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체와 손잡고 완성차 및 차 부품 판매에 나서는 유통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대리점, 전문 딜러사들의 영역에 유통업체들이 발을 들이는 추세다.

유통 공룡 신세계(004170)가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손잡았고,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 티몬은 최근 논란 속에서도 ‘재규어’ 신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지난 8월 말 오픈마켓 최대 규모로 중고 자동차부품관을 열었다.

지난 9일 스타필드 하남에 문을 연 현대차 제네시스 전용 체험관 ‘제네시스 스튜디오’.

해외에선 유통업체와 자동차 제조업체의 협업이 더 활발하다. 글로벌 쇼핑몰 운영업체 터브먼(Taubman)은 5곳의 미국 대형 쇼핑몰에서 테슬라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업체 아마존은 최근 자동차 검색, 커뮤니티 등을 담당하는 아마존 비히클(Amazon Vehicles) 사업부를 발족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비 패턴 변화, 인터넷 발달 등으로 자동차 유통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체는 자동차 판매에 따른 모객(募客) 효과를, 자동차 업체는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스타필드 하남, 현대차·BMW·할리데이비슨·테슬라 매장 입점

신세계그룹은 12일 “9일부터 주말 사흘 동안 50만명 이상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스타필드 하남은 신세계가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이다. 개장일인 지난 9일에 13만명, 다음날인 10일엔 20만명이 쇼핑몰을 다녀갔다.

아시아 최초로 스타필드 하남에 문을 연 ‘BMW 미니 시티라운지’.

스타필드 하남의 초반 인기 비결은 독특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다. 스포츠 체험장, 워터파크 등과 함께 자동차 체험·전시장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2층에 마련된 현대차(005380)제네시스 전용 체험관 ‘제네시스 스튜디오’,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BMW 미니 시티라운지’ 등이 쇼핑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BMW 미니 시티라운지는 포르투갈 리스본,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전 세계 네 번째로 스타필드 하남에 개장했다. BMW 7시리즈, 미니 컨트리맨, 전기차 i8 등을 전시했다. 1850만원짜리 한정판 오토바이를 판매하는 할리데이비슨 매장에도 고객이 몰렸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스튜디오 외에 1층에 전기차 아이오닉 체험관도 별도로 마련했다.

지난 5일 1차 개장한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한 시민들이 11월에 문을 여는 테슬라 매장 앞을 지나고 있다.

오는 11월 문을 여는 글로벌 전기차업체 테슬라 1호 매장 역시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1차 개장 당시부터 가림막이 내려진 테슬라 매장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세계그룹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마트 등 전국 신세계 계열 유통채널 25곳에 충전시설을 갖추기로 하는 등 테슬라와 함께 국내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스타필드 하남 합작사인 쇼핑몰 운영업체 터브먼도 활발하게 자동차 업체와 협업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와 적극적으로 제휴, 인터내셔널플라자(탬파), 더몰앳유티씨(새러소타) 등 5곳의 미국 쇼핑몰에서 전기차를 팔고 있다. 지난 8월 말 하와이에 개장한 인터내셔널마켓플레이스(International Market Place)에도 곧 테슬라 매장을 열 계획이다. 박문진 터브먼아시아 이사는 “터브먼은 2012년에 처음으로 쇼핑몰에 테슬라 매장을 열었다”며 “테슬라처럼 모객 효과가 큰 매장을 유치, 쇼핑몰 차별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필드 하남 할리데이비슨 매장.

◆ 티몬·11번가·아마존 등 이커머스 업체도 적극적

이커머스 업체들도 자동차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티몬은 지난 8월 국내 전자상거래 최초로 재규어 신차를 판매했다. 준중형 세단인 재규어 XE의 포트폴리오(5510만원)와 R스포츠(5400만원) 모델 20대를 각각 700만원 이상 할인한 4810만원, 4700만원에 내놔 3시간 만에 완판했다. SK엔카직영과 계약을 체결, 재규어 차량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딜러사를 지원받기로 하고 판매를 진행한 것이다. 공식 수입사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항의로 논란을 빚으며 예약 고객 20명 가운데 1명과 최종 계약을 체결했지만, ‘국내 전자상거래 최초 신차 판매’라는 타이틀은 확보할 수 있었다.

티몬은 지난 8월 국내 전자상거래 최초로 재규어 신차를 판매했다.

티몬 관계자는 “온라인 신차 판매로 고객에게 새로운 구매 경험과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며 “정당한 방법과 법적 검토를 거쳐 계약을 체결했지만, 기존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이 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며 “일정 기간 준비작업을 거쳐 자동차 판매를 재개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11번가는 지난 8월 말 오픈마켓 최대 규모의 ‘중고 자동차부품관’을 열었다. 국내 자동차는 물론 수입브랜드 자동차 중고 부품까지 2만1000여개의 제품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고 있다. 현대, 기아, 한국GM, 르노삼성, 쌍용 등 국내 자동차 브랜드와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혼다 등 수입 자동차 브랜드 중고 부품을 팔고 있으며 향후 8만개까지 부품 수를 늘릴 계획이다. 김윤태 SK플래닛 11번가 MD는 “후미등이나 사이드 미러의 경우 전동 드릴만 있으면 쉽게 교체할 수 있어 자동차 부품을 직접 구매해 설치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아마존은 지난 8월말 아마존 비히클 사업부를 신설했다.

아마존은 최근 아마존 비히클 사업부를 신설해 자동차와 부품, 액세서리 등이 필요한 아마존 고객들에게 각종 스펙과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마존이 자동차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아마존은 자동차를 판매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란 얘기다”라고 보도하며 자동차 판매 가능성을 시사했다.

◆ “모객 효과·접근성 제고 윈윈”

소비 패턴 변화, 인터넷 발달 등으로 자동차 유통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는 자동차 판매에 따른 모객(募客) 효과, 자동차 업계는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EY한영은 ‘자동차 유통 산업의 미래’란 보고서를 통해 “고객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디지털 경험 제공, 유통망 재설계를 통한 고객 접점 제고 등으로 자동차 유통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콘셉트의 자동차가 등장하고, 고객의 상황과 용도에 따른 선호도도 다양해 유통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주요 유통 채널이던 자동차 대리점 비중은 줄어들고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특화한 쇼핑몰 입점 전시장 등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한 자동차 구매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EY한영은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한 자동차 구매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체험하고 온라인으로 구매(쇼루밍·showrooming)하거나 반대로 온라인에서 정보를 검색한 뒤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리버스 쇼루밍) 등 소피 패턴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 것도 한 가지 배경이다.

김민희 LG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을 취하고 상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융합하는 업체가 고객에게 더 큰 효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와 자동차 제조업체 모두 윈윈하는 쪽으로 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