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젊은 시절 실리콘밸리로 갈 기회를 포기한 때입니다. 안정적인 삶과 직장을 택한 결과 LS산전에서 사장까지 지냈지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설렘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대기업 사장직을 내려놓고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글로벌 에너지 플랫폼 기업을 창업하게 된 이유기도 합니다.”

최종웅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대표(60)는 “젊은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함께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만들 기회는 놓쳤지만 사회를 변혁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단해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

LS산전 사장 자리를 박차고 최 대표가 창업한 인코어드는 에너지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미터 전문 기업이다. 최 대표는 지난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 회사를 만든 후 한국과 일본에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주변에서 은퇴할 나이에 창업에 도전했다고 하면 놀라고, LS산전 사장직을 박차고 나왔다는 말에 더 놀란다”면서 “나이가 들어도 마음 속 열정은 아직도 뜨거워 창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회사 내에서 신세대 경영자로 불린다. 인코어드 직원들은 “그가 평소 청바지에 간단한 남방 차림으로 근무를 하고 직원들과의 불필요한 보고 절차를 없애고 메신져로 업무를 처리한다”며 “20대 못지 않은 열린 사고로 회사를 수평적으로 이끌면서 미국식 기업문화를 인코어드에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코어드는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투자펀드사 QSP와 미국 포메이션8을 비롯해 삼성, LG 등으로부터 2150만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 누진제 요금 폭탄으로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인코어드가 만든 실시간 에너지 스마트미터 ‘에너톡’이 큰 주목을 받았다. 에너톡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통신·에너지 융합 제품이다.

조선비즈는 8월 12일 인코어드 한국법인이 위치한 논현동 KTS 빌딩 8층에서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를 만났다.

― 요즘 누진제로 말이 많습니다. 덕분에 누진제 구간을 알려주는 인코어드의 ‘에너톡’이 유명해졌습니다.

“에너톡은 가전기기별로 에너지 사용량을 데이터로 수집해 분석한 후 에너지 절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실시간 에너지 계량기입니다. 가정 내 분전반(일명 두꺼비집)에 에너톡 측정용 기기를 설치한 후 스마트폰에 설치된 에너톡 앱을 통해 전기 사용량, 사용량 예측, 대기 전력, 누진 단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전기 사용량과 요금을 파악해 대기 전력 낭비를 막을 수 있고 누진제 등 ‘전기요금 폭탄’도 예방할 수 있죠. 기존의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확인할 수 없던 가전기기 노후화와 계량기 오작동·결선 등도 파악할 수 있구요.”

― 에너톡과 경쟁하는 업체는 어디입니까.

“사실상 경쟁 업체가 없습니다. 실시간 에너지 스마트미터를 개발한 것은 우리가 세계 최초입니다. LG유플러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스마트미터도 저희가 공급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지난해부터 계약을 맺고 저희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플랫폼에서 작동할 때의 알고리즘,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모두 특허로 등록했습니다. 에너지 분석 플랫폼을 아무나 흉내내기 힘들게 만들었어요. 지금 회사가 보유한 특허만 52개인데, 불과 3년 만에 취득한 겁니다. 올해 연말까지 100개, 5년 내로 200개를 등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스마트폰에 깔린 ’에너톡’ 앱이 실행되는 모습(왼쪽)과 ’에너톡’ 측정기기가 분전반에 장착된 모습

― 에너톡 개발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국내에서 건물용·산업용 스마트미터를 제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LG산전에 근무 중인 1992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GE가 1985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건물용 산업용 스마트미터를 한국전력이 한 대당 1200만원을 주고 구입해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계량기를 만드니 1200만원 하던 계량기 가격이 25만원으로 뚝 떨어졌어요.

제가 에너톡을 만든 것은 에너지 수요 관리를 통해 에너지와 돈을 절감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으면 환경도 보호할 수 있거든요. 저는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현황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에너지 수요 관리 정책도 수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낭비되는 에너지를 관리할 수도 있구요.”

― 누진제 문제로 요즘 말이 많은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나라에는 가정용 누진제가 6단계까지 있습니다. 단계별로 시간당 요금이 최대 11.7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일본은 1.4배, 미국은 1.1배인데 우리만 11.7배니까 사람들이 민감한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누진제 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은 가정용 전력 사용량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황 파악조차 안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었던 겁니다.

산업용과 빌딩 등은 검침 시설이 잘돼 있어 파악이 가능하지만 가정용은 계량기가 달려 있어도 원격 검침이 안 되거든요 . 보통 가정 내에 계량기 보고 전기를 썼다고 하는데 그것은 계량기 눈금을 보고 손으로 적는 겁니다. 원격 검침이 안되고 있는거죠. 한 달에 한 번 경비실에서 적든지, 한전 검침원이 적든지 해서 PC에 입력하는데 그게 제대로 된 데이터일 리가 없습니다.

누진제 단계를 낮추면 수요가 급증할텐데 그러면 전력 통제가 안되니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전력 사용량을 얼마만큼 늘리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누진제 단계를 바로 조정할 수 없는 겁니다.”

