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예 전투기, 강력한 전략미사일, 최첨단 화력장비…’ 현대전의 핵심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감시장비와 통신체계를 현대전의 핵심으로 꼽는다. 강력한 타격장비를 갖추고 있더라도 적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탐지할 수 없고,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감시 기술을 강화하고 통신 장비를 최신화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한반도 배치 문제로 논란이 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핵심 역시 레이더 탐지 능력이다.

국내 방위산업체 중에선 한화탈레스와 LIG넥스원이 감시 체계와 통신 장비를 담당한다. 특히 한화탈레스는 군의 전술정보통신체계(TICN·Tactical Information Communication Network) 개발·생산을 전담한다.

◆ 한화탈레스 구미사업장, 아직 ‘한지붕 두가족’

지난 8일 김천구미역에서 승용차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한화탈레스 구미사업장을 찾았다.

한화탈레스 구미사업장은 삼성전자 구미공장과 한 담장 안에 있다. 지난해 7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로 삼성에서 한화로 옷을 갈아입은 한화탈레스는 삼성전자 구미1사업장의 부지 20만여평 중 3분의 1 정도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한화탈레스가 사용하는 건물엔 한화그룹을 상징하는 주황색이 칠해져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건물과 한화탈레스 건물을 구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화탈레스 구미사업장. 삼성전자 구미공장과 같은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한화탈레스는 현재 임차해 사용 중인 구미사업장 부지를 매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탈레스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글로벌 톱10 방산 기업이 되기 위해선 공장 부지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한화로 소속이 바뀐 직원들은 업무 환경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오랜 기간 ‘삼성맨’으로 지내다 ‘한화가족’이 된 한 임원은 “빅딜 직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었지만 지금은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한화그룹이 방위산업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에서 방위산업이 매출에 기여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김승연 회장을 중심으로 애정을 쏟고 있다는 게 이 임원의 설명이다.

한화탈레스는 2000년 삼성전자의 방산부문과 프랑스의 탈레스가 50대 50의 지분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 방산 합작회사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삼성으로부터 삼성탈레스를 인수할 당시 탈레스가 보유한 지분 50%와 관련해 인수 계약 시점으로부터 1년 후 탈레스가 지분을 한화에 팔거나(풋옵션) 한화가 지분을 사올 수 있는(콜옵션) 주식 매매 옵션 계약을 맺었다.

탈레스는 지난달 한화그룹에 풋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한화는 탈레스에 2880억원을 지불하고 지분 50% 전량을 인수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한화탈레스의 완전한 독자 경영권을 확보해 그룹내 방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기대감을 보인다. ㈜한화를 필두로 테크윈, 탈레스, 디펜스 등 4개 방산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그룹 경영기획실에 방산전략센터를 구축해 계열사간 시너지 창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

TICN 체계도.

◆ ‘통해야 산다’... 야전에 깔리는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TICN은 미래 전장환경의 핵심 전술통신 기반체계다.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해 즉각적인 타격이 가능하도록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통신 기술은 우리 편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전투지역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기반요소다.

TICN은 망관리체계(NCS), 교환접속체계(TIPS), 전술이동통신체계(TMCS), 전투무선망체계(CNRS), 대용량무선전송체계(HCTRS), 소용량무선전송체계(LCTRS) 등으로 구성된다.

NCS는 사령부급 부대통신소 통신망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체계로 통신소 업무지원과 주파수 계획을 잡는다. TIPS는 음성과 영상 통신 및 교환 접속 기능을 담당한다. 전술환경 최적의 통신경로를 설정하고 ‘스파이더’나 ‘MSE’ 같은 기존에 사용하던 통신체계와 연동할 수 있도록 한다.

CNRS는 다기능/다대역 전투무선망으로 전술차량 같은 이동수단에 장착된다. TMCS는 이동통신기지국 시스템으로 스마트폰 형태의 소부대형통신단말기와 연결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이동 중에도 통신이 끊기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핸드오버’ 기능을 갖고 있다.

HCTRS와 LCTRS는 기존 통신망인 스파이더 체계보다 10배 이상의 속도로 데이터 전송을 할 수 있다. 현장의 상황을 영상으로 전송해 지휘부에서 전장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한화탈레스는 지난해 7월부터 TICN 체계 초도 물량을 양산하고 있다. 이날 구미사업장에선 TICN 주요 체계 품목을 생산하고 있었다.

