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이후 주요 선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한진해운의 사실상 퇴출로 글로벌 선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덴마크)의 주가는 지난 1일 코펜하겐증시에서 1.45% 올랐다. 같은 날 중국원양해운(COSCO) 주가도 상하이증시에서 0.7% 상승했고, 하팍로이드(독일) 주가도 프랑크푸르트 전자거래시장(XETRA)에서 1.2% 올랐다.

특히 아시아·미주 노선에서 한진해운과 경쟁관계에 있던 대만과 홍콩 선사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대만선사인 에버그린과 양밍의 주가는 대만증시에서 각각 10%, 7%씩 급등했다. 홍콩선사 OOCL 주가도 홍콩증시에서 7.6% 올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세계 주요 선사들은 한진해운이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물량 일부를 이전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운임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며 “어느 한 곳이 무너지기만 기다리면서 치킨게임을 주도했던 주요 선사들은 속으로 환호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은 4일 오전 기준으로 비정상 운항 중인 선박이 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7척 등 68척으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컨테이너선 97척, 벌크선 44척 등 141척의 48.2% 수준이다.

각국 항만들은 한진해운이 밀린 대금을 납부하거나 현금 지급할 경우에만 선박 입출항을 허가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23개국 44개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 입출항이 거부당했거나 발이 묶여 있다. 선박 입출항을 거부한 국가는 지난 3일 미국, 중국, 일본 등 13개국에서 23개국으로 10개국이 늘었다. 영국 선주사 조디악은 미국 법원에서 한진해운을 상대로 용선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내 전시된 선박 모형

◆ 운임 반등 움직임 시작…미주 노선 경쟁사들 속으로 환호

올해 초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운임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개시와 함께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일 763.06을 기록, 지난달 25일(596.38) 대비 27.9% 상승했다. 상하이해운거래소는 2009년 10월 컨테이너 운임을 1000으로 환산한 뒤 매주 변동치를 발표하고 있다.

한진해운 주력 노선인 아시아·미국 서해안 노선 운임은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8월 말 1100달러 수준에서 9월 초 180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아시아·미국 동해안 노선 운임은 1600달러에서 2400달러로 오르는 등 주요 노선 운임이 일제히 상승했다.

해운전문지 로이드리스트는 중국 선사 CSOCO가 이달 15일자로 운인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전통적 성수기인 3분기(7~9월)인 만큼 물류대란이 지속될수록 운임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가 한진해운이 사라진 틈을 타 미주 노선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머스크는 낮은 운임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2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극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는 등 해운업계 치킨게임을 주도했다.

머스크는 아시아·유럽 등 노선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시아·미주 노선에서 양밍, 에버그린 등 주요 아시아 선사에 밀려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었다. 해운시장 분석기관 데이터마인 조사 결과 올해 1~6월 미주 노선 점유율 순위는 COSCO(1위·10%), 에버그린(2위·9.7%), 머스크(3위·9.6%), MSC(4위·8.2%), CMA(5위·7.4%), 한진해운(6위·7%)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에는 아시아·미주 노선 점유율 확대를 위해 해운동맹 가입에 어려움을 겪던 현대상선을 ‘2M'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2M'은 세계 1·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운동맹이다. 해운업계는 머스크가 한진해운이 가진 점유율을 노리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신항 한진해운 부두 전경

◆ 정부 뒷북 대응에 해운업계 ‘분통’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4일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관세청·중소기업청 등 9개 부처가 참석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국적 선사들의 운항노선 기항지를 확대하는 등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해운업계는 이미 한 발 늦은 조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컨테이너 선사이기 때문에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연관 산업에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컨테이너 비중이 낮은 STX팬오션이나 대한해운의 사례만 보고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 같다”며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선주협회는 지난 29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세계 120만개 컨테이너 운송이 중단되는 등 물류대란이 발생하고, 이와 관련해 140억달러(1조5600만원) 규모의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주협회는 회사 매출 소멸·환적화물 감소·운임 폭등 등으로 매년 17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선주협회가 내놓은 분석이 극단적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LG전자 등 수출업체들은 이번 한진해운 사태가 매출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하고 있다. 조성준 LG전자 사장은 지난 2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LG전자는 냉장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한진해운 선박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정부는 한진해운 물량을 다른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은 9월 8일이 돼야 투입될 수 있다. 납기 준수가 생명인 수출업체들은 발만 구르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