― 누진제 논란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실 방법은 누진제를 없애고 실시간 요금제로 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번씩 수요량에 따라 전기공급 가격이 바뀌면 됩니다. 가령 일본은 실시간요금제입니다. 한시간에 한 번 전기 발생하는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시간에는 가격이 비싸죠.

우리는 24시간 내내 요금이 같기 때문에 전력사용을 통제하기 위해 누진제를 부과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면 가격 자체가 전력사용을 통제할 것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수요관리가 가능해질 수만 있다면 누진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실시간 에너지 스마트미터가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 통신사 중에는 LG유플러스와 계약을 맺고 홈IoT 서비스에 에너지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보이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 등 해외 각지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인코어드를 독자 개발하고 하드웨어는 외부에 개방하는 전략을 쓰려고 합니다. 인코어드는 에너지 빅데이터 분석과 그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를 제공하는 단말기 등 하드웨어는 외부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구글처럼 플랫폼 중심의 기업이 되는 것이 인코어드의 지향점입니다.”

― 국제 전기전자 표준위원회 위원, 대기업 CEO 등 이력이 화려한데, 인생에서 후회하는 순간도 있습니까.

“저는 국내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을 가장 후회합니다. 회사에 들어간 지 1년쯤 지난 1983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오퍼(자리 제공)가 들어와 미국으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안정적인 생활 때문에 회사에 남기로 했었죠. 제가 빌게이츠, 스티브잡스와 함께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항상 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회를 놓친 게 가장 아쉽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28살이었는데 실패보다는 안정을 택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을 보면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부딪혀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성취감을 느낀 순간은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항상 어떻게 말하면 운이 좋은 것이기도 한데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도전 할 땐 꼭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신사업들이 잘 돼서 저 같은 경우 승진이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39세에 LS산전에서 임원(상무)이 됐으니까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죠. 큰 프로젝트에서 계속 성공을 거두니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투입됐습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가 국제 전기전자 표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위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 LS산전 사장직을 포기하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까.

“저는 상무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었습니다.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계속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회사를 나왔다면 이미 수 조원 규모의 회사를 일궈놓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늦게 그만둬서 조금 늦어진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는 생활이나 생각이 로봇 같아진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직원 스스로가 할수 있는게 별로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장인 저 조차도 말입니다. 봉급쟁이는 결국엔 로봇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11년에 나가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제가 나갈 것 같아 보이자 사장직을 맡긴 겁니다. 1년간 사장직을 수행한 끝에 결심을 내렸죠. 창업하자. 이러다 제 꿈을 펼치기가 너무 늦겠다 싶었습니다.”

― LS산전을 경영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월급을 받는 사장이 아니라 제가 직접 이곳을 만들고 키워가는 사장이기 때문에 제 경영철학을 이 회사에 100%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인코어드는 각 부서가 밴처캐피탈의 형태로 운영됩니다. 국내 법인의 경우 7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부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각 부서는 하나의 벤처개피탈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미니 CEO가 있어요. 각 CEO가 저에게 프로젝트를 보고하면 저는 그들에게 투자를 해주고 전권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대신 모든 책임은 각각의 미니 CEO가 지도록 하는거죠. 직원도 미니 CEO가 뽑고 싶은 사람을 채용할 권한을 줍니다. 사장인 저는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사장은 하나 하나 업무에 대해 지시를 내리지 않습니다. 지켜보고 지원하는게 제 역할입니다. 대신 업무활동을 통해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은 가차없이 퇴사 대상이 됩니다. 지금까지 6명 정도가 성과 미달로 퇴사를 했습니다.

또 한가지 특별한 점은 우리 회사엔 승진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연봉으로 결정합니다. 연봉 격차가 제법 큰 편입니다. 제일 적게 받는 사람이 3000만원을 받고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1억4000만원을 받습니다. 나이와 경력을 고려하기 보다는 성과를 평가해 연봉으로 보상해 줍니다.

회사 직원을 처음에 뽑을 때 제가 원하는 인재들을 채용했습니다. 회사 인적 구성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직원 중 약 30% 정도가 박사학위 소지자에요. 삼성전자에서 운영체제 개발에 참여했던 직원 6명도 저희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1조원 이상 기업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으로 이 회사를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현재 미국 투자회사들이 우리 회사의 가치를 약 1500억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몇년 안에 우리 회사를 1조원이 넘는 가치를 가진 회사로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에너지 수요관리에 강점을 가진 에너톡이 해외시장에 빠른 속도로 보급될 겁니다. 현재 활발히 일본 진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1957년 강릉 출생
-1976년 강릉고 졸업
-1981년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5년 충남대 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석사
-1999년 충남대 대학원 컴퓨터공학과 박사
-2012년 고려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1982년 금성사(현 LG전자) 입사
-1995년~2003년 APT(차세대 국제 전력기술 컨소시엄)부회장
-1999년 LG산전 상무
-2003년 ~ 현재 국제 전기전자 표준위원회 (IEC-ACTAD) 국제위원 및 한국위원장
-2005년 LS산전 전무
-2009년 LS산전 부사장
-2009년~ 현재 한국 공학 한림원 회원
-2012년 LS산전 사장
-2013년~ 현재 인코어드 최고경영자(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