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된 감리(監理) 언급은 일체 자제하라’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최근 직원들에게 이같은 지침을 내렸다. 우 수석의 가족회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친인척이 있는 회계법인이 담당, 독립성 논란이 일자 함구령을 내린 것이다.

자본시장의 파수꾼, 회계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 주범 중 하나는 바로 마구잡이식 회계법인의 고문단이다

우 수석의 사례는 국내 회계업계에 만연해 있는 ‘고문단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처음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편법’을 ‘관행’으로 포장해 회계업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젊은 회계사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조선비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계사들의 공정한 외부감사를 가로막는 ‘고문단 폐해’를 집중 조명한다.

우병우 가족회사 정강, 외부감사인 독립성 논란

공인회계사법 21조와 26조는 회계법인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특수한 이해관계에 있는 경우 업무를 수임(受任) 해서는 안 되고, 지분을 가진 사람만 임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공회 윤리규정도 친인척이 감사인인 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감사인이 기업의 임직원과 가족관계이거나 개인적인 관계에 있으면 이기적 위협, 유착 위협, 압력 위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 수석은 지난해 3월 가족기업인 ‘정강’의 외부감사를 6촌 형인 우병삼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삼도회계법인에 맡겼다. 이 회사는 설립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생 회계법인이었다. 게다가 삼도회계법인은 ‘정강’ 소유의 서초구 반포동 건물 2층에 입주한 세입자다. 외부감사인이 세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을 감사한 셈이다.

독립성 논란이 커지자 회계사회는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우 부회장이 회계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예 감리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여러 정황상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요인들이 발견됐지만 법과 윤리규정을 교묘히 피해간 것이다.

한공회의 설명대로 우병삼씨는 회계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회사의 부회장에 올랐을까. 현행 법에 따라 회계법인의 임원은 회계사만이 될 수 있다. 삼도회계법인은 편법으로, 회계사가 아닌 무자격자에게 부회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긴 셈이다. 무자격자에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쓰게 한 것은 회계법인의 이사로 보이는 직함을 쓰도록 한 것이고 이는 상법상 명의대여의 금지(제2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청년공인회계사회는 지적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회계법인의 이사는 법에 따라 무자격자가 맡을 수 없음에도, 편법적인 운용을 하고 있는 회계법인과 이를 눈감고 있는 감독당국이 문제”라며 “감독당국은 공인회계사법 위반 여부에 대해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석란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한공회에 대한 정기 기관감사를 하고 있고, 한공회 안건을 수시로 보고 받고 있다”며 “편법 운용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러 제도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고 해명했다.

퇴직 관료 모셔 회계감사 일감 수주…회계업계 만연한 고문단 폐해

이처럼 회계업계는 퇴직 관료나 기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해 ‘고문'이나 ‘부회장' 등의 이름을 주고 일감을 따냈다. 이들이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친분을 이용한 일감몰이에 나서면서 제 살 깎아먹기식의 ‘저가 덤핑수주’로 이어졌다.

물론 김앤장 등과 같은 법무법인들도 변호사가 아닌 퇴직 공무원들을 고문으로 영입해 활용한다. 하지만 회계사는 변호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자본시장 파수꾼’으로 불리는 만큼 권한이 막강하고 그에 걸맞는 책임도 뒤따른다. 기업이 부정을 저질렀을 때 회계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기업들은 분식회계와 같은 회계부정을 저지르기 쉽고, 시장을 어지럽힐 수 있다. 회계사는 기업이 장부를 조작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의견 거절'이나 ‘한정' 의견을 주고, 부실 회계 기업은 바로 증시에서 퇴출된다. 더 큰 위험으로부터 불특정 다수를 구해내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조선·해운 회사들의 회계부정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내 회계법인들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핵심 세력이 ‘고문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관료들이 수임을 좌지우지 하다보니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법은 저가 수주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만우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관료들이 어떤 영향력과 힘을 통해 수주에 끼어들고 다른 회계법인들이 이를 막기 위해 덤핑을 하면서 감사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고문단은 전직 장관 또는 관료, 기업 대표 출신의 막강한 맨파워를 자랑하면서 조직 장악력을 넓혀가고 있다. 일례로 최근 롯데홈쇼핑은 감사원 출신인 대형 회계법인 고문에게 감사원 로비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출신 회계법인 고문을 ‘로비스트’로 활동하게 한 것이다. 이 고문은 “회계법인은 기업에게 을(乙)이기 때문에 부탁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검찰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4’ 회계법인 중 가장 활발히 고문단을 꾸린 곳은 한영회계법인이다. 한영은 지난 2012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상임 고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이듬해인 2013년 윤만호 전 산은금융지주 사장, 김수공 전 농협중앙회 농업경제대표 등 업계 고위직 인사를 영입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윤만호 전 사장이 한영에 간 이후, 최근 인수합병 시장에서 한영이 매각자문 딜을 많이 따낸 것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영은 또 농협 마피아들을 대거 영입하며 농협 계열사의 일감을 수주하는 데 역량을 모았다. 한영은 2011년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정 전 대표는 3년 후인 2014년 9월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인 NH투자증권의 임원으로 이동했다. 이후 NH투자증권의 외부감사인은 ‘안진’에서 ‘한영'으로 바뀌었다. 이어 한영은 김수공 농협중앙회 농업경제 대표도 부회장으로 영입했고 신세균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이희수 전 기재부 세제실장도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고문단이 회계법인에서 활동하는 것은 올바른 일은 아니다”며 “회계법인간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고문의 압력을 통해 수임을 하게 되면 감사품질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고문이 일감 따낸 기업에 '의견 거절' 못줘...회계업계 떠나는 흙수저 회계사

안진회계법인도 정공식 전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 주영섭 기획재정부 세무실장을 상임고문으로 영입했다. 삼정은 이덕수 전 농업경제 대표, 주우식 전 산은금융지주 수석 부사장, 채경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부회장으로, 삼일은 이정복 전 농협중앙회 전무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특히 고위 공무원 중 세무분야 인사들이 대거 회계법인에 영입된 것은 이들이 민간기업 재취업 제한 규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전 5년간 소속한 부서와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업에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전문자격증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예외로 하고 있다. 이들은 세무분야 전반에 걸친 자문을 한다는 게 명분이지만 기업의 세무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회계법인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우남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 8월까지 농협 고위 임원들이 퇴직 후 빅4 회계법인에 총 205건(454억원)에 달하는 회계감사, 컨설팅, 연구용역 등의 계약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간 1억원 이상의 고문료를 받았다고 김 전 의원은 주장했다. 또 딜을 따왔을 때 20~40% 가량을 마케팅비 명목으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고문단이 따온 일감의 기업에 ‘의견거절’이나 ‘한정’의견을 줄 회계사는 많지 않다. 영업이 중요시되며 독립성은 뒷전인 현실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회계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서민들은 몇 년간 불안감과 싸워가며 시험에 합격해야 입사할 수 있는 곳에 사회 지도층이라서 혹은 누군가의 친인척이라서 쉽게 입사할 수 있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며 “회계사들이 자부심을 잃고 감사업무를 기피하거나, 회계법인을 떠나는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노준화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사가 아닌 다른 직함으로 회계법인에 영입되고 그로 인한 감사 품질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이 분명히 있다"며 “일부 전문 지식을 쌓은 관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회계법인 수임을 위해 자리하는 것에 대한 거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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