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건물을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알쏭달쏭한 느낌이 든다. 정문에서 아셈타워를 위로 쳐다 보면 건물의 양쪽 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모이는 형태인데, 얼핏 봐서는 생김새를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성사진으로 아셈타워를 내려다보면 그제야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영동대로에서 바라본 아셈타워. 뒤편으로 무역센터가 보인다.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매끈한 곡선으로 모이는 아셈타워 정문을 보면 선수(船首·뱃머리)가 떠오른다. 네모난 아셈타워의 중앙 부분을 보면 탄탄한 선체중앙부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물결치듯 꺾어지는 아셈타워 후문은 유려한 선미(船尾)와 닮았다. 건물이 하나의 선박과 같은 모습인데, 한국무역협회가 이 건물을 지을 때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싣고 항해하는 모습'을 콘셉트로 삼았기 때문이다.

20일 찾은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정문 앞 원형도로에는 제네시스 EQ900, 벤츠 S600, BMW 7시리즈 등 고급 승용차들이 끊임 없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셈타워가 오피스 건물로는 특이하게 정문 앞에 원형도로를 두었던 이유는, 이 건물이 지난 2000년 25개국 정상이 참여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Asia Europe Meeting, 이하 아셈)를 위해 지어진 특별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 지자체 '유치 전쟁', 건설사 '수주 전쟁' 거쳐 3년 만에 완공

아셈은 당시 한국이 개최하는 '건국 이래 최대 외교행사'였다. 지난 1996년 우리나라는 제3차 아셈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는데, 동시에 25개 세계 정상들과 회담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걱정거리를 안게 됐다. 정부는 급하게 아셈을 개최할 장소를 물색했고, 총 8개의 지자체·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아셈타워는 컨테이너 선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용산구, 한국무역협회(삼성동)와 대전, 부산, 경상북도, 제주도, 경기도 등 총 8개 지자체·단체가 아셈 유치 계획서를 냈다. 아셈을 유치할 경우 각종 인프라 시설을 확충하는 동시에 지역의 관광수익 증대도 노릴 수 있어 아셈은 지자체에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유치전은 결국 1996년 6월 무역협회가 낸 '삼성동 아셈센터' 계획안의 승리로 돌아갔다. 회담 개최까지 4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역협회가 이전부터 국제회의장 건립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삼성동 입지가 결정되자 곧이어 건설사의 수주 전쟁이 시작됐다. 특히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전후해 국내 건설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대형 건설 프로젝트는 건설사 입장에서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한진건설·포스코개발 컨소시엄, 삼성물산·두산건설 컨소시엄, 선경·동아·쌍용건설 컨소시엄, 현대·대우·LG·금호건설 컨소시엄 등 총 11개 업체 4개 컨소시엄이 경합한 끝에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1997년 공사를 따냈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당시 아셈타워 공사는 촉박한 공기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전쟁처럼 치러졌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보통 기본설계와 실시설계가 확정되고 나서 계약을 하지만, 아셈을 앞둔 급박한 상황이라 설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계약해야 했다"며 "아셈타워 건설에는 공기가 최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촉박한 공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패스트트랙 공법'으로 이 건물을 지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때로는 감독자의 구두 지시로 현장에서 시공이 이뤄졌고, 공기에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예측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당장 시공할 부분이 발생할 경우 계약사항에 없던 시공을 한 다음에 정산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기억했다.

◆ 3년 속성으로 준공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 안방'

아셈타워·컨벤션센터는 결국 2000년 5월, 아셈회의를 5개월여 앞두고 공사를 마쳤다.

지하 4층~지상 42층, 높이 176m에 약 14만㎡의 연면적의 건물이다. 3년 만에 속성으로 준공됐지만, 지난 2001년 "국제적 현대적 감각의 조형미를 갖췄다"며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는 등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진도 6.5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지기도 했다.

아셈타워에서 영동대로를 따라 남쪽을 바라보면 무역센터(오른쪽)와 함께 크고 작은 오피스 건물들이 보인다.

아셈이 열린 2000년 10월, 아셈 컨벤션센터는 정상회의장으로 쓰였고, 아셈타워는 각국 대표단들이 이용할 사무 공간으로 사용되는 등 회담을 지원하는데 쓰였다. 회담 당시부터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었다. 시스코, 유니텔, 마이크로시스템즈, 앰피맨닷컴, 소니코리아, 썬마이크로, 컴팩, 로커스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아셈타워에 둥지를 틀었다.

영동대로와 테헤란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아셈타워는 무엇보다 입지가 강점이다. 설계 단계부터 초고속 통신망과 자동방재 시스템을 계획하는 등 최첨단 오피스 건물로도 손색이 없도록 지어졌다. 아셈타워는 당시 한국 최초로 100Mb(메가바이트) 속도의 인터넷 전용선이 깔렸고, 층당 600회선의 동시 전화 통화도 가능했다.

지금도 아셈타워에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시스코, 애플, 오라클, 알카텔 루슨트, 도시바 일렉트로닉스 등이 현재 아셈타워 사무실을 임차해 쓰고 있다.

코엑스 관계자는 "IT·벤처 업체들이 테헤란로에 집결해있고, 국제공항과 바로 연결되는 도심공항터미널도 근처에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아셈타워 입주를 선호한다"며 "아셈타워에서 보는 경치도 좋기 때문에, 입주 기업들 사이에서는 고객사 초청행사를 열 때 호텔에서 하지 않고 사무실을 꾸며서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전했다.

그럼 아셈타워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어떤 모습일까.

아셈타워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현대자동차 신사옥 건설현장이 보이고, 뒤편으로 잠실 종합운동장도 보인다.

비상시에만 개방하는 아셈타워 헬기 게이트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아셈타워의 입지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셈타워 동쪽으로는 영동대로 맞은편에 있는 현대자동차 부지가 눈에 들어오고, 현대차 부지 뒤편 한강 너머로는 잠실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이곳에 지하 6층~지상 105층의 통합사옥을 지을 계획이다. 좀 더 뒤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제2롯데월드가 국내 최고층 빌딩의 위엄을 뽐내고 있다.

아셈타워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테헤란로를 따라 포스코센터(사진 왼쪽)와 세계문화유산 정릉(가운데)도 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무역센터 건물이 가장 먼저 보인다. 무역센터 뒤편, 영동대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위메프, 파크하얏트서울, KT&G타워 등이 보인다. 테헤란로를 따라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포스코사거리에 있는 포스코센터가 우뚝 서 있고, 세계문화유산인 정릉도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오피스 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아셈타워 북쪽을 바라보면 봉은사 미륵대불이 눈길을 잡아끈다. 뒤편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아셈타워 북쪽을 바라보면 봉은사 미륵대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뒤편으로 경기고등학교가 있고, 주변에는 아파트촌이 있다. 좀 더 뒤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영동대로와 청담대교가 보이고 한강 너머로 뚝섬한강공원까지 보인다. 뚝섬한강공원에는 유람산 선착장이 있어 이따금 이곳으로 유람선이 지나가는데, 도심 속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