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한 인터넷 카페의 이름과 메인 그림, 게시판이 모두 갑자기 바뀌었다.

‘FM폐인들의 모임(이하 FM동)’이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었다. 이 카페는 ‘FM(Football Manager)’이라는 축구 게임의 동호회다. 2003년 개설된 이 카페는 회원 수가 약 40만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런데 지난 22일 이 카페에 접속한 회원들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카페가 ‘현대자동차 그랜져IG 공식 동호회’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회원들에게 아무런 통보조차 없었다. 그랜져IG는 오는 11월 출시 예정인 신차다. 기존 회원 40만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차 동호회의 회원이 된 셈이다.

카페 운영자가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사람이나 기업에게 카페 운영권을 매각한 것으로 추정됐다. 회원들은 “얼마에 팔았느냐”는 등의 항의 글을 쏟아냈지만 곧바로 삭제됐고, 새로운 회원들의 가입 인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근 네이버·다음 등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카페를 운영자가 회원들 모르게 멋대로 사고파는 일이 반복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수많은 사용자가 참여해 만든 공간을 개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포털 측은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인터넷 카페의 운영 권한은 처음 개설한 사람이 갖는데, 이 권한은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 있다. 운영자는 쉽게 카페의 제목과 게시판을 바꾸고 글을 삭제할 수 있다. 이를 악용하면 하루 아침에 카페 회원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종류의 카페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것이다.

회원 수 20만명 규모의 한 카페 운영자는 “카페를 팔라는 내용의 쪽지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온다”고 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카페 매매에 관련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카페·블로그 매매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인터넷 카페 매매가 이뤄지는 것은 회원 규모가 큰 카페는 다양한 마케팅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특정 제품의 사용기를 올리고 해당 업체로부터 돈을 받는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을 진행할 수도 있고, 회원들에게 홍보성 단체 쪽지를 보내 상품 구입을 유도할 수도 있다.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업체에 수수료를 받기도 하며, 메인 화면이나 게시물에 광고 배너를 올려 얻는 수입도 쏠쏠하다.

카페 거래 가격은 대개 회원 수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회원 한 명당 50원 안팎이며, 개설한 지 오래됐거나 활발히 활동하던 회원이 많을수록 새로운 운영진이 카페에서 수익을 내기 좋아 추가금이 붙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모 인터넷 카페에서는 운영자가 회원들 모르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공동구매를 진행하면서 성형외과·안경점·여행사·돌잔치 업체 등에 매달 돈을 받다가 들켜 논란이 됐다. 지난 6월에는 부산의 성형외과 7곳의 원장이 카페에 광고성 수술 후기를 올려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카페가 거래될 때마다 회원들은 수년간 이용하던 사이트가 사실상 없어지고, 그동안 올라온 글과 정보를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다. ‘FM폐인들의 모임’ 카페의 경우 몇몇 회원들이 새로운 카페를 만들어 자료를 일일이 옮기기 시작했지만 160만개의 누적 게시물을 전부 옮기긴 어려워 보인다.

수년 전부터 ‘FM폐인들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했던 최모(30)씨는 “운영자에게 관리 권한이 있다고 해서 카페가 운영자 개인 소유물은 아니다”라며 “카페는 글을 올리고 읽으며 활동하는 수많은 회원 모두가 주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어렸을 때부터 10여년 동안 이용한 카페를 운영자가 멋대로 없애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털 측은 “카페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는 약관 위반인 만큼 고발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단속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 운영권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 자체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카페를 운영할 의사가 없어져 양도한 것인지, 아니면 수익을 노려 회원들을 속이고 매매했는지를 가려야 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 위한 거래 내역 같은 근거 자료 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포털은 사법기관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 업체에 불과해 개인 간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매매한 정황이나 증거가 있으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FM폐인들의 모임 카페가 하루아침에 ‘그랜져IG 동호회’로 바뀐 것에 대해 현대차 측은 “우리가 관여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동호회 카페는 우리 회사와 무관하며 개인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인터넷 카페 매매와 같은 음성적 거래를 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