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 테슬라, BMW, 닛산….

이들의 공통점은 자동차 업체이면서도, 동시에 가정용 에너지 저장 장치(ESS) 사업자란 점이다. ESS란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전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를 뜻한다. 집에 두고 쓰는 일종의 대형 충전식 배터리인데, 에너지 신산업의 핵심으로 최근 급성장 중이다. 이 때문에 기존에는 LG화학, 삼성SDI 등 화학업계 배터리 업체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자동차 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이 사업을 검토하고 있어 시장 경쟁은 점점 격해질 전망이다.

자동차 업체들 일제히 ESS 뛰어들어

지난 4월부터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그룹이 벤츠 특유의 삼각별 무늬가 새겨진 ESS 제품을 내놓고 판촉전에 뛰어들었다. 다임러 측은 "태양광 발전기 등과 연계하면 하루 전기료를 최대 65%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자동차 업체 닛산은 지난 5월 'X스토리지'라는 이름의 가정용 ESS 시스템 시제품을 발표했다. 이르면 이달 중 영국에서부터 공식 판매에 돌입할 예정이다. 닛산은 2021년까지 약 10만대가량의 자사 ESS가 팔릴 것으로 추정했다. BMW도 지난 6월 비슷한 가정용 ESS 시제품을 발표했다.

이들보다 앞서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자동차 업체로는 가장 먼저 ESS시장에 뛰어들었다. 테슬라는 지난해 4월 300만원대란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가정용 ESS인 파워월(powerwall)' 제품을 출시했었다. 향후에는 2020년까지 자체 배터리 생산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완공해서 자사 전기차와 가정용 ESS 양쪽에 모두 배터리 자체를 공급할 계획도 갖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ESS 시장에 앞다퉈 진입하는 건 향후 전기차(하이브리드차 포함) 배터리의 재활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가정용 ESS는 전기차 배터리를 여러 개 묶는 방식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LG화학, 파나소닉 등으로부터 배터리를 납품받는 전기차 업체들 입장에서는 용량이 크고 성능이 안정적이라 10년 이상 성능이 유지되는 전기차 배터리를 나중에 수거해서 가정용 ESS 제품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아예 향후 배터리 수거를 감안해, 처음 전기차를 팔 때부터 가격을 깎아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전기차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판매가 늘어나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기대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차와 기아차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두 회사는 아이오닉과 니로 등 다수의 배터리 탑재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해당 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정용 ESS 시장 8년 안에 33배 커진다

자동차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드는 건 역시 시장성 때문이다. 배터리 시장 조사업체인 네비건트 리서치는 세계 가정용 ESS 시장이 올해 498MWh(메가와트시)에서 2024년까지 1만6713M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8년 사이 33배 커진다는 얘기다. 1만6713MWh면 약 300만 가구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BMW그룹이 최근 발표한 가정용 ESS 시스템(사진 가운데). ESS가 최근 신산업으로 급성장하자, LG화학·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이 주도하던 이 시장에 벤츠·테슬라·BMW·닛산 등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최근 독일·호주 등 세계 각국 정부가 에너지 신산업 사업의 일환으로 ESS를 적극 지원하는 것도 호재다. 여기에 한국 정부도 민간 기업들과 함께 2020년까지 40조원 넘는 투자를 통해 국내 ESS 보급을 적극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업체들의 ESS 열풍에 배터리 업체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ESS는 태양광 등 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과 연계돼 있어 성장세가 다소 늦었지만, 완성차 시장과 연계되면 성장세가 더 빨리 더 크게 번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