한화탈레스 구미사업장의 생산동에서 직원이 TMFT 단말기를 점검하고 있다.

TICN 체계 구성품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TMCS의 통신차량과 TMFT소형 단말기였다.

TMCS의 통신차량은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소형전술차량에 통신장비가 설치된 쉘터를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TMFT 소형단말기는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의 통신 장비다. 소대원과의 1대 1통신은 물론 그룹 통신까지 가능하다. 지도기능도 탑재해 전장의 지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현장의 영상을 촬영해 지휘부로 보낼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한화탈레스 직원은 “전장에서 필요한 통신 기능을 소형단말기에 대부분 담았다”며 “감청이나 도청에 대해서도 충분히 보안책을 강구했다”고 말했다.

◆ 최첨단 레이더부터 무인정찰기, 다목적위성까지… 전장의 ‘눈’

9일에는 용인에 위치한 한화탈레스 연구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선 첨단 기술을 담은 레이더와 위성광학장치를 개발·생산한다. 산비탈을 끼고 조성된 용인연구센터단지의 맨 윗 건물에선 지대공 방어체계 ‘천궁’의 레이더 시험 검사를 진행한다. 한화탈레스 관계자는 “레이더를 이용해 비행기 이동 경로나 날아오는 미사일을 감지하는 시험을 한다”고 했다.

한화탈레스 용인연구센터 내 레이더 실험동 앞에서 시험 검사를 받고 있는 천궁 레이더.

가상의 전자 신호뿐 아니라 실제로 이 지역을 지나는 항공기도 포착됐다. 레이더 테스트를 담당하는 한화 탈레스 직원은 “허가받지 않는 비행기가 포착된다면 이를 격추할지 판단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게 레이더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화탈레스 용인연구센터에서 개발 중인 위성광학장치.

레이더 실험동 밑에는 위성광학장치 개발실이 자리했다. 인공위성 궤도에서 책 한권 사이즈의 물건을 구별할 수 있는 고배율 렌즈를 이곳에서 개발한다. 광학렌즈는 특수소재로 코팅된다. 이 코팅 두께의 오차 허용치는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이다. 한화탈레스 관계자는 “한화탈레스의 정밀도와 기술력을 단번에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위성광학장치 개발실 옆 건물에선 무인정찰기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와 관련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한화탈레스는 무인정찰기의 눈에 해당하는 전자광학·적외선 카메라(Electro-Optic/Infra-Red)를 만들고 있다.

KFX 사업과 관련해선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방위사업추진위에서 AESA 레이더 개발 업체로 선정된 한화탈레스는 현재 AESA 레이더 연구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200여명의 레이더 전문 인력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화탈레스는 내년 6월까지 AESA 레이더 1차 시제품을 만든 뒤 2018년 6월 2차 시제품을 제작할 계획이다.

◆ ’주먹구구식’ 소프트웨어 개발 정책… 제멋대로 ‘툴’, 오픈소스 활용 막고

한화탈레스는 방산업계에 부는 디지털 혁명의 중심에 서있다. 레이더, TICN 체계의 기술력은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 한화탈레스뿐 아니라 거의 모든 방산업체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체계 개발 예산 책정 시 소프트웨어는 뒷전으로 밀린다”고 지적했다. 방산업계에선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보이는 당국의 오락가락 정책에 대해서도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와 양산 단계에서 다른 검증 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검증 툴에 따라 시험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면서 “툴에 맞춰 추가적인 코드 수정 작업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업무로 비용만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또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을 점검하기 위한 툴 프로그램 구입 비용은 아예 예산에 반영되지 안된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검증용 툴 프로그램을 자체 비용으로 구입하는 실정”이라며 “대기업은 투자 차원에서 비용을 지불한다지만 영세한 소규모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화탈레스가 개발한 항공기 조정 장치 및 디지털 계기판. 방산업계에서도 디지털화에 따른 소프트웨어 개발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공개 소프트웨어나 오픈 소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도 문제다. 이는 오픈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

미국 국방부(DoD)도 2000년대 중반부터 오픈 소스 사용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목록을 방산업체에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 소스를 활용하면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보안 취약점도 빨리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이 주도하는 사이버보안 프레임워크도 ‘오픈 소스’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지난 5월 방한한 아담 셰드윅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선임 고문은 “오픈 소스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말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공개 소프트웨어 사용은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며 “포괄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기보단 DoD처럼 오픈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