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잠수함(넷마블)을 왜 타려 합니까? 그러다 당신도 같이 침몰합니다.’ 2011년 제가 넷마블을 다시 복귀하려고 할 때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넷마블을 그냥 잠수함이 아니라 핵잠수함이라고 봤습니다. 잠수함의 엔진을 고치면, 그때부터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2016년 2월 18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제 2회 NTP(Netmarble Together with Press)’ 행사에서 만난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손에 4년 전에 나온 ‘갤노트2’를 들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넷마블이 신규 게임을 내놓을 때마다 제일 낮은 스펙(사양)의 스마트폰에서도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 정도 스마트폰에서도 문제없이 구동돼야 동남아시아에서도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평정한 방준혁 의장의 시선은 글로벌 시장에 꽂혀 있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2월 NTP에서 신작 게임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모습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1968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사업가를 꿈꿨다. 방 의장은 2000년 자본금 1억원으로 직원수 8명의 넷마블을 설립했다. 당시 넷마블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보통 게임업체와는 달리 엄숙한 사무 분위기로 유명했다. 당시 삼성동 넷마블 사무실에는 ‘절대정숙’ ‘업무집중’이라는 표어를 곳곳에 써놓았다. 창업 3년 만에 넷마블은 김범수 현 카카오 의장이 만든 게임포털 한게임을 위협하는 ‘빅3’에 올랐다.

2004년 방 의장은 CJ그룹에 넷마블 지분 상당량을 넘기는 깜짝 딜을 성사시킨다. 단칸방에 어렵게 살던 그가 현금 800억원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그는 늘 ‘부자’가 꿈이었다고 했다. 당시 방 의장은 퇴임식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영화도 있다”며 “직접 만든 회사를 떠나려 하니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목표했던 것을 다 이뤄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방 의장은 넷마블을 CJ그룹에 매각한 이후 10년간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다. 게임과 상관없는 새로운 일도 벌였다.

그가 게임 업계로 돌아온 것은 2011년 6월. 위기에 빠진 CJ E&M 게임 부문의 ‘구원투수’ 역할로 직함은 고문이었다. 당시 넷마블은 온라인 게임 신작이 연이어 실패하고 2010년 인기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 서비스권마저 넥슨에 뺏겼다. 고스톱 포커류의 웹보드 게임에 대한 정부 규제도 점점 심화했다.

방 의장이 복귀한 지 5개월이 지났을 때 CJ가 투자한 게임 개발회사의 지주회사인 CJ게임스가 출범했다. 방 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현금과 CJ E&M 지분 등을 모조리 처분해 CJ게임스에 투자했다.

CJ게임스 최대 주주에 올라선 방 의장은 ‘모바일 게임 올인’ 전략을 펼쳤다. 완전히 새 판을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온라인 게임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의 승부수는 ‘몬스터 길들이기’ ‘모두의 마블’ 등 모바일 게임 대흥행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즈음 CJ는 CJE&M의 게임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방 의장이 최대 주주로 있던 CJ게임즈와 합병시켰다.이 합병 법인이 바로 넷마블게임즈다. 방 의장이 CJ그룹에 넷마블을 매각한 이후 10여년만에 다시 넷마블의 경영권까지 확보하게 된 것이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넷마블에 복귀한 뒤 선보인 첫 모바일 게임 ‘다함께 차차차’

◆ “넷마블은 내 아들같은 존재...중환자실에 있는데 어떻게 복귀하지 않을 수 있나"

― 1998년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게임 관련 유명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합니다.

“2000년대 초 한국의 게임 시장은 2000억원 밖에 안됐지만 굉장한 활력과 희망이 있었고, 미래 도전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인터넷 인프라가 깔렸고 인력, 자금이 뒤따랐습니다.

‘인터넷이 미래를 지배할거다’라고 느낀 사람들은 마치 서부개척 시대처럼 IT 업계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30대 전후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처럼 세계 최고, 최초의 콘텐츠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김범수(한게임 창업자), 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 김정주(넥슨 창업자)는 원래 게임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인터넷 보급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잘 알고 있었기에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엔딩(결말)이 없는 온라인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지요.”

― 넷마블 복귀할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당시 넷마블이 정말 힘들 때였거든요.

“지인 가운데 단 한명도 (복귀에) 찬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족도 옛날 함께 일했던 임원들도, 어느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CJ그룹 차원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CJ게임즈도 제 돈 400억원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개발사를 인수하고 기존 개발사에 대한 재투자를 했습니다.

다들 게임 산업이 포화됐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 어떻게 복귀를 결심하게 됐습니까.

