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그룹의 실질적 수장에 오른 지 2여년 만에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하는 등 그룹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대한 극도의 비관적인 시장 전망과 비(非) 주력 계열사에 대한 잇단 구조조정으로 흉흉했던 그룹 분위기가 반전(反轉)하고 있다.

8월 18일 사상 최고치인 164만원으로 마감한 삼성전자 주가에 대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200만원 돌파론’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연초 삼성전자 주가가 110만원 대까지 떨어졌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43배로 애플 PBR 4.3배보다 턱없이 낮아 삼성전자 주가 상승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의 선제적인 계열사 ‘가지치기’와 명분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영 방식, 과감한 인수합병(M&A)과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문화를 접목한 '컬쳐혁신'이 '뉴 삼성'의 기틀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혁신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갤럭시노트7’을 두고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리더십의 첫 결실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이 저가 공세뿐만 아니라 혁신마저 주도하는 분위기에서 ‘홍채 인식’ ‘만능 펜(S펜)’ ‘엣지 디자인’으로 무장한 갤럭시노트7는 대한민국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

지난 18일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하자 삼성그룹의 수장 역할을 맡은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전략이 주목 받고 있다.

◆이재용 체제서 확 달라진 무선사업부..변화의 시작은 갤럭시노트7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이 회사의 주력 매출원인 무선사업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레벨의 톱-다운(Top-Down, 상명하달)식 제품 개발 관행이 조금씩 사라지고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자와 디자이너 등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이 제품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눈에 띄는 변화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지난 19일 국내 공식 출시된 대(大) 화면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삼성이 출시한 역대 스마트폰 중 개발부서와 마케팅, 디자이너의 역량이 고루 반영된 제품으로 자평하고 있다. 과거 신종균 무선사업부장 체제에서 신 사장이 제품의 디테일한 부분에 직접 관여한 것과 달리 고동진 사장 체제에서는 각 개발부서의 의견이 조화롭게 수렴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연구개발 부서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5년 출시된 갤럭시S5의 경우 제품 출시 두 달 정도를 남긴 상황에서 방수 기능을 도입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개발 부서 전체가 혼선을 겪었던 사례도 있다”며 “반면 갤럭시노트7은 개발, 상품기획, 마케팅이 처음부터 끝까지 용의주도한 협력 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유행하는 '애자일(Agile)' 프로세스를 적용해 제품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한 것도 이재용 체제의 특징이다. 애자일은 의사결정 속도를 앞당겨 개발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으로, 갤럭시노트7에 탑재된 상당수 앱이 이 프로세스를 통해 개발됐다.

◆ 위기론 잠재운 이재용 리더십…임원들 차익 실현에 '싱글벙글'

삼성전자(005930)주가가 탄력을 받은 데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 이후 최대 영업이익을 낸 점도 한몫 한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잠정실적이 매출 50조9400억원, 영업이익 8조14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을 넘어선 것은 2014년 1분기 이후 9분기 만이다.

2분기 실적은 이재용 체제의 위기론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경영에서 물러나고 2015년 3월 출시된 ‘갤럭시S6’는 ‘이재용 폰’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절치부심해 만든 갤럭시S7은 높은 완결성과 탁월한 마케팅으로 애플의 텃밭인 북미 지역에서도 아이폰6S 흥행에 일격을 가했다. 분기 영업 이익 8조원 대 회복은 투자 시장 전문가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삼성전자의 최근 3개월 주가 추이.

최근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임원들은 차익 실현에 나서며 수억원대의 이익을 보기도 했다. 임원들의 주식 처분 단가는 주당 137만6500원부터 152만원까지 다양했다.

정칠희 종합기술원장(사장)은 149만8000원에 100주, 지완구 경영혁신팀 부사장은 147만6000원에 1406주, 박찬훈SAS(삼성오스틴반도체)법인장(전무)은 147만원에 260주를 팔았다. 이효건 부사장은 지난달 28일(770주)과 이달 18일(801주) 두 차례에 걸쳐 주식을 매각해, 약 22억3100만여원의 이익을 올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위기일 때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오히려 임원들이 주식을 팔지 않는다"며 "임원들이 투자자들의 걱정을 만들지 않고 주식을 매각해도 될 만큼 주가 흐름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 명분 얻은 이재용 부회장, 혁신에 더 가속도 붙을 듯

갤럭시노트7의 흥행과 삼성전자 사상 최고 주가 달성으로 이재용 부회장식 혁신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2500여명에 달하는 인력을 감축한 반면, 해외 기업의 쇼핑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는 핀테크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미국 결제 업체 루프페이를 인수, 삼성 페이를 만들었고 최근엔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플랫폼 고도화를 목적으로 미국 클라우드 스타트업 조이언트를 인수했다.

영업이익이 많은 무선사업부만 M&A에 나서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 부문도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 사업 확대를 위해 미국의 럭셔리 빌트인 가전 기업 데이코를 인수하는 강공 전략을 펴고 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는 유럽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자동차 부품 계열사인 마그네티 마렐리를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신사업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이재용식 사업 재편이 국내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는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스마트폰, 가전 등 주요 매출 분야의 핵심 생산기지를 구미와 광주에서 일제히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삼성전자 성장이 국내 경제 성장에 큰 호재가 되지 못하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현상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년 간 끊임없는 가지치기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신사업 분야로 삼성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이제 첫 결실을 거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삼성의 역할을 정립 문제, 고용을 창출하는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의 큰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