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최첨단 가상현실 기술 얼로이 공개
무선에 컨트롤러도 필요 없어
손으로 가상 세계의 사물 조작

'치이이칙칙키'

16일(현지시각) 인텔개발자포럼(IDF)이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 무대 중앙에 오른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유명 디제이(DJ)인 큐버트(Qbert)가 턴테이블에 놓인 비닐 레코드를 앞뒤로 휘저으면서 스크래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른편엔 한 남성이 VR(가상현실)헤드셋을 뒤집어 쓰고 드럼 스틱을 휘둘렀다. 그가 스틱을 허공에 허둘렀지만, '탁치탁' 드럼 소리가 신나게 행사장을 울렸다. 발을 페달 밟듯이 까딱이자 '둥둥둥' 스네어 드럼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스틱과 발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둥.치.탁.치' 박자를 만들어나갔다.

무대 반대편에서 손에 장갑을 낀 사람이 허공에 대고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띵띠디딩' 전자음이 드럼 위에 감미로운 멜로디를 수놓았다. 미국 펑크가수 허비 핸콕이 1983년에 발표한 히트곡 '락잇(Rockit)' 공연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IDF 역대 최대 참가자로 기록된 6000여명의 청중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개발자포럼에 난데없이 '오케스트라'가 등장한 이유는 하나다. 인텔의 가상현실 기술의 총체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공연 영상 보기

프로젝트 얼로이를 착용한 연주자가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
DJ 큐버트가 8월 16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IDF 에서 스크래치 공연을 하고 있다.
시연자가 리얼센스 카메라를 탑재한 기기를 통해 건반을 연주하고 있다.

◆ 인텔도 VR 경쟁 합류

인텔은 이날 실시간 3차원(3D) 공간 인식 기술인 '리얼센스(realsense)'를 탑재한 VR기기 '프로젝트 얼로이(project alloy)를 공개했다. 얼로이를 쓴 드럼 연주자가 VR 화면으로 보이는 가상의 드럼을 향해 스틱을 휘두르면, 리얼센스가 이 동작을 정확하게 인식해 소리를 냈다.

피아노 연주자도 리얼센스를 탑재한 탁자 형태 기기 위에서 손을 움직여 연주했다. 동작에 따라 음이 변하기도 했다. 손을 기기에서 멀리 떼면 음이 높아지고 가까이하면 낮아졌다. 인텔이 현실과 가상현실을 버무린, 이른바 '융합 현실(merged reality)'이 그려낼 미래의 한 부분을 시연한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등장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얼로이라는 융합 현실 플랫폼은 이용자가 가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상호작용 할 수 있게 한다"며 "우리는 가상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얼로이는 기존 VR 기기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전면에는 카메라가 공간을 3차원으로 인식해 각 물체까지의 거리를 파악하는 기술인 리얼센스가 탑재됐다. 기존 VR 기기들은 가상현실 공간을 움직일 때 현실의 장애물을 파악하지 못해 안전사고의 우려를 안고 있지만, 얼로이는 리얼센스를 통해 현실의 장애물을 인식해 피할 수 있도록 한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가 프로젝트 얼로이를 소개하고 있다.

얼로이는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이용자의 손만으로도 가상 세계의 사물을 조작할 수 있다. 얼로이는 이용자가 손으로 물건을 쥐거나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인식한다. 기존 VR 기기는 가상공간의 버튼을 누르거나 물건을 조작하려면 손에 쥔 별도의 컨트롤러가 필요했다.

크르자니크 CEO는 "얼로이는 고성능 PC와 연동하지 않아도 되는 컴퓨팅 능력을 갖췄다"며 "선(線)이 없다는 점에서 기존 제품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얼로이 실물.

◆ 새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한 리얼센스

얼로이는 인텔의 VR 진출을 알리는 제품이다. VR은 고성능 반도체 수요를 촉진시킬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AMD, 퀄컴 등 반도체 회사들은 한발 앞서 VR 제품들을 구동할 제품들을 내놓았다.

인텔은 PC 산업이 하락하면서 지난 4월 1만200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안을 내놓았다. 동시에 인텔의 사업 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꿨다. 얼로이는 인텔의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프로젝트이고 리얼센스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이다.

크르자니크 CEO는 이날 리얼센스의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초콜렛바 정도 크기의 VR 모듈인 '유클리드(Euclid)'는 리얼센스 카메라와 아톰 프로세서, 온보드 통신, 배터리를 담은 제품이다. 인텔은 유클리드가 다양한 로봇을 구동하는 핵심 부품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초소형 리얼센스 제품인 '리얼센스400'도 선보였다.

인텔 VR 개발도구 ‘줄(Joule)’.

인텔은 이날 이용자들이 스스로 VR 기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개발도구 '줄(joule)'도 공개했다. 줄은 아톰 프로세서와 램, 저장장치, 리얼센스 카메라, 모뎀, UHD(초고화질) 지원 그래픽, 리눅스 기반 운영체제(OS)를 한 데 담은 플랫폼이다. 개발자들은 이를 통해 VR,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산업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컨셉 제품들을 만들 수 있다.

크르자니크 CEO는 "줄은 온보드 컴퓨팅, 확장가능한 메모리, 인간에 가까운 감각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왼쪽)와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이날 행사에는 GE(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깜짝 등장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리얼센스를 가로등에 적용하면 보행자들의 보행 패턴이나 주차장 이용 여부 등 메타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런 데이터가 모아지면 스마트시티 솔루션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프로젝트 얼로이의 소프트웨어 강화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하기로 했다. 크르자니크 CEO의 기조연설에 함께 오른 테리 마이어슨 MS 부사장은 "윈도 역시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윈도 홀로그래픽'과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로 융합현실에 도전하고 있다"며 "개발자들이 가상현실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인텔과 함께 표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얼로이 플랫폼을 쓴 VR 제조사들의 신제품이 2017년 2분기쯤에 출시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