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빅데이터 플랫폼 전문업체 클라우다인에 11억원을 투자할 때, 김병곤 당시 사장(현 엑셈 빅데이터 사업 본부장)한테 ‘돈 많이 안 벌어와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사를 엑셈에 흡수합병한 후 한 달 만에 말을 바꿨습니다. ‘얼른 돈 벌자’고 말했죠. 그리고 ‘돈을 많이 안 벌어도 상관없다는 건 그 때 얘기야. 내 말이 한 달, 두 달 후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네가 아마추어야’라고 덧붙였습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딨습니까. 일단 회사가 살아남아 직원 월급은 줄 수 있어야죠. 그게 내 스타일이에요. 나는 계속 바뀌어요.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요.”

조종암 엑셈 대표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을 많이 만나봤지만, 조종암 엑셈 대표는 참 특이했다. 외교학과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엔지니어들한테는 근무 시간에도 책을 쓰라고 한다. 솔직담백한 인터뷰도 인상이 깊었다. 조 엑셈 대표는 “다 믿는 직원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라며 개구쟁이 웃음을 지었다.

엑셈은 데이터베이스(DB)를 관리하는 DB모니터링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2000년 초만 해도 국산 DB모니터링업체는 전무했고 유통업체들이 외산 소프트웨어 업체를 들여와 큰 마진을 붙여 판매했다. 이제 이 분야의 국내 시장점유율 1위는 엑셈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설립 14년 만에 코스닥에 등록됐다.

최근 엑셈은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회사를 연이어 인수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7월 DB보안업체 신시웨이 지분 50.24%, 9월 인메모리DB업체 선재소프트 지분 23%, 11월에는 로그분석업체 아임클라우드의 지분 25%를 인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클라우다인을 인수하고 올해 6월 이 회사를 엑셈에 흡수합병했다. 17일 조 대표를 만나 엔지니어를 거쳐 회사를 차리게 된 이야기와 엑셈의 사업 전략을 들어봤다.

◆ 책 쓰는 엔지니어 키우는 ‘지식경영’과 일주일 결정도 뒤집는 ‘실시간 경영’

―한국오라클에서 엔지니어(DB기술자문팀 컨설턴트)로 4년 동안 일하다 창업했습니다. 엑셈은 어떤 회사입니까.

“한 기업의 전산시스템에는 데이터베이스(DB)와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가 아주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엑셈은 DB와 웹 서버를 모니터링(감시)하고 분석하고 문제가 있으면 튜닝하는 회사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 DB모니터링 회사를 차리니, 다들 비웃었습니다. 2000년 초만 해도 DB 모니터링과 튜닝 소프트웨어는 모두 외산,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200원에 들여와서 1000원에 파는’ 격인 딜러(유통업체)들을 보며 제품 개발에 몰두했죠.

우리가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를 ‘시스템 소프트웨어’라고 해요.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고객이 바로 쓸 수 없어요. 그 소프트웨어가 좋다고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는 건 그 소프트웨어 회사에 있는 엔지니어입니다. 소프트웨어의 기능이 약해도 지식이 많은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오라클에서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나와서 서비스로 승부했습니다. 이제 DB모니터링 분야에서는 엑셈이 워낙 독보적이라 미국 소프트웨어업체도 한국에서 장사하지 않아요.”

―외교학을 전공하셨는데 시스템 소프트웨어업체를 창업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외교학과(서울대)를 다니면서도 제 관심은 다른 데 쏠려 있었습니다. 외교학이라는 학문에 재미도 못 느꼈어요. 수업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했고 선배와 논쟁을 하려면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했습니다.

오히려 계량 경제학 같은 수업에 재미를 붙였어요. 1988년 어느 날 과제를 하려고 전산소에 갔다가 IBM 3090 호스트 터미널에 SAS(통계분석시스템·Statistical Analysis System) 소프트웨어를 처음 접하고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전산소에서 살았지요. 포항제철에 입사하니 포항공대에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석사 딸 기회를 주더군요. 석사 논문이 ‘리스크 매지니먼트가 내재화된 프로젝트 관리'입니다. 1996년부터 한국 오라클에서 DB 컨설턴트로 4년 있으면서 기술도 익히고 책도 쓰고 특허도 냈어요.”

―어떤 책을 쓰셨습니까.

