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15년인 것으로 지난해 조사됐다(리처드 포스터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

50년 전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60년 정도였으나 이제는 80%가 넘는 기업이 창립 30년 만에 사라진다는 얘기다. 기업이 100년은커녕 10년을 버티기도 어려워진 세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상점만 3000개가 넘는다. 20년 넘는 장기 불황 속에서 소니, 샤프 같은 간판 대기업이 줄줄이 쇠락하는 와중에도, 교토 기업은 흔들림 없는 성장으로 세계 기업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교토 상인들이 수백년 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비결은 뭘까?

홍하상(61) 전국경제인연합회 교수는 최근 저서 ‘어떻게 지속성장할 것인가’에서 교세라·닌텐도·시마즈제작소·와코루·호리바제작소 등 국내에도 유명한 교토 대기업은 물론, 고등어 초밥집, 떡 가게, 금박가게, 혼수가게 등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상점들의 생존 비결을 추적했다.

홍하상 전국경제인연합회 교수

‘상신 리자청(리카싱·李嘉誠)’ ‘이병철 vs 정주영’ ‘오사카 상인들’ 등 20여권의 저서를 쓴 있는 홍 교수는 1년에도 수십 차례 일본 각지를 찾아가 성공 사례를 관찰한다고 했다. 부단한 기술 혁신과 장인(匠人) 정신이 교토기업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라는 게 홍 교수의 분석이다. 지난달 조선비즈 사무실에서 홍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교토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오랜 역사다. 교토에는 1000년 이상 된 가게가 6곳 있다. 200년 이상 된 가게는 1600곳, 100년 이상 된 곳은 3000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게 771년에 창업한 교토 최고(最古)의 혼수용품 전문점인 겐다다.

둘째, 장인정신이다. 한우물만 파며 기술 연마에 정진하다 보니 기업이 어려워져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전세를 뒤엎을 만한 비장의 무기를 언제든 만들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다.

셋째, 무리한 외연 확장에 나서지 않고 차근차근 덩치를 키워간다는 점이다.”

―교토기업이 이런 특징을 갖게 된 배경은?

“교토는 1200년 동안 일본의 수도(首都)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전통 중시가 내면화돼 있다.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술 혁신을 반복하는 게 핵심이다. 반면, 도쿄는 역사가 짧은 첨단 현대 도시인 게 다르다.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출발한 소니와 교토에 기반을 둔 닌텐도의 명암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앞으로도 성장이 가능한가?

“장수기업은 대개 기본이 튼튼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일례로 400년 된 초밥집 이요마타는 초밥 중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고등어 초밥이 간판 메뉴다. 수백년 동안 고등어 초밥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사장에게 ‘이젠 인생을 좀 즐겨라’라고 말했더니, “아직도 연구할 게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떡, 고등어초밥 등 이런 사소해 보이는 제품조차 어떻게 개선할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배울 점은?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지시만 따르는 ‘협력업체’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교토 강소기업은 한 분야에 연구·개발(R&D)을 집중해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대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자부품업체인 무라타(村田)제작소다. 휴대폰 1세대 시절 소니로부터 나사 부품 제작 의뢰를 받은 무라타제작소는 특허 기술을 뺏길 것을 우려해 소니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자 소니는 코웃음을 치고 자신들의 제안대로 부품을 만들어 줄 다른 하청업체를 찾는다.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샅샅이 찾아봐도 결국 소니는 무라타만이 부품 제작이 가능한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소니 사장이 무라타제작소 회장에게 사죄하고 나서야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로, 무라타 제작소의 기술력은 독보적이었다.”

―우리나라가 이런 장수기업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부의 기업 지원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산업인력공단 등 많은 지원단체가 있지만, 실제로 단체장을 만나보면 어떤 기술에 무엇을 투자·지원해야 할지조차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 보니 산업 현장에선 창조혁신센터에 실적을 보고할 ‘보여주기식 실적’만 늘어난다. 기업들도 골프·접대에만 신경쓰지 말고 해외로 나가 견문을 적극적으로 넓히고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