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시절 바다 위를 호령하는 선장이 되고 싶었다. 부산 앞바다를 보고 자라서였을까. 대학에서 토목공학과를 전공하고도 그는 해운회사에 입사했다. 해외 영업을 하던 그는 입사한지 2년이 지난 1990년 화물운송 중개업체 팬스타엔터프라이즈를 차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 그는 10년 넘게 자기 배 없이 회사를 키워나갔다. 그러다 매물로 나온 일본 국적 카페리가 눈에 들어왔다. 2002년 거금 350억원을 투입해 그 배를 샀다. 그는 오랜 꿈을 이뤄준 배 이름을 '팬스타드림'호라고 지었다.

8월 10일 오후 서울 무교동 어린이재단 건물 5층에서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곳은 부산에 본사를 둔 팬스타그룹의 서울 지사다. 팬스타는 일본 오사카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팬스타그룹은 부산 앞바다 '원나잇 크루즈' 상품으로 알려진 '팬스타드림'호(2만1688톤급)와 화물페리인 '산스타드림'호(1만1820톤급), '스타링크원'호(1만2968톤급), '스타링크호프'호(3593톤) 등 모두 4척의 선박을 운항하는 선사로 커졌다. 작년 12월 현대상선과 함께 한국 최초의 국적크루즈법인 코리아크루즈라인의 양대 축이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어린이재단 건물 5층에 있는 팬스타그룹 서울지사 회의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느라 눈코뜰 새가 없다. 1년 365일 중 100일 넘게 일본 지사에 머물고, 나머지 시간에는 부산에 있거나 해외 크루즈 선사를 방문한다. 워낙 이동이 많은 일정이다 보니 서울-부산을 오가는 KTX 안이 일터다. 일본 지사를 갈 때는 팬스타드림호가 곧 사무실이다.

작년에는 동북아시아 크루즈 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른 중국 관광객의 성향 분석을 하러 중국 여행사들을 쉴 새 없이 접촉했다. 김 회장은 휴가기간도 딱히 없다. 올해 여름 휴가는 다녀왔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저기 다 다니는데 딱히 휴가가 필요하겠냐"고 했다. '업무가 곧 여정이요. 사실은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하고 있소'라는 뜻으로 들렸다.

김 회장에게 크루즈는 '꿈'이자 '목표' 그 자체다. 그는 팬스타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팬스타드림호를 대체할 동북아 최초 크루즈 페리호를 3년 안에 선보이겠다고 했다.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은 '진짜 크루즈'를 운영하기 위해 코리아크루즈라인의 전진을 준비하고 있다.

-코리아크루즈라인 설립을 축하드린다. 팬스타가 큰 역할을 담당한 특별한 이유는.

"정부도 처음엔 우리 회사를 몰랐다고 하더라. 더 큰 회사가 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데 크루즈 활성화 단계에서 사업 적임자를 찾다보니 업계에서 팬스타 이름이 자꾸 나왔다고 합니다. '당신히 해달라'고 하더라. 국제 항로(부산-오사카) 크루즈를 꾸준히 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띈 것 같았다."

-법인 설립 과정에서 어려움은?

"사람들이 크루즈 산업에 대해 아직 많이 모르는 부분이 많더라. 크루즈사업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김 회장은 2008년 크루즈 사업을 시작했다가 1년만에 5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보고 철수한 아픔이 있다. 당시 '팬스타써니호'를 팔고, 용선했던 '팬스타허니호'를 선주에 반환하면서 가까스로 회사를 살렸다. 2012년에 크루즈 운항을 시작한 하모니크루즈가 더 큰 적자를 안고 회사 문을 닫은 것에 비하면 다행스런 일이었다.

-크루즈 사업에서 실패 경험이 있다. 왜 다시 뛰어들었나.

"결정이 쉽진 않았다. 처음엔 '난 못한다'라는 말도 했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건 크루즈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크루즈산업활성화법이 통과된 것도 새로운 사업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제반 여건이 좋다고 판단했다."

-부산 앞바다 '원나잇 크루즈'라는 건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2002년 호주 출장을 갔다가 골드코스트 바닷가에서 신기한 광경을 봤다. 주말 동안 정박도
안한 채 연안을 오가던 '캡틴 쿡'호가 눈에 들어왔다. 팬스타드림호 절반 크기도 안되는
배였다. 알고보니 주중에 여객운송을 하다가 주말에는 연안 크루즈로 감쪽같이
변신한 선박이었다.

