활용해 장사에 나선 게 오늘날 니토리의 시작이었다.

아키오 회장이 가구업에 눈을 뜬 계기는 1972년 미국 시찰이다. 가구점이 고전하던 상황에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택한 미국행에서 그는 생활 소품까지 판매했던 가구 회사와, 할인점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유통업 트렌드를 보고 이러한 혁신을 일본에 도입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일본 경제 성장에 발맞춰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나가면서 삿포로의 주요 가구 판매업자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좌충우돌하면서 경영을 배우던 그는 일본 유통업계에서 연쇄점(다수의 점포가 한데 묶여 표준화한 운영 방식과 상품 조달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유통 방식) 이론 도입을 주도하던 컨설턴트 아쓰미 이치(渥美俊)를 만나면서 경영 기법을 정교화했다.

1979년 아키오 회장은 니토리 전체 매출이 30억엔일 때 2002년까지 매장수 100개, 매출 1000억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구뿐 아니라 식기·생활용품·인테리어용품 등까지 포함한 '홈 퍼니싱'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천명한 것도 이때다. 당시 불경기로 인한 취업난을 기회삼아 전 직원(60명)의 60%에 해당하는 36명의 직원을 명문대 출신으로 새로 뽑기도 했다.

이후 니토리의 성장은 계속해서 가속이 붙었다. 1983년 홋카이도 최남단 항구도시인 하코다테에 매장을 내면서 삿포로 인근에서 홋카이도 전체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93년에는 혼슈에 진출하고, 1998년에는 관서(혼슈 서부 지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2003년 만 60세일 때 매출 1000억엔을 돌파했다. 가구점을 열었던 24세 홍안의 청년은 백발이 성성한 노(老)경영자가 됐다. 이후 니토리 매출은 2007년 2000억엔, 2010년 3000억엔, 2014년 4000억엔을 넘었다.

◆ Keyword: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소매의류. 원래 의류 산업에서 주로 쓰던 말이다. 회사가 의류의 기획·디자인부터 생산·물류·판매까지 수직통합해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사업 모델이다.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해 적당한 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대량 공급하는 방식을 주로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