“2000년에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오라클 SQL 튜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오라클 DB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유형에 따라 분류를 하고 튜닝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거든요. 제가 오라클 DB컨설턴트 시절 고객사를 많이 다니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사례 연구도 풍부하게 넣었고요.

책을 쓰면서 지식을 총동원하려다 보니 제가 살면서 잊고 있던 경험들이 하나씩 떠오르더라고요. 그 기억들을 떠올리기 위해 엄청나게 몰입했어요. 중간에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서도 안 됐죠. 몰입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떤 문장은 정말 제가 쓴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파는 영업 직군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개발 직군보다 시스템을 다루는 엔지니어를 더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예술가가 됩니다. 어떤 직관이 시스템의 불협화음을 느끼게 해요. 극도로 집중하다 보면, 시스템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죠. ‘나 여기 아파'라고. 그 직관을 믿고 명령어를 넣어보면 딱 해결이 되는 겁니다. 고객사가 진정으로 그 엔지니어를 존중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똑똑한 엔지니어를 키우고 우대하는 것이 엑셈의 경영 방침입니다. 똑똑한 엔지니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잘 판매해 경영의 선순환을 이룹니다. 또 다른 똑똑한 엔지니어를 회사에 불러들여 인재의 선순환도 이루고요.

처음부터 그런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3년 하면서 ‘이렇게 해야 하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경영 방식이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지식경영’과 맥이 닿아있더라고요. 지식경영의 대가인 일본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가 쓴 책에 따르면, 회사 내 인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지식경영의 요체라고 합니다. 그가 주장한 지식경영과 엑셈 경영 방침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지식경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엔지니어에게 책을 쓰게 했습니다. 회사에 관련된 모든 것을 지식화하고 지식인을 양성하니 퇴사율이 낮아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직원들이 반대했지만 사장인 제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추진했습니다.

단행본을 쓰면 달라집니다. 엔지니어는 책을 쓰기 위해 자신이 지금껏 습득했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던 저력을 발견하게 되고요. 이렇게 쓴 책은 고객사에 영업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엔지니어들이 책을 쓴다고 하면 일을 아예 빼 줬어요. 업무 시간에도 책을 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식경영에서는 선순환하는 인재 풀을 만들려면 3~5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저도 그 정도 투자했습니다.”

―출판은 누가 맡나요?

“엔지니어가 쓴 책을 회사에서 편집, 인쇄까지 책임집니다. 엑셈의 사업 목적에는 출판도 있습니다. 회사는 지금까지 총 14권의 책을 발행했습니다. 책을 쓴 엔지니어에게는 저작권료 10%를 떼어 줍니다. 예전에는 잡지도 만들었습니다. ‘DBMS 인터널’이라는 계간지였는데 2년 정도 출판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폐간했어요. 이번에는 ‘만화로 보는 오라클 튜닝’(저자 엑셈 컨설팅본부)이라는 만화책도 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얼마나 됩니까.

“돈보다는 명예 때문에 하는 겁니다. 엔지니어가 책을 쓰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책으로 고객사, 대기업에 기업 세미나, 저자 직강(직접 강의)을 하러 나가거든요. 엑셈 엔지니어는 몸값이 달라지고 공인이 되는 겁니다.”

엑셈 컨설팅본부는 최근 ‘만화로 보는 오라클 튜닝’을 펴냈다.

―책을 쓰라는 것 외에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까.

“소프트웨어 시장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회사가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그러려면 바로 어제 했던 결정이라도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늘 뒤집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실시간 경영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상황을 지켜보며 그에 맞게 선택을 변화해 나가는 겁니다.”

―결정을 바꾸면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까.

“대기업 출신으로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과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기업에서 계획서를 잘 써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죠. 그 계획서로 예산을 획득하고 조직을 얻어요. 그런 사람은 최소한 6개월, 1년은 자신을 믿고 예산과 조직을 줘야 한다고 말하죠. 그러나 한 달 뒤, 두 달 뒤 시장은 바뀝니다. 똑똑한 사람이 내세웠던 장기 전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적합하지 않아요. 시장(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1년 후의 시장을 예측하고 장사하겠어요? 그때 그때 바꾸죠. 작은 기업은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조종암 엑셈 대표

◆“빅데이터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지난해 6월, 엑셈은 창립 14년 만에 코스닥에 입성했습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때 상장하겠다고 정교하게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저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이지는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제조업계와 달리 소프트웨어 업계는 변화가 너무 빠릅니다. 삼성전자는 60년 됐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몇 년 됐습니까. 페이스북은 지금처럼 성장하는 데는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는 항상 새로운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상장 때 시가총액은 얼마로 출발했습니까.

