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새만금 스마트 팜 단지 추진에 농민단체 극렬반발
4년 전 동부 사태 재현될라
정부는 뒷짐만...첨단 농법 경쟁력 확보 위해 갈등 중재 나서야

LG CNS가 새만금 산업단지에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대규모 ‘스마트팜(Smart Farm)’ 단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 위기에 몰렸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전국 농민단체들이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막겠다”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그룹의 스마트팜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 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 LG CNS는 당초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농업 진출과 농산물 시장 교란’을 근거로 반대하는 농민단체들과 ‘미래농업을 준비하는 상생 R&D’라는 대기업 입장 차이가 커 원활한 사업 진행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2012년 동부그룹 계열 동부팜한농이 경기 화성시에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할 온실을 지었다가 농민단체들의 반대로 사업을 접었다. 4년만에 비슷한 이유로 대기업의 스마트팜 실증 단지 구축 계획이 또다시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스마트팜 단지’를 둘러싼 갈등 해법 논의가 4년 동안 한발짝도 못나갔다는 탄식이 나온다.

◆ LG의 ‘이유있는’ 스마트팜 단지 구축 사업...설비 시장 2020년 34조원 규모

LG CNS는 지난 2월 전북 새만금에 76㏊(23만평) 규모로 '스마트 바이오파크'(Smart Biopark)라는 이름의 스마트팜 단지를 세우겠다는 사업 계획서를 새만금 개발청에 제출했다.

영국계 기업 등 해외 투자자와 총 사업비 3800억원을 투자해 이곳에 첨단온실, 식물공장, R&D센터, 가공 및 유통시설, 체험 단지 등을 갖춘 복합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해 각종 센서와 PC, 스마트폰 등으로 농작물의 생육환경을 제어하는 ‘첨단 농장’이다. LG CNS가 새만금산업단지에 스마트팜을 조성하는 이유는 세계 스마트팜 시스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시설 자재와 센서, 네트워크, 제어 소프트웨어(SW) 기술을 새만금 스마트팜 단지에서 검증하고 이 ‘레퍼런스(실증 사례)’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전세계 스마트팜 설비 시장은 지난해 기준 22조원에 달한다. 2020년에는 34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네덜란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첨단 기술을 스마트팜에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네덜란드의 프리바다.

프리바는 온실 복합환경제어시스템 및 센서 설비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환경 변화에 따른 작물의 생육·생리 특성 변화 데이터를 분석하고 재배 환경 조건을 미세하게 제어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데이터 네트워크와 센서를 활용한 스마트팜 개요도. 통신 기능이 있는 센서가 재배지 곳곳은 물론 농기계에도 설치된다.

유전자 조작 작물로 유명한 미국의 몬산토도 스마트팜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몬산토는 작물의 품종별 생육·생리 데이터를 분석해 작물의 재배 환경에 맞춘 품종 개량과 종자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LG CNS 관계자는 “앞으로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 및 농지 감소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스마트팜’ 설비 및 기술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외에도 중국과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도 100ha 이상의 스마트단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지금 스마트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치바대학교에서 연구중인 식물 공장.

◆ 농민들 “토마토 등 시설원예 작물 수출 시장 타격”...정부 갈등 중재 역할 아쉬워

농민들이 LG의 스마트팜 단지 구축에 반대하는 이유는 토마토·파프리카 등 국내 주요 시설원예 작물들의 수출 시장에서 타격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LG CNS는 스마트팜 단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전량 해외에 수출하기 때문에 국내 농산물 시장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농민들을 설득해 왔다. 농산물 판매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팜 기술 및 설비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도 덧붙였다. 또 스마트팜 단지 50ha 중 20ha를 일반 농민들에게 개방해 스마트팜 기술 개발의 농민 참여도 보장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농민들은 최근 내수 및 수출이 동시에 부진을 겪는 시설원예 작물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하면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폭락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한해 동안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토마토는 약 3500톤이다. 파프리카의 경우 일본에만 약 2만9000톤을 수출하고 있다. LG가 구축하는 50ha 규모의 스마트팜에서 토마토를 재배할 경우 연간 생산량은 1만5000톤, 파프리카의 연간 생산량은 1만2000톤으로 추정된다.

LG의 주장대로 이들을 모두 수출용으로만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일반 농가의 수출 지역과 중복된다면 가격이 폭락하고 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시설 원예 농가들의 주장이다.

LGCNS가 일반 농가가 수출하는 지역 외의 다른 지역에 수출하는 ‘수출선 다변화 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 시장 혼란에 따른 피해는 농가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는 논리다.

농민들과 LG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정부의 갈등 중재 역할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는 LG 측에 “농민들을 만나 상생방안을 마련한 뒤 사업을 진행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4년 전 ‘동부팜한농 사태’를 해결 못한 정부가 이번에도 사업자에게 갈등 해결의 짐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의약품 원료 등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과학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팜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마트팜 솔루션 융합연구단’의 김형석 KIST 선임연구원은 “스마트팜 기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작물 생육 및 재배 환경 데이터 등을 분석해 농업 경영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의약품 원료 및 기능성 작물 등 고부가가치 작물을 스마트팜을 통해 생산해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