“넷마블은 제 아들과 같은 존재입니다. CJ그룹에서야 당연히 이래저래 해도 안되니까 다시 창업자를 찾았을 것입니다. 자식이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나에게 손해인지, 이익인지 따질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제가 비록 넷마블을 떠났지만, 넷마블이 내 자식같다는 점은 변하지는 않습니다.

또 넷마블은 추락하는 잠수함이긴 하지만 핵잠수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핵잠수함의 엔진만 고치면 다시 핵잠수함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핵잠수함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려면 사람도 뽑고 조직력을 갖춰야 해서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됩니다. CJ의 요청이 왔고 제 자식이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2002년 방 의장의 모습

―넷마블은 어떻게 다시 살아났습니까.

“복귀한 뒤 게임 개발사를 일일이 만나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달라. 모바일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굉장히 힘들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그게 무슨 게임이냐?, 아무리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된다 하더라도 작은 화면에서 게임을 하겠냐고 했습니다. 대다수 게임사들은 본인들이 만드는 (PC기반 온라인) 게임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PC 기반 게임을 내놨지만, 거의 망했습니다. 월급을 못 줄때가 되니까 마지못해 모바일 전환하는 개발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바일로 빨리 전환한 회사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의 하루 매출이 1억원씩 나오면서 다른 개발사의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우리는 몇 개월, 몇 년을 고생해 PC 게임을 개발했는데, 모바일 게임은 몇 주면 만들 수 있다'면서 2013년쯤 되니 대부분의 개발사가 모바일로 전환했습니다.

2012년 12월 30일 ‘다함께 차차차’, 2013년 1월 말 ‘다함께 콩콩콩’, 4월에 ‘마구마구’를 출시했고 마구마구가 앱마켓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모두의마블’, 8월에는 ‘몬스터길들이기’ 등 연이어 히트작이 나왔습니다.”

―10여년 전 넷마블을 CJ에 팔아 800억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넷마블로 돌아와 회사를 키워 방 의장의 지분 가치는 조 단위가 됐습니다. 더 큰 부자가 된 느낌이 어떤가요.

“제가 넷마블 이전에 벤처사업을 두 번 해서 다 망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제 머릿 속에 ‘내 지분가치는 얼마지’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만져보지도 못한 주식가치에 취해 망한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어느 순간 내 옆에 돈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지분가치가 얼마고 이런 거 따지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하지만 넷마블을 시작할 때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습니다. 2000년 넷마블 시작할 때는 직원들 월급을 밀리지 않게 하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업계에는 월급이 밀리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 CJ 산하의 넷마블은 왜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하나요.

“CJ는 대기업이긴 해도 똑같은 게임회사였습니다. 일단 제가 나갈 때 회사가 너무 잘된 상태에서 나갔습니다. 당시 분기 이익이 100억원이 났고, 서든어택 트래픽이 1위에 게임 포털 1위였습니다. 당시 서든어택을 유료화 하지 않은 단계였던 만큼 추가적으로 수익이 나올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제가 5월 말에 나갔는데 6월 말부터 서든어택이 유료화됐습니다. 제가 보유한 지분 5%를 팔지 않고 나간 이유는 회사가 더욱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어느정도 안정화돼 기본적인 매출이 나오다 보니 치열함이 사라졌던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성공은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두 번 성공은 실력입니다. 비법이 뭔가요.

“제가 복귀 후 1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봤기 때문입니다. 2007년엔 아이폰은 얼리어돕터(신제품을 빨리 쓰는 소비자)의 제품 정도로 여겨졌지요. 하지만, 제가 복귀한 2011년에는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가 대부분 스마트폰을 출하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휴대전화 시장에서 스마트폰 점유율이 30%로 껑충 뛰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모바일 쓰나미’가 오고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쓰나미는 수평선을 따라 오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고 눈에 보이는 시점에는 전멸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현재 넷마블의 성공은 미래를 예측하는 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어떻게 운영했나요.

“회사마다 운영하는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임원 혜택을 다 없앴습니다. 임원들에게 주는 차량도 없애려고 했습니다. 돈으로 주겠다는 게 제 방침이었습니다. 자유로우면 벤처, 그렇지 않으면 벤처가 아니다라는 설명에 전 반대합니다. 그렇게 회사 운영하다가 회사 망합니다. 회사란 동아리 방이 아닙니다. 벤처 문화란 도전 정신이 있냐 없냐의 문제입니다.”

―2015년 모바일 업계 사상 첫 매출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가족이나 CJ측 반응이 궁급합니다.

“가족들은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걸 잘 모릅니다. 처음 1~2년은 상당히 불안해 했는데, 요즘엔 사업이 잘 된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주요 CJ 경영진들은 축하 인사를 건네며 좋아해줍니다.

