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가 아닌 사람이 회계법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을 쓰는 행위가 감사인의 독립성을 해칩니다. 이들이 ‘부회장’, ‘고문’ 같은 직함을 가지고 일종의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회계 시장을 망치고 있어요. 금융당국이나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나서 시정해야 하는데 그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청공회) 회장은 지난 2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회계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회계법인에서 ‘부회장’ 직급을 쓰는 것은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 윤리규정 위반인데도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발표한 것은 ‘직무유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가족회사 감사를 맡은 삼도회계법인의 부회장이 회계사 자격증이 없는 데다 우 정무수석과 육촌 친인척이라는 의혹에 대해 한공회가 빠른 속도로 마무리 지은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회장은 한공회에서 제정한 『감사인 등의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을 짚어가며 조목조목 따졌다.

“이 규정을 한공회에 들이댔는데도 ‘몰랐다’는 무책임한 답변이 왔습니다. 회계사가 아닌 이들이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감사일감을 따오면서 회계감사 시장이 망가지는데 한공회가 바로잡을 의지가 전혀 안 보여요.”

이총희 회장이 활동하고 있는 청년공인회계사회는 젊은 공인회계사들이 주축으로 꾸려진 모임이다. 이 회장은 2011년부터 청년공인회계사회를 꾸려오며 한국공인회계사회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22일에 열린 62회 한공회 정기총회에서도 한공회의 재무제표 공개, 회계사의 처우 개선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일부 회원들은 이 회장이 젊은 혈기에 꼬투리를 잡아 총회시간이 길어졌다고 투덜댔지만 일부는 이 회장 덕분에 형식적으로만 끝나던 초고속 총회에서 이례적으로 회원들의 의견 개진이 이뤄졌다며 환영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 회장

이 회장은 최근 감사인의 책임만 강화하는 기류에도 반대 의견을 표했다. 감사인에게 능력 밖의 업무를 요구하고 감사인 책임만 강조해서는 회계부정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회계감사는 정수기에 있는 ‘필터’와 같습니다. 어느 정도 오염된 물을 정수할 수는 있겠지만, 썩은 물을 필터에 거른다고 바로 식음수가 되진 않아요. 기업부터 회계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가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ㅡ청년공인회계사회 활동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공인회계사들이 모인 까페가 있다. 그 곳에서 공인회계사들의 불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고 이 정도라면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1년이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당시엔 저도 회계법인 소속이었기 때문에 감사 기간엔 청년공인회계사회 활동을 못하다가 한가한 때 활동하곤 해서 영속성이 좀 없었다. 하지만 2014년에 감사업무 부서를 떠나면서 좀 더 신경 쓸 수 있게 됐다. 까페 회원은 현재 600명 정도 되지만, 모두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 활동까지 열심히 해주는 분들은 20~30명이고 활동은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재정적으로 도움를 주겠다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300명 정도 된다.”

ㅡ한국공인회계사회와 주로 날선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지난 번 한공회 총회 때는 재무제표 공개라거나, 공인회계사 처우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이번에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가족회사 ‘정강’의 감사를 육촌 친인척이 소속된 회계법인에 맡겼다는 점에 대해 규정 위반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한공회에는 우병우 민정수석 건에 대해 불법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육촌 친인척은 회계사가 아니라 한공회에서 징계를 내릴 수 없고, 회계사가 아닌 사람이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것도 ‘이사’ 직함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한공회가 이 문제를 곰곰히 뜯어볼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한공회에서 제정한 『감사인 등의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 제4조의2(명칭사용) 제3항을 보면 ‘회계법인은 공인회계사가 아닌 자로 하여금 회장, 부회장, 대표 등 당해 회계법인을 대표하거나 경영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을 아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엄연한 규정 위반이다.”

ㅡ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한공회 반응은 어땠나.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몰랐다’고 답했다. 한공회가 정한 규정도 제대로 몰랐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회계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부회장’ 직함으로 활동하며 생기는 폐단을 한공회는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하고 있다. 한공회는 어쨌거나 가장 공신력 있는 회계사 단체 아닌가. 하다못해 한 줄 논평이라도 ‘잘못된 관행이다, 아니다’라고 냈어야 하는데 아무런 코멘트도 낼 수 없어 기탄스럽다.”

ㅡ어떤 폐단이 있을까.

“회계사가 아닌 사람들이 부회장이나 고문 이름을 달고 영업을 하는 것이 문제다. 한마디도 브로커를 끼운 것 아닌가. 일 안하고 가져가는 것이 너무 많다. 1억원을 수임해오면 2000만원 정도를 수수료로 준다고 하는데, 그만큼 감사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ㅡ회계사로 직접 활동하면서 이런 부회장 브로커로 인해 겪었던 피해가 있을까? 아니면 지켜봤던 사례가 있다면.

“대형회계법인 A사의 얘기다. 한 코스닥 상장사의 감사 계약을 따기 직전 단계였다고 한다. 실무자끼리 이야기가 다 됐고 상장사 대표의 사인만 남은 상태였다. 회사를 이해해야 하고 또 업종 특성을 파악해야 감사업무를 할 수 있으니 회계법인 팀 소속 회계사들은 회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감사인이 B회계법인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코스닥 상장사 대표가 다니는 교회에 B회계법인 부회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오너에게 상장사 회장에게 직접 영업해서 실무선에서 이야기가 다 완료된 것이 틀어진 것이다. B회계법인도 준비를 잘 해갔겠지만 감사 대상 회사를 다 파악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면 회계감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리 없다.”

