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찰이 공개한 부산 감만동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속에는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나온다. 사고 차량은 현대차의 대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싼타페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운전자 한씨는 “차가 왜 이러냐”고 다급하게 외친다. 이어 차량 엔진음이 크게 나면서 차체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차량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 되자 한씨 부인은 “아기, 아기”라며 손자를 걱정하고, 충돌 직전 한씨도 “아기, 어떡하나”라며 안타깝게 울부짖는다. 이 사고로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졌다.

한씨는 전직 택시기사다.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하자 인터넷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면 정황상 급발진이 의심되지만 결국에는 운전자 과실로 급하게 마무리 될 것이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해당 기사에는 현대차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인 ‘흉기차’가 포함된 댓글도 이어졌다.

실제 우리나라는 급발진과 관련해 단 한번도 운전자가 재판에서 이긴 경우가 없다. 법적 구조상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전문적인 결함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현대차는 급발진과 관련해 소비자 보상을 한 적이 없을까.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발견된다.

2005년 8월 23일 한 일간지 기사를 보면 현대차 답지 않게 급발진 사고에 대해 발 빠르게 보상한 사례가 나온다. 같은 해 3월 24일 서울대를 방문, 주차하던 김영란 전 대법관(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의 에쿠스 차량이 후진을 하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김 대법관은 머리와 어깨 등에 타박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대차는 김 대법관의 운전기사와 함께 진상조사를 벌였고 조사 결과 다른 급발진 사고의 예처럼 ‘100% 운전자 과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일반 소비자와 비슷하다.

이후 현대차의 대응은 달랐다. 현대차는 현대캐피탈을 통해 소송도 하기 전에 김 전 대법관에게 사고 차량보다 배기량이 500㏄ 더 큰 3500cc 신형 에쿠스를 제공했다. 리스회사인 현대캐피털은 이런 경우 원칙적으로 동급차량을 빌려주고 새 차는 지급하지 않는다.

일이 무난하게 해결돼서 그런지 김 전 대법관은 사고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그간 인터넷에 떠도는 이른바 ‘안티 글’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글로벌 톱5 브랜드 답게 차량 완성도 측면에서는 전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 해외 수출품과 내수품의 품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적극 알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쏘나타 내수용차과 수출용차를 공개적으로 충돌 실험을 하는 등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대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사실 현대차의 안티 대응 방식은 번지수가 틀렸다. ‘현대차 안티’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원인은 급발진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터다. 인터넷에 블랙박스 급발진 의심 영상들이 수없이 공개되면서 현대차는 안전하지 못한 차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씩 모여 소위 말하는 현대차 100만 안티가 양산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가 적어도 급발진 등 안전 문제와 관련해해선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대처가 필요하다. 사고에 대한 보상 기준도 대법관과 일반인이 같아야 한다.

한가지 더 현대차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이 기준을 다르게 하면 9월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양측 모두 처벌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