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지난달 29~30일 신약 기술 수출과 관련한 대형 호재(好材)와 악재(惡材) 공시를 하루 차이로 하면서 악재에 대한 늑장 공시 논란을 빚고 있다. 1조원대 기술 수출 공시로 주가가 오르던 30일 개장 후에 '신약 개발 중단' 소식을 공시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최고재무책임자)은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공시를 위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연됐을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주식 투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소액 투자자들의 한미약품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증시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공시 지연으로 피해 본 투자자 나와
한미약품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7시쯤 한미약품은 '피부암 치료 신약에 대한 1조원대 기술 수출 계약을 최종 승인했다'는 내용을 미국 제넨텍사(社)로부터 통보받았다. 한미약품은 이날 장마감 후인 4시 35분 이 내용을 공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같은 날 오후 7시 6분쯤 공교롭게도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작년 7월 기술 이전한 폐암 치료 신약 '올무티닙'의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미약품은 기술수출보다는 더 큰 파장이 예상되는 기술 개발 중단 소식을 곧바로 공시하지 않고, 다음 날인 30일 증시가 개장한 뒤인 오전 9시 29분에야 알렸다. 이로 인해 30일 개장 후 5% 이상 급등했던 한미약품 주가는 18% 넘게 폭락했고, 결과적으로 30일 개장 직후 주식을 매수했던 투자자들에게 최대 24%의 손실을 안긴 것이다.
늑장 공시에 대해 한미약품은 공시 절차를 따랐다고 해명했다. 김재식 부사장은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거래소 야간 당직자에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해 다음 날 아침 담당자를 찾아가 설명하고 공시했다"며 "관련 증빙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당초 계약 규모와 실제 수취 금액의 차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늦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 측은 "거래소와 협의 때문에 늦어졌다는 해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에서 중요하다고 연락을 하면 한밤중에도 언제든지 공시를 할 수 있다"며 "또 거래소 공시 담당자들은 오전 5시에 출근하므로 지난달 30일 개장 전에도 충분히 공시할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금융위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 관계자는 "악재 공시가 나오기 전 30분 동안 한미약품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 부당 이익을 챙긴 세력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 투약 중단 권고도 늦었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30일 오후 4시 30분에서야 국내에서 '올무티닙'에 대해 투약 중단을 권고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식약처가 약물의 부작용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배링거인겔하임의 개발 포기 통보가 오고 나서야 투약 중단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미약품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4·6·9월 세 차례에 걸쳐 피부 괴사로 인한 환자 사망 등 새로운 부작용 사례가 발견될 때마다 식약처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4월 사망자는 베링거인겔하임 주도로 시행한 해외승인용 임상시험 도중 발생해 국내 시판 승인과는 무관했다"며 "문제가 된 부작용은 다른 항암제에서도 나오고, 말기암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사망자도 자주 나온다"고 해명했다.
여러 논란에도 한미약품은 올무티닙 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경쟁 약품이 나온 만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중국 자이랩사에 올무티닙을 기술 이전했다. 이관순 사장은 다른 신약의 기술 수출과 관련해서도 "다른 신약들은 새로운 부작용이나 뚜렷한 경쟁 약품이 나오지 않아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