넷마블 사옥을 준비 중입니다. 판교보다는 구로에 있을 겁니다. 인력을 유치하는 측면에서 구로가 더 좋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쪽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 엔씨소프트의 ‘백기사(白騎士)’?

―2015년 엔씨소프트가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이 선배의 회사 경영권을 가지려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지분을 판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오너 행사를 하는 게 말이 안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두 사람이 잘해서 게임 업체를 인수했다면 업계가 박수쳐줄 만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하는 기가 막힌 딜이 됐을 것 같아요.”

방준혁 넷마블 의장(오른쪽)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왼쪽)이 공동사업과 전략적 투자를 위한 협약식을 가진뒤 손을 잡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결국 넷마블이 엔씨소프트의 백기사(자사주를 대주주의 우호세력에게 양도하는 것)로 등장해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끝이 났지요.

“엔씨소프트에서 연락이 온 게 아닙니다. 지인 중 보고펀드도 운영하고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인 분이 있었습니다. 저와는 옛날부터 같이 사업했던 사이입니다. 그 분이 저와도 김택진 사장과도 친합니다.

연말연시에 제가 그분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지적재산권(IP) 얘기하면서 요즘 신경 쓰고 있다고 하니, 그분이 ‘엔씨소프트도 모바일 하는데 출발도 늦었고 둘이 만나서 얘기 나누면 좋겠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엔씨소프트가 자사주(지분 8.93%)를 넘기면서 넷마블 주식(9.8%)를 받았습니다. 넷마블 시가총액을 1조원으로 평가한 것으로 엔씨소프트가 급한 마음에 자사주를 비싸게 넘겼다는 주주들의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런 평가에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엔씨소프트 백기사 역할을 하려고 그 자리에 서다니요. 말이 안 됩니다. 김택진 사장이 모바일 게임 쪽은 어려워하고 있었고, 넷마블은 모바일 경험이 있었고 엔씨소프트의 IP를 사용하고 싶었던 거죠.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나온 결과입니다.”

더 이상 온라인 최강국이 아닌 한국...중국과의 싸움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넷마블의 미래 전략도 고민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2016년은 중장기 넷마블 사업전략이 마무리되는 시기입니다. 2020년까지 5년 계획이 필요합니다. 모바일로의 늦은 전환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왔는지 이번에 게임 업계 전체적으로 각성했기 때문에 다음에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역할을 하기 위해 다들 빠르게 진행할 것입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VR 체험을 하면 헤드셋 무게도 상당하고 10분 이상 체험하면 어지럼증 현상도 존재합니다. VR에 최적화한 기기가 나와줘야 합니다. 2년 후 정도 지나면 가벼운 고글 수준의 기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2014년 중국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넷마블에 5330억을 투자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사회가 열릴 때 텐센트 사람들을 한 번씩 보는데, 텐센트는 정말 열심히 하는 회사라는 걸 확인합니다. 사실 텐센트가 넷마블에 크게 투자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넷마블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회사는 많았습니다. 다른 회사가 투자하겠다며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아쉬울 것은 없었습니다. 텐센트에서 연락이 와서 홍콩에서 만났는데 협상 첫 날 딱 쿨하게 결정하더라고요.

텐센트는 전략적 투자를 잘하는 회사입니다. 당시 넷마블의 기업가치를 따졌을 때 그 규모의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문님, 이 정도 가치의 기업에 투자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시죠? 당신만 믿고 투자하니까 회사 잘 키워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게임 업체에는 그런 식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투자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는 순간 보수적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주주가 참여했는지, 콘텐츠가 좋은지를 따져 투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텐센트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투자 사대주의가 만연합니다 .미국, 일본에서 투자를 받으면 욕을 먹지 않지만 중국에서 투자를 받으면 욕을 먹죠.

한국 정부 및 기업이 안주하는 바람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게임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중국 기업의 맹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의 빠른 성장 속도도 더 이상 유일한 무기가 아닙니다. 중국 기업의 속도가 더 빠릅니다. 이제는 죽느냐, 사느냐, 먹히느냐는 누가 더 한발 더 빠른가가 관건이 되는 시대입니다.”

넷마블이 건설 중인 4000억원 규모의 신사옥의 개념도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평정하고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전략이 있습니까.

“선제적 대응 뿐만 아니라 치밀한 글로벌 사업 전략이 필요합니다. 인지도 높은 초대형 IP, 미국, 중국 등 ‘빅 마켓'에 대한 철저한 현지화, 사용자 개인화 전략 등 3가지가 필요합니다. 넷마블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디즈니 등으로부터 대형 IP를 확보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중국, 일본, 북미가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70%를 차지합니다. 중국 일본 북미 시장에 각 게임별로 가장 타깃이 될 수 있는 지역 선정해서 타깃 빅 마켓에 맞춰서 게임을 개발해야 합니다. 넷마블은 2014년부터 20여개의 게임을 해외에 서비스했습니다. 많이 깨졌습니다. 2년 정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빅 마켓에서는 한국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와 함께 넷마블은 인공지능 게임서비스 엔진 ‘콜럼버스’를 한창 개발 중에 있습니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거지요. 넷마블의 방대한 게임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개발 중이고 1단계 개발이 끝났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해외 매출 비중을 2015년 28% 수준에서 2016년 50%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게임에서 지적재산권(IP)가 왜 중요한가요.

