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공사를 진행할 때 원도급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의 발급 의무를 완화해 하도급 업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공정위는 대금지금 관리 시스템 등을 이용하는 경우에만 보증서 발급 의무를 면제해 하도급 업체에 피해가 갈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하도급 업체들은 현실적으로 공사비를 떼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하도급 업계에선 "계약관계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약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공정위가 오히려 갑을 도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원도급업체의 대금 미지급 행위가 빈번한 가운데, 공정위가 원도급업체의 대금 지급 보증서 의무를 면제하는 요건을 추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 하도급 대금 체불 많은데… 공정위는 원도급의 지급 보증 의무 완화

22일 하도급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5월 '직불 조건부 발주 공사'인 경우와 일정한 '대금지급 관리 시스템'을 통해 하도급 대금 지급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원도급 업체가 대금 지급 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대금지급 관리 시스템이란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제때 주는지 발주자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발주자가 원도급업체의 고정계좌에 전체 공사대금을 보내도 원도급업체는 자신의 몫만 인출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조달청의 '하도급 지킴이', 서울시의 '대금이(e)바로' 등이 주로 사용된다.

그동안 원도급 업체가 하도급 업체에 줄 대금을 떼어먹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공정위 산하 공정거래조정원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처리된 분쟁조정사건 492건 중 하도급대금 미지급행위가 381건으로 77%를 차지했다.

보증서는 하도급 업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증서 발급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증서를 받은 하도급업체는 공공기관 발주공사의 경우 65.4%, 민간기관 발주공사의 경우 42.9%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증서 발급 의무까지 완화되면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으로 하도급 업계는 우려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원도급업체가 지급 보증서를 발급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 수수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시스템의 '인출제한' 기능이 사실상 직불효과를 낸다면 시스템을 이용하는 원도급업체는 수수료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이 운영하는 대금지급관리시스템 '하도급지킴이'.

◆ 하도급 업계 "온라인 시스템 써도 대금 지급 보장 못받아"

문제는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 대금지급 시스템이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아니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인출제한' 기능이 모든 업체와 모든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인출제한 기능의 적용 대상을 ▲과거 체불 전력이 있으며 체불액을 해소하지 않은 업체 ▲시공 중 체불이 발생한 현장 ▲하도급대금 및 건설장비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현장 ▲시스템 적용에 발주자-원도급자-하도급자간 합의한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또 서울시의 '대금e바로'엔 인출제한 기능이 있지만, 조달청의 '하도급 지킴이'는 인출제한 기능이 없기도 하다.

전문건설협회 배인호 실장은 "공정위의 개정안대로라면 체불이력 업체 또는 체불우려 업체까지 대금지급 시스템만 사용하면 지급 보증 의무를 지지 않게 된다"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도급 업체에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도 제도의 허점을 지적한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시스템의 인출제한 기능이 직불효과를 낸다고 해도 결국엔 '직접'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경우 원도급업체가 파산이라도 한다면 지급보증서를 받지 못한 하도급업체들은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지급보증을 다루는 '건설산업기본법' 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공정위가 다소 성급했다고 지적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서는 하도급업체가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해서 원도급업체가 부도나는 경우에 생길 위험까지 모두 해소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어 "공정위에도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 공정위는 요지부동 "고시로 문제 해결할 수 있어"

업계와 국토부가 이 같은 우려를 공정위에 여러 번 전달했지만, 공정위는 요지부동이다. 개정안이 마련되고 나면 이후 고시를 통해 지급 보증이 면제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최무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장은 "지급 보증의무 면제대상이 되는 시스템의 종류와 그 적용 예외 등에 관한 사항은 개정안이 마련된 이후 별도로 고시를 통해 정할 것"이라며 "지금 개정안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고시는 법령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 간 직접적 채무관계를 고시로 제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도급 거래에 있어선 국토부의 건설산업기본법보다 공정위의 하도급법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공정위는 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