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송파 상권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했던 문정동 로데오거리. 1992년 브랜드 의류 할인 매장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해 2000년 전후로 200여개 매장이 성업할 정도로 큰 상권을 형성했던 문정동 로데오거리가 세월의 힘에 부쳤는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법조단지가 생기고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와 오피스텔이 대거 지어지는 등 주변 문정지구 개발이 잇따르고 있지만 생기 잃은 문정 로데오거리의 옛 명성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주말인 지난 11일 오후에 찾은 문정 로데오거리에선 매장 주인들의 한숨에서 시장 상황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정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문정 로데오거리임을 알리는 동상이 서 있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로데오거리가 시작된다. 토요일 낮 시간대였지만 거리와 매장은 한가했다. 상점들이 도로에 늘어서 있지 않았다면 한때 이 곳이 번화가였음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쇼핑백을 든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몇몇 점포는 공실이었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로데오거리에서 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빈 점포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문정지구 호재에도 로데오거리는 '최악'

활기를 잃어가는 로데오거리 건너편에는 법조단지와 지식산업센터 등이 문정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문정지구에는 동부지방법원과 동부지방검찰청 등이 입주해 법조단지를 이룰 예정이다. 송파구에 따르면 올해 7월 1일 현재 문정지구(54개 필지)에선 37개 현장이 건축허가를 받아 이 중 13개 현장이 준공됐고, 23개 현장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규모 사무실과 오피스텔 건물, 지식산업센터 등 내년까지 준공 예정인 건물만 20개다.

문정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문정지구 개발이 집값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인근 로데오거리 상권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문정동에 법조단지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문정동 D공인 관계자는 “문정 래미안 전용면적 84㎡가 1년 동안 3000만원 정도 올랐고 다른 단지들도 전체적으로 값이 오르고 있다”며 “호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정동 S공인 관계자는 “땅값이 오르면서 부동산 가격이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며 “단독주택이 3.3㎡당 2년 전에는 1500만~1700만원 했는데 최근 3.3㎡당 2500만원에 거래된 것도 있고 지금도 보통 3.3㎡ 당 2300만원은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법조타운이 들어서는 것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정동에 사는 이억출(62) 씨는 “지역발전이 되는 것 같아 좋다”며 “법조타운 들어서면서 사람들도 많이 들어오고 집값도 많이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정지구 개발 호재가 로데오 상권은 비껴가는 것 같다. 상권 전망을 묻는 기자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는 중개업소들은 별로 없었다.

문정동 로데오거리 한 상가에 건물전체를 임대한다는 대형 안내문이 붙어있다.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골프의류 매장을 하는 박모(53)씨는 “장사라는 게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고 하지만, 2년 전부터 확연히 안 좋다”며 “경기는 죽었지만, 3.3㎡당 30만원 정도 하는 임대료는 떨어지지 않아 가게를 운영하기 정말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류 매장 사장 김모(55)씨는 “로데오거리가 좋았을 때는 권리금이 2억~3억원까지 갔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상권 상황이 나빠지면서 임대료를 낮추는 곳도 있지만, 아직 많은 곳이 예전 수준대로 받고 있어 자영업자들이 매우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문정동 S공인 관계자는 “본사 직영 매장들은 버틸 여력이 있지만 대리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로데오거리 이면도로의 사정은 더 안 좋다. 대로변보다 빈 점포가 더 많다.

◆ 할인매장 희소성 잃어

문정동에 사는 조민수(26)씨는 “최근 매장들이 계속 바뀌고 있다”며 “쇼핑 거리를 찾는 사람들도 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업계는 아울렛 쇼핑몰이 많아졌다는 점을 로데오거리 침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대기업이 전국에 총 26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인들은 2010년 로데오거리 인근에 개장한 가든파이브 등 주위 상권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행정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든파이브에는 NC백화점이 입점해 있다. NC백화점은 직매입 매장과 상설할인매장 등으로 구성돼 로데오거리 상권과 소비층이 겹친다. 가든파이브에는 내년 1분기에 현대백화점 아울렛이 입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