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쪽으로 보거나 평균으로 해석하여 설명하려는 자세는 금물
유연하면서 실용적인 '초사'가 중국의 모습에 가까워

우리는 과연 어떤 중국을 중국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또한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중국의 시경(詩經)과 초사(楚辭)를 비교해 저술한 고(故) 신영복선생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보통 널리 이해하는 중국의 모습은 중국 북방을 배경으로 한 시경에 바탕을 둔 듯하다. 여기에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매우 조직적이며 획일적인, 그리고 융통성이 적으면서도 다소 순수할 것 같은 형상을 가미한 그런 모습으로 중국을 보고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신 선생은 북방을 대표하는 시경을 '4분의 4박자'라고 표현했다. 또박 또박 걸어가는 보행이다. 즉, 목표지점이 존재하고 확실하게 땅을 밟고 걸어가는 것이다. 융통성이 없고 정해진 틀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리게된다.

반면에 초사는 양자강을 머리 위에 둔 남방을 대표한다. 6언체의 춤을 추는 듯한 리듬을 품고 있다. 춤은 가야 할 목적이 없고 어디를 가기 위해 추는 것도 아니다. 자유롭고 융통성도 많다.

그동안 수많은 중국인들과 가진 한발 더 들어간 만남과 교류를 종합해 보면, 현재의 중국을 대표하는 모습은 북방을 대표하는 시경의 모습이 아니다. 정해진 형태도 없고 아주 유연하면서 매우 실용적인 모습, 바로 신영복 선생이 묘사한 초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막연하게 알고 있는 중국과 실제의 중국과의 차이가 생기게 되고, 이는 중국 전문가들조차 '알면 알수록 모르는 나라'라고 얘기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한다.

하지만 중국을 어느 한쪽으로 보거나 평균으로 해석해서 설명하려는 자세는 우리가 중국을 영원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나 자신도 상당히 조심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2000년 초 필자가 근무하던 국내 대기업 그룹의 최고위 경영자들에게 직접 중국전략을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고조되던 시기인 데다 높은 자리의 경영자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부담이 상당히 컸던 기억이 난다. 경영자들 정도라면 웬만한 내용은 이미 다 알아 중국 상황을 아주 깊숙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중국의 고가제품 시장이 이미 대규모로 발전했고 앞으로도 급속히 확대될 것이라고 내가 강조하는 대목에서 매우 강한 톤으로 이견을 제시하는 참석자가 있었다. 중국의 1인당 평균 소득이 미화 1000달러 수준인데 어떻게 고가제품 시장이 대규모로 형성돼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인구의 5%만 부유층이라고 쳐도 중국에서는 수천만명이 넘는 시장의 규모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 못하고 평균의 척도를 가지고 중국 시장을 보려고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평균의 중국을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되새기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중국의 장관급이 참석하는 친목형식의 모임에 초대 받았을 때의 일이다. 고위인사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시시콜콜 여러가지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우선 우리나라에서의 경험를 떠올렸다. 엄숙한 분위기에 맞게 넥타이를 맨 정장을 하고, 가능한 윗분들 위주로 대화가 진행되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에 준해 옷을 차려 입고 자리에 참석했는데, 정작 경험한 바로는 이 곳이 중국이 맞나 하는 혼돈을 불러일으켰다.

도착하니 먼저 온 여러 인사들이 있는데 식탁 옆 소파에 앉아있었다. 처음 보는 분들도 있었다. 나만 이상한 정장을 하고 있었다. 심하게 이야기 하면 허술한 운동복 같은 걸 입고 온 인사도 있었다.

정말로 너무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고, 차림새로 보아하니 온다던 장관급 고위 인사는 안 온 줄 지레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직위가 다소 낮은 나의 지인이 너무 편한 자세와 큰 소리로 예의 그 인사와 그냥 옆집 아저씨하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상황에 기초해 그렇게 판단했었다.

식사를 위해 자리를 배치하기 시작할 때에서야 장관급 인사가 그 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식사 중에도 과연 내가 알고 있던 중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친목모임에서 이뤄지는 소통과 교류는 북방의 시경이 아닌 초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뒤로도 많은 모임에서 위와 비슷한 형태의 경험을 한 것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현실과 다른 모습으로 중국을 이해함으로써,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많은 혼란을 겪고 있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필자 이춘우(54)는…

2006년 베이징에서 화장품 유통업체를 창업해 중국 대륙 50여개 도시에 160여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카라카라'의 대표다. 이 대표는 중국에 처음으로 길거리 화장품 숍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2000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에서 중국 사업 전략을 짠 '중국 통'. 미국 선더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북경개신천성유한공사 CEO도 맡고 있으며, 중국 민영기업 40위인 신화련그룹의 수석투자고문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