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시작된 철도, 지하철 노동조합의 파업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28일부터 민주노총 산하 보건노조와 금속노조가 합류하면서 파업에 참가하는 공공 부문 노조원이 18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와 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 조합원 2천여명이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번 파업은 예고된 사태였다. 공공기관 직원 70%에 적용되는 성과연봉제를 사측이 불과 5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도입 하면서 뒤탈이 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공공기관 정상화의 일환으로 120곳 공공기관이 모두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 정책을 추진했고,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장을 불러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해 단 5개월 만에 이를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의결한 공공기관 10개 중 4개 이상이 오랜 기간이 걸리는 노사 합의 대신 간편한 이사회 의결만 거치는 무리수를 뒀다. 정부의 섣부른 성과연봉제 도입이 또 다른 노사 갈등과 법적 다툼을 촉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간부급에서 일반 사원까지 확대 도입하는 과정에서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며, 도입 방식도 불합리하기 때문에 제도 도입을 백지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 절차에는 문제가 없으며, 일반 기업에 비해 고용 형태가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을 받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이기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반박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 성과연봉제 둘러싼 '정부·사측 vs 노조'의 세 가지 쟁점

정부는 지난 1월 공공기관 120곳(공기업 30곳·준정부기관 60곳)에 대해 간부급에만 적용됐던 성과연봉제를 전 직원의 7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철밥통'으로 불렸던 공공기관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였다.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안

민간 기업에는 상당히 확산된 성과연봉제가 공공기관에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2010년 6월이지만, 그동안은 임직원 18만명 중에서 1·2급 간부 1만2000명만 적용대상이었다.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 기본연봉 차이도 2%에 불과했다.

성과연봉제가 4급까지 확대되면 전체 임직원의 70%인 12만2000여명이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이 되고, 이들은 전체 연봉의 15~30%를 성과연봉으로 받게 된다. 성과연봉은 고과에 따라 최대 두 배까지 차이가 나게 된다.

또 1~3급은 기본연봉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그 차이도 종전 2%에서 3%로 확대된다. 같은 직급이라도 많으면 1000만원 넘게 연봉 차이가 나게 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중순, 120개 공공기관은 이사회 의결이나 노사 합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부터 성과연봉제 도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공노조는 지금 성과연봉제를 '해고연봉제'라고 부르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와 정부, 사측의 주장은 크게 세 지점에서 엇갈린다.

① 성과연봉제, 이사회 의결 만으로 도입할 수 있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의결한 120개 기관 중에서 51개는 노사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 이사회 의결만 한 것이다. 노사 합의를 거치지 않은 기관에는 이번 공공 파업에 참여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국토정보공사(LX), 국민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는 사규 변경 등은 노조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법을 고용노동부와 노조 측은 전혀 달리 해석하고 있다.

고용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는 사규 변경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공공기관 전 직원이 혜택을 볼 수 있는데도 노조가 지속적으로 협의를 거부하고 있어 취업규칙을 노조 합의 없이 변경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노조는 성과연봉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는 사규 변경'이며 이 제도를 확대 도입하려면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사회 의결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② 공공 부문에 성과주의? 국민에 피해

노조에서는 공공 부문에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원들이 성과평가를 잘 받기 위해 실적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 공공성이 훼손돼 결과적으로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철도 노조와 지하철 노조 등이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동시 파업에 돌입한 27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2005년 정부 방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서울시동부병원은 ▲객관적 수치로 업무능력 평가 불가능 ▲직원들 간의 위화감과 불화 조성 ▲상급자 눈치보기 ▲이직률 상승 등 이유로 2013년 다시 호봉제로 전환했다.

철도·지하철 노조 관계자들은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현장 인력이 줄고 위험한 업무는 외주업체로 돌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고 발생 여부가 중요한 평가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작은 사고는 은폐할 소지가 생긴다고도 우려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과연봉제는 공정한 내부 평가를 통해 공공서비스 질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직원에 대한 성과 평가가 곧 공공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고 명분도 없다고 반박한다.

③ 누가 어떻게 평가하나? 객관성 결여 가능성

직원들에 대한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쟁점이다. 노조 측은 공공 부문에서 성과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어떻게 개인별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공공 부문의 업무는 일반기업과 달리 전문적이거나 표준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동의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이 사측의 눈치만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노조가 함께 참여해 평가체계를 만들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성과평가를 위한 평가단 구성 때 외부전문가를 참여하도록 하고, 성과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기관이 공정한 성과체계 구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추후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 철도 파업 장기화 가능성…다른 공공기관으로 번질 수도

이날 오전 기준으로 KTX와 전동열차, 그리고 서울과 부산 지하철은 평상시와 같은 운행률을 기록했다. 파업 참가율이 30~40%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노조가 철도 운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인력은 현장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철도 운행률이 떨어져 국민의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물열차 운행횟수는 평소 45회에서 파업 후 12회로 크게 줄어 운행률이 26.7%에 그쳤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평일 출퇴근 시간(오전 7~9시, 오후 6~8시)을 제외한 비혼잡시간에는 운행률이 80~85% 수준으로 떨어져 배차 간격이 2~4.5분에서 5~15분까지 늘어난다.

철도, 지하철 노조는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사측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철회 하지 않으면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방침을 바꿀 가능성은 낮아 사측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임금 협상 등 회사 개별 사안이 아니라 노동계 전반의 쟁점인 성과연봉제가 얽혀 있는 사안이라 더욱 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28일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직적이고 불합리한 임금체계와 투쟁과 파업만을 일삼는 시대착오적 노동운동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파업동향 및 대응방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공공기관,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일터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정부는 이번 파업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 필수유지업무 준수를 철저히 적용할 것이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공공 부문의 파업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사회 의결 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노사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기관이 전체 공공기관의 20% 정도 되기 때문이다.

사측의 성과연봉제 도입 강행에 반대해 경영진을 고소, 고발한 사례도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노조는 사측이 직원들과 1대1 면접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 동의서를 강제로 받아냈다며 홍영만 캠코 사장을 부산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산업은행 노조 역시 이동걸 회장을 비롯한 점포장급 이상 간부 180명 전원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