“약 1000억원이었어요. 지금은 1100억원 정도입니다. 한때 2000억원까지 갔다가 떨어졌습니다.”

―올해도 상반기가 지났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나요.

“엑셈은 신규 사업으로 빅데이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4억원 규모의 빅데이터 과제(스마트팩토리)를 수주받았습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엑셈의 대표 DB모니터링 솔루션 제품 맥스게이지의 클라우드형 제품을 제공하기로 했고요. 기존 DB모니터링 사업은 기존대로 할 겁니다. 지난해 매출은 207억원이었는데, 올해는 빅데이터에 박차를 가해 총 2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신규 사업으로 왜 빅데이터를 낙점했습니까.

“빅데이터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제는 기업의 정형 데이터(특정 형식에 맞게 잘 정리된 데이터)만 다뤄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기존의 데이터베이스 기술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하둡과 같은 빅데이터 처리 엔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시웨이, 선재소프트, 아임클라우드, 클라우다인의 지분을 인수한 겁니다. 클라우다인은 아예 엑셈과 흡수합병했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훨씬 더 간편하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음식점을 예로 들어볼까요. 고객들이 주문했던 음식 정보를 신메뉴 개발에 활용한다면 고객의 취향에 딱 맞출 확률이 높아지죠. 은행의 경우, 고객의 입출금시간, 보통 예금 유지 기간 등을 분석해 예금 유지 전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주로 빅데이터 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데 쓰셨군요.

“그렇죠. 엑셈은 정형 데이터 처리 기술이 뛰어난 회사입니다.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과감히 투자한 겁니다. 코스닥 등록으로 조달한 100억원 정도의 자금을 거의 다 썼습니다. 시가총액 1200억원 정도가 됐을 때 좋은 조건의 CB(전환사채) 150억원을 추가로 조달했습니다. 만약 올해 빅데이터 매출이 좋아서 시가총액이 2000억원 정도로 오른다면 추가로 200~300억원 자금을 추가로 조달받을 예정입니다.

최근 엑셈과 또다른 소프트웨어 업체 야인소프트가 디지털사이니지 사업 전담을 위한 합작법인 ‘디지털피쉬(Digital Fish)’를 설립했습니다. 이 합작법인이 태국 최대의 한류타운인 ‘방콕SHOWDC몰’ 사업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사이니지 광고도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합니다. 궁극적으로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20대 여성이면 거기에 맞는 광고를 보여주는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을 구현할 생각입니다.”

―해외 사업도 진행 중이십니까.

“해외 진출에 대한 ‘장밋빛' 전망 같은 거는 없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이 전 세계 시장의 2% 남짓한 미미한 수준이니, 여기서 성장한 회사가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보는 편입니다. 엑셈이 일본, 중국, 미국, 베트남 4개국에 지사를 두고 해외에 문을 두드린 지 10년이 지났습니다만, 성과가 크지는 않았죠.

우선, 코스닥 등록으로 조달한 자금을 해외 사업을 확대하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가총액 1000억원 정도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엑셈처럼 잘하는 회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면 뭐 합니까. 성공 확률이 낮은데요. 우선, 빅데이터에 투자해서 엑셈을 더존비즈온, 안랩, 한글과컴퓨터(한컴)처럼 시가총액이 6000억원에 달하는 중량급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국내에서 몸집을 키운 다음 중국이든 미국이든 밀어붙여야 한다고 봅니다.”

―엑셈이 과일 먹는 회사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엑셈은 8년 전부터 과일 무제한 공급이 원칙입니다. 회사에 김치냉장고 한 대, 큰 냉장고 한 대가 있어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꺼내 먹습니다. 예전에 사무실이 역삼동 아주빌딩에 있었을 때 청과물 도매 업체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과일이 열 박스씩 매일 배달되니까요. 열 박스 중 한 박스는 늘 청소원과 경비직원 분께 드렸는데, 저를 아주빌딩의 주인이신 아주산업 회장 이은 서열 2위급 정도로 대접해주더라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