무릎을 '탁'하고 쳤다. '주중 운항, 주말 휴식' 일정인 팬스타드림호에 안성맞춤 사업
아이템이었다. 주말에 배를 놀릴 필요가 없지 않나. 크루즈에 눈을 뜬 결정적인 계기였다. 귀국 후 곧장 사업을 추진했고, 1년 뒤 허가를 받았다."

작년 말 출범한 코리아크루즈라인은 올해 격랑에 휩쓸린 해운업계의 영향을 받았다. 김 회장은 출자 파트너인 현대상선이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대상선과 팬스타그룹은 코리아크루즈라인 설립에 정확히 반반씩 출자했다.

현대상선은 이제 급한 불을 끄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고,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코리아크루즈라인의 한 축인 현대상선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아직 새 대표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크루즈 사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크루즈 업계에서는 '전화위복'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부가 크루즈 활성화 목표를 유지하는 한 산은과의 의견 조율이 오히려 원활해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 회장은 여러 변수는 있겠지만, "흔들림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동북아 최초 '크루즈 페리' 3년 안에 띄운다"

-팬스타그룹에서 새로운 배를 건조한다는 말이 들린다.

"사실이다. 현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팬스타드림호를 대신할 배를 준비해야한다고 결론내렸다. 크루즈 운용을 하면서도 절대 망하지 않는 선박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팬스타드림호와 함께 정기 크루즈를 하면서 완전 자생적인 크루즈 선사로 발돋움할 생각이다.

배 종류는 크루즈 페리호다. 북유럽 쪽에는 있는데 동북아 지역에선 최초의 시도다. 리조트와 크루즈 기능을 갖추면서도 요트 콘셉트도 포함된 배, 여기에 화물 선적이 가능한 선박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복합 콘셉트의 배라고 보면 된다. 갑판에 호화 수영장도 갖추고, 요트처럼 방 내부를 고급스럽고 콤팩트하게 구성할 계획이다. 디자인은 이미 끝낸 상태다."

-건조 규모는?

"2만톤 이상 3만톤 이하급 선박이다. 팬스타드림호보다 조금 큰 규모다. 탑승객 규모는 객실 디자인 구성 등을 통해 당연히 늘어난다. 현재 일본 조선소와 한국 조선소 중심으로 발주 얘기를 하고 있다. 3년 안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코리아크루즈라인 진행은?

"크루즈 사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성공시키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 일단 코리아크루즈라인은 관광객 2000명 이상, 승선원 600~70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7만톤급 배를 띄울 생각이다.

15년씩 된 중고 크루즈선을 사는데 드는 돈이 2억~3억 달러인데, 조선사의 수주 절벽 영향 때문인지, 최대 5억 달러면 새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추세다. 차라리 새로 한 척 짓는 건 어떨까. 10년 운영하고 감가상각 고려해도 당장 중고 크루즈에 투입하는 돈만큼 가치가 남는다. 긍정적으로 고려할만하다. 최근 유럽쪽 조선소가 다녀갔다. 넌지시 신규 크루즈선 발주 의향을 물어보더라. 물론 이렇게 하려면 현 제반 여건이 더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 "크루즈는 나의 꿈...가장 한국적인 크루즈로 승부"

-배를 띄울 경우 해외 크루즈 선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어떤 전략이 있는지?

"세계적으로 크루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돈 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절대 돈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 따라서 팬스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관광객이 다른 배에서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요소가 필요하다."

-차별화를 어떻게 할 수 있나.

"크루즈의 핵심은 결국 배 안에 어떤 엔터테인먼트가 있는지, 대상이 누구인지다. 운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주요 탑승객은 중국인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항도 중국으로 할 계획이다.

한국 크루즈선을 탄 이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지 파악하고 있다. 우리 배에 탄 고객은 반드시 한국을 느끼고 돌아가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크루즈에서 보여줄 수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요소는?

"크루즈 안에서 한국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우선이다. 먹거리로는 한식을 먹으며 한국 전통술을 마신다. 바다 위의 리조트와 한국 문화의 결합이랄까.

아이디어는 충분하다. 배 안에 양복점을 만들어도 그들이 한국의 특징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만큼 빠른 시간에 양복 한 벌을 맞출 수 있는 나라도 드물다. 크루즈 여행 기간이면 충분히 옷을 짓고도 남는다. 손님이 배 안에서 맞춘 새로운 정장을 입고 하선하는 모습이 멋지지 않나.

'의료 한류'에 발맞춰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할 수도 있다. 미용을 위한 얼굴 마사지 등은 당연히 가능하다."

-회장님의 최종 목표는.

"나의 꿈이자 최종 목표는 크루즈를 운영하는 것 그 자체다. 이건 아마도 배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가장 한국적인 크루즈선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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