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현지시각) 스위스가 전세계 최초로 모든 국민에게 매달 일정금액을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핀란드 정부는 내년부터 만 25~58세 성인 2000명을 무작위로 선별해 매달 560유로(7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에 나선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청년을 대상으로 지급하려는 청년수당, 그리고 성남시의 청년배당 등 일부 지자체에서 일종의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복지제도를 자체적으로 도입하고 나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전세계 경제를 달구고 있고, 향후 우리 경제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

"청년의 삶까지 직권취소 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서울시가 시청 앞에 붙인 현수막에는 보건복지부와 벌이고 있는 청년수당 갈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은 시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청년들에게 활동계획서 등을 받고 대상자를 선정해 월 50만원씩 6개월간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서울시가 추진한 청년수당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걸자, 서울시가 시청 앞에 ‘청년의 삶까지 직권취소 할 수 없습니다’라는 현수막(왼쪽)을 걸었다. 오른쪽은 정부서울청사 앞에 걸린 현수막.

서울시는 지난달 3일 2800여명을 대상으로 청년수당을 집행한 뒤 지급 대상을 2만~3만명까지 늘릴 예정이었지만 복지부가 직권 취소 처분을 내리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복지부는 "서울시가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한다"며 반대했다. 서울시는 대법원에 직권 취소에 대한 집행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청년수당과 비슷한 사업을 추진중인 성남시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성남시의 청년배당 사업은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로 12만5000원을 상품권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성남시는 복지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1, 2분기에 각각 1만여명에게 청년배당을 줬다.

성남시는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와 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지자체 권한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복지부는 경기도와 함께 성남시의회를 상대로 대법원에 무상 복지 예산안 무효 확인 소송을 내며 맞섰다.

◆ 백열되는 기본소득 논쟁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을 둘러싼 갈등은 전세계를 달구고 있는 기본소득 논쟁의 한국판이자 축소판이다. 기본소득이란 정부가 전 국민에게 매월 일정금액의 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른 복지제도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성은 '모든 국민에게 준다는 것' 그리고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것' 두 가지다.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에게만 지급된다는 점에서는 기본소득과 다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준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 중에 가장 기본소득과 비슷하다. 일각에서는 이 두 사업을 '청년판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제도를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국회의원과 일부 교수들은 기본소득이 지금 복지제도의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반박한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은 국회에서도 재현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청년수당을 두고 "일부 정치인이 현금은 곧 표라는 정치적 계산으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나눠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절대 다수 지자체에서는 도저히 시행이 불가능한 황제 정치놀음"이라고도 했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트위터에 "청년수당은 포퓰리즘이 아닌 리얼리즘"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정부는 해마다 청년 취업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매일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 기본소득에 관한 네 가지 쟁점

기본소득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 충돌하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 상위 0.01% 부자에게도 용돈을 쥐어줘야 하느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매월 공짜 돈이 생기면 일할 의욕이 감퇴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쟁점이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보다 훨씬 효율적인 제도인가, 그리고 재원은 마련할 수 있을지도 논쟁의 소지가 많다.

기본소득 찬성, 반대 논리

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돈을 줘야 하나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는 국민 세금을 거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같은 상위 0.01% 부유층에게도 돈을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기존에 복지혜택을 받던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돈과 현물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 도입 취지를 고려하면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복지 혜택이 아닌 국민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제외하기 시작하면 기존 복지제도와의 차별점이 없어진다. 부자들은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결과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설명이다.

② 근로의욕 감소

반대측에서는 국가가 기본소득을 줌으로서 근로의욕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찬성 측에서는 지급액을 최저생계비의 절반 이하로 낮춘다면 근로의욕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동안 직업 선택의 기준이 오로지 '월급'이었다면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는 훨씬 다양한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월급을 좀 덜 받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기존 복지제도 보다 효율적인가

기본소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 제도가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문제를 완화하고 행정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선별적 복지제도의 함정은 정부가 복지제도의 수혜대상을 직접 관리한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이 실제 수혜자에게 집행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새는 돈도 생긴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본소득 도입 보다는 기존 복지제도의 구멍을 메울 방안을 찾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④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기본소득은 결국 경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증세나 세제 개편이 불가피한데 결국 전 국민의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경제 전문가들도 기본소득을 실제로 도입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보고 있다.

◆ 기본소득 논쟁, 무상급식 논란 따라가나

최근 벌어지는 기본소득 논의는 2011년 무상급식 논쟁을 연상케 한다. 2010년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공약한 곽노현 후보가 당선됐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2011년 8월 24일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부쳤지만 투표율이 25.7%에 못 미쳐 개표도 하지 못했다. 결국 오 전 시장은 시장직을 내려놨다.

2011년 8월 24일 서울 종로구청 개표소의 투표함 모습. 투표함은 열리지 못했다.

당시에도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의 하나인 듯 보였다. 오 전 시장이 주민투표라는 강수를 써가며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것은 '합리적인' 서울 시민들도 자신과 같은 뜻을 갖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국민들은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공짜 점심에 그리 비판적이지만은 않았다. 결국 무상급식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5대 무상복지로 불어났다.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131조원이 들어가는 복지공약을 내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현 정부 들어 기초연금 등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됐고 복지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는 중이다. 한번 도입된 복지 제도는 폐지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내년 8% 넘게 줄지만 복지 예산은 5.3% 늘어 130조원에 달한다.

기본소득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2011년의 무상급식 논쟁때의 논리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기본소득 역시 대통령 선거든 의원선거든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언제든지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고, 만약 도입되고 나면 거두기에는 막대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얘기다.

물론 여러가지 다른 복지제도를 조절하고 도입 시기나 속도를 조정하는 등 기술적으로 제도의 장점을 살린다면 재정부담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경기를 부양하거나 내수를 진작하고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편견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시아사회정책연구센터장은 "기본소득에 대한 국내 인지도가 낮은 만큼 기본소득이란 무엇이며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 연구한 뒤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