“한국의 경우 유명 IP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글로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은 모두 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돈으로 사용자를 산다는 심정으로 마케팅을 하다 보면, 수익 대부분을 써야 합니다. 유명 IP가 있으면 해외 시장 진출이 수월해집니다.”

―기업공개(IPO)는 언제 할 생각인가요.

“2015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2016년 말이나 2017년 상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지 말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나스닥 상장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2015년)의 영예의 대상작은 넷마블의 ‘레이븐'입니다."

지난 2015년 11월 11일 부산 벡스코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장. 넷마블의 액션RPG 레이븐(Raven)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넷마블은 그동안 다함께차차차, 모두의마블, 세븐나이츠, 몬스터길들이기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놨지만 대상을 받지 못해 ‘상복’이 없는 회사로 유명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무대 위에 올라가 레이븐을 개발한 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유 대표는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개발 기간 동안 고인이 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왼쪽)과 레이븐을 개발한 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왼쪽)가 게임대상을 수상한 후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다.

방 의장은 “넷마블은 지난 2007년 이후로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아무런 상을 받지 못했다”며 “유 대표를 안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유 대표와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몰려왔고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레이븐은 이날 대상과 함께 기술창작상 부문에서 ‘기획 및 시나리오’∙’사운드’∙’그래픽’ 등 3개 분야를 석권해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또 게임 이용자가 뽑는 ‘인기상’과 우수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우수개발자상’까지 받으며 6관왕을 기록했다. 모바일게임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해 ‘블레이드'에 이은 두 번째다.

2015년 3월 출시된 레이븐은 출시 5일 만에 구글과 애플, 양대 마켓에서 매출 1위를 석권한 후 10개월 가까이 최상위권을 유지한 히트작이다. 출시 40일만에 일일사용자(DAU) 100만명을 돌파했고 서비스 78일째에는 500만 다운로드를 넘어 ‘최단기간 최다 다운로드’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또 출시 99일만에 누적매출 1000억원을 달성, 모바일게임 사상 최단기간 1000억원 돌파를 기록했다. 현재 누적 다운로드는 800만 이상이며, 누적 매출은 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레이븐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 빛을 본 게임이다. 유 대표는 지난 2012년 에스티플레이라는 회사를 창업한 뒤 레이븐 개발에 나섰지만, 자금난에 허덕였다. 유 대표는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리다가 나중에 더 이상 빌릴 사람도 없었고, 몇 십만 원조차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 왔다”며 “팔수 있는 것 다 팔고 결국 부모님 집까지 담보를 맡기고 돈을 빌려 직원들 월급을 줬다”고 말했다.

레이블 시작화면

유 대표는 주변 지인의 소개로 넷마블몬스터의 김건 대표를 만났고, 방 의장도 만났다. 레이븐 초기 버전을 본 방 의장은 5분 만에 에스티플레이의 인수를 결정했다. 2013년 에스티플레이는 넷마블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레이븐의 성공은 카카오톡에도 일격을 날렸다. 당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카카오톡 게임 플랫폼의 점유율은 약 80% 이상으로 사실상 독점적인 상황이었다.

레이븐은 카카오톡 플랫폼이 아닌 ‘네이버 게임하기’ 플랫폼을 선택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카카오 플랫폼에 탑재하지 않고도 1등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카카오의 전선을 흩트리고 싶어했다. 실제로 이 의장은 직원들에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고 말하며 레이븐의 마케팅을 직접 챙겼다.

넷마블과 손을 잡은 네이버는 레이븐 광고와 마케팅에 물량 공세를 아끼지 않았다. 차승원을 TV 모델로 발탁, 3가지 버전 TV 광고를 집행하는 등 1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레이븐 마케팅에 투자했다.

또 TV, 신문, 버스 등 전통 매체 뿐만 아니라 네이버 포털, 네이버 앱스토어, 메신저 라인, 모바일 커뮤니티 밴드까지 총동원해 레이븐 광고와 이벤트를 벌였다. 차인표, 유인나 등 인기 스타의 스티커를 제공하면서 분위기도 띄웠다.

방 의장은 레이븐의 성공비결에 대해 “게임을 출시한 이후 업데이트 방향, 마케팅 방법 등 이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