ㅡ우병우 민정수석의 육촌처럼 회계사가 아닌데 회계법인으로 임명된 경우가 실제 회계법인에 얼마나 많나.

“비일비재하다. 회계법인에도 문제가 있다. 돈만 잘 벌어오면 된다는 의식은 문제다. 문제제기를 위해 전수 조사를 해보려고 금융위원회에서 유권해석을 요청했었다. 비회계사들이 회계법인에 재직하는 것이 문제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금융위 답변이 회계사법은 회계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이사’ 직급을 사용할 때 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전수조사를 접었다. 감독당국도 바로잡을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본다. 단속할 의지가 전혀 없어보인다. 언론에서 문제가 되고 실제 문제가 있다면 처벌 대상 직급을 ‘이사’로만 적용할 게 아니라 부회장, 고문 등으로 확대하면 되는 것 아닌가.”

ㅡ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이야기로 회계업계가 떠들썩하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분식회계다. 어떻게 해야 분식회계가 근절될 수 있을까.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분식회계에 관여한 사람이 그대로 복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식회계로 경영권을 위협받았던 모 회사의 재무실장은 분식회계를 뒤집어쓰고 징역을 맞았는데, 그 이후 광복적 특사로 풀려나고 그 회사 사장으로 복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총수에게 충성한 대가가 분식회계로 되는 되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분식회계가 근절될 수 있을까? 분식으로 큰 돈을 벌고 벌금 몇 푼에 죄송하다고 몇번 하면 없던 일이 되는 현재 상황이 반복된다면 분식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미국의 회계감사 제도를 들여왔다면 처벌도 미국처럼 해야한다.”

ㅡ처벌 강화를 말씀하셨는데, 어느 범위까지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보나.

“회계 실무자들까지 처벌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늘 중요한 것은 임원들이다. 감사에 실제로 나가서 회계사가 수정사항을 지적하면 기업의 회계팀 실무자들은 대부분 지적사항에 대해 수긍을 한다. 그런데 그걸 고쳐오지 못한다. 위에 보고를 하면 임원들이 ‘왜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나. 무능하다’며 호통을 친다. 잘못한 걸 바로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임원급 경영진들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경직적이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실무자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들 위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맞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 회장

ㅡ 회계법인에서 감사 실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실무자에 대한 동병상련도 있는 것 같다.

“감사 업무에 실제로 투입되면 그 회사 실무자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단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감사에 나갔는데 기업 실무자가 2~3명 뿐이어서 자료를 요청하기도 미안해진다. 이 실무자들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 이 사람들에게 감사는 부수적인 업무 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 회계법인이 회계사 몇 명 투입하는지 공시하라고 하는데, 사실 기업도 실무자를 몇 명 투입했는지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ㅡ처벌 강화 방식은?

“기업 대표에 대한 처벌 강화를 강력히 주장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표가 과징금을 개인 돈으로 내도록 해야 한다. 법인 자금이 아니라 개인이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게 특징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벌금이 나가면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기업에 회계 실무 담당자를 1명이라도 더 뽑도록 할 것 아닌가.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면 단순한 해결책이다. 지금까지 분식회계를 했다고 대표 개인에게 처벌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과거 대우건설 때 1200만원의 과징금을 대표에 부과한 적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과거 행동에 책임이 있던 임원에게 부과한 게 아니라 현직 대표이사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분식을 지시한 대표는 퇴사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나 같아도 분식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확률적으로 무한이고, 손해는 ‘0’ 아닌가.”

ㅡ일부에선 회계법인 등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한다. 감사 품질에 대한 회계법인 등급제가 공표가 되면 그에 따라 수수료가 다르게 매겨질 것이고,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감사 과정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앞서 말했다시피, 회계사와 회계법인에 책임만 지우려고 해봐야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등급제 도입도 마찬가지다. 일단 기업이 조직적으로 감사인을 속이려 들면 감사인은 속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사람들이 많이들 오해하는데 기업감사를 마치 검찰처럼 수사를 할 수 있다거나 감사원처럼 큰 권한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실상은 채권 채무관계 회사를 쌍방 확인하는 것도 힘들다. 애초에 기업이 썩어있으면 회계법인에게 아무리 책임을 지우려고 해도 제대로 된 감사가 불가능하다. 썩은 물은 필터링한다고 바로 마실 수 있는 음용수가 되는 게 아니다. 회계사들에게 자꾸 썩은 물을 주면서 왜 못 걸러내냐며 능력 밖의 일을 요구하면 안 된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1985년 충북 출주 출생. 2004년 충주고 졸업, 고려대학교 입학. 2007년 공인회계사회 합격. 2008년 삼정회계법인에 입사한 뒤 삼일회계법인, 이현회계법인을 거쳤음. 현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비상근직으로 활동하고 있음. 2011년부터 청년공인회계사회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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