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8월 14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SK그룹의 지난 1년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단일 지주회사 출범, 인수합병(M&A), 책임경영 강화 등의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에너지·통신·반도체 등 핵심 사업 '3인방'이 답보상태이고 회장 내연녀 및 혼외자 파문 같은 오너 리스크를 노출했다. SK그룹의 현재는 어떤 상황이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편집자주]

'1조3832억(2015년 3분기)→9888억(2015년 4분기)→5617억(2016년 1분기)→4528억(2016년 2분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2년 3월 SK하이닉스 출범식에서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고 반도체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가 석유파동으로 꿈을 접었던 SK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 하이닉스를 새 가족으로 맞았다"며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이상으로 도약하는 SK하이닉스를 꿈꿀 것이며, 세계 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매 분기 1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익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전체 매출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D램 시황의 악화로 실적이 주춤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올 하반기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회복속도는 느릴 것으로 분석했다. 수요 부진에 따른 D램 출하 증가세 둔화와 원화 강세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D램을 이을 캐시카우(cash cow, 수익창출원)로 꼽히는 낸드플래시는 승부수인 3D(차원) 제품 출시가 늦어지면서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5월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자베르 무바라크 알 하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저유가, 환율 등의 영향으로 재계 3위 SK그룹이 '기로'에 서 있다. 지난해 8월 1일 SK(주)와 SK C&C가 합병해 탄생한 단일 지주회사 SK(주) 출범 당시만 해도 "2020년까지 매출 200조원, 세전이익 10조원"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지만 현재로선 목표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에너지산업의 경우 유가와 연동성이 강하고, 통신 산업은 규제 산업이라 SK그룹만의 힘으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반도체의 경우 올 하반기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낸드플래시, 비메모리와 관련해 과감한 의사결정과 기술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최태원 회장 "변화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SK이노베이션 '역성장'·SKT '성장정체'

최태원 회장은 지난 6월 30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 16개 관계사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을 소집해 '2016년 SK그룹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최 회장은 "현실의 SK그룹은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낮고, 대부분의 관계사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돌연사)에 몰릴 수 있다"고 했다.

사업·조직·문화 등 기존 SK 틀을 깨지 않으면 그룹의 미래가 없다고 최 회장 스스로 경고한 것이다. 최 회장의 발언은 주력 계열사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SK그룹의 기둥격인 SK이노베이션은 매출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은 19조7384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1.2%나 줄었다. 유가가 40달러선을 위협받고 있어 올해 연간 매출은 40조원을 넘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2014년 연간 매출인 65조원과 비교하면 불과 2년 사이 매출이 4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위안은 SK이노베이션의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2014년 영업손익이 1828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1조9795억원 흑자로 돌아선 데 이어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964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7.3% 늘었다.

하지만 유가의 동향에 의존하는 정유업 특성상 수익성 악화 현상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유업의 수익성은 유가 흐름의 방향에 따라 요동친다. 당장 올해 하반기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 물량 확대와 마진(중간이윤)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올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2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상황이 언제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SK그룹을 대표하는 통신회사 SK텔레콤의 성장에도 빨간불이 이미 들어왔다. 국내 1위 무선통신 회사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바탕으로 영업이익률은 9%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 매출은 8조495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8조4960억원) 수준에서 제자리걸음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포화와 경쟁 심화로 수익성 악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유선통신업체 SK브로드밴드의 영업이익률은 2~3% 수준에 그치고 있고, SK플래닛은 지난해 적자를 냈다. 최근 CJ헬로비전 인수 불발에 따른 성장 전략 수정과 11번가 관련 손실은 고민거리다.

SK그룹의 모태로 올해 4월부터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회장이 이끄는 SK네트웍스도 실적이 부진하다. SK네트웍스의 올 상반기 매출은 9조205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8% 이상 감소했다. 정보통신·상사 부문의 부진에 면세점 사업 중단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SK네트웍스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5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8% 줄었다.

◆ 주력 사업 체력 떨어졌는데 2020년 매출 '200조' 달성 어려워

SK그룹은 IT서비스,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반도체 소재·모듈, 바이오·제약, 글로벌 LNG(액화천연가스) 등 신성장동력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까지 이들 사업에서 매출 16조7000억원, 영업이익 2조69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회사가 제시한 계획대로 2020년 매출 200조원을 달성하려면 90% 이상의 매출은 기존 사업에서 달성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에너지), SK텔레콤(통신), SK하이닉스(반도체) 등 매출 기여도가 높은 주력 계열사가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올해에는 역(마이너스)성장 또는 성장정체가 예상되며, 내년 이후 시장 전망도 낙관적이지는 않다.

최태원 회장이 올해 6월 8일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SK바이오팜을 방문, 연구원과 함께 개발 중인 신약 물질을 살펴보고 있다.

대형 M&A(인수합병) 같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SK그룹의 매출은 당분간 오히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SK그룹의 매출은 2012년 158조원에서 지난해 137조원으로 3년 사이 20조원 이상 줄었다.

SK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현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석유화학 회사들이 탈석유 시대에 대비하는 흐름에 발맞춰, 고부가제품, 비전통자원, 글로벌 파트너·인수합병(M&A), 중국·미국 등에서 사업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화학사업의 경우 중국과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윤활유 사업에 대해선 완제품을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석유개발의 경우 미국 내 셰일가스 등을 신규 인수하고 기존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SK텔레콤은 플랫폼 사업자로서 통신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가치 마련을 사업 화두로 제시했다. 고객과 산업, 사회의 잠재적 기대를 만족시켜 '새로운 가치·시장·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 기업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입을 노리는 상황에서 D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변화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돌연사) 할 수 있다는 최태원 회장의 발언은 지금의 SK가 그만큼 위기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시장 상황에 따른 일회성 이익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업체질 개선과 성장동력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