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사업계획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실제 계획을 수립하는 기업은 응답 기업의 절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내 제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기업의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 실태와 시사점’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4.3%가 ‘중장기 계획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25일 밝혔다.

중장기 사업계획은 기업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1년 이상의 사업 계획을 말한다.

기업들은 중장기 사업계획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로 ‘경쟁심화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 고조’(56.1%)를 첫 손에 꼽았다. 이어 ‘혁신적 신상품·신기업의 등장’(15.4%), ‘소비자의 인식 및 행태 변화’(12.3%), ‘국내외 경제 정책·제도의 급변동’(11.1%),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정학적 리스크’(5.1%)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 계획을 수립하는 기업은 응답 기업의 절반 정도인 54.7%에 그쳤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이 67.0%로 중소기업(48.5%)보다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비율이 높았다. 업종별로는 ‘고무·종이·플라스틱’(79.4%), ‘기계·정밀기기’(77.8%) 분야가 많았으며 ‘식음료’(35.3%), ‘제약·의료’(30.0%) 분야가 작았다.

업종별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 비율.

예측기간별로는 ‘4~5년’(47.8%)을 내다보는 기업이 가장 많았다. ‘2~3년’은 21.5%, ‘6~7년’ 3.7%, ‘8~10년’ 23.3%, ‘10년 초과’는 3.7%였다.

중장기 사업계획의 내용으로는 ‘추진목표와 기본방향’이 들어간다고 답한 기업이 49.5%로 나타났다. 이어 ‘사업조정계획 등 실천과제’(26.6%), ‘시나리오별 대응전략’(10.9%), ‘주요 변화동인과 파급영향 예측’(10.3%)을 꼽았다.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조직, 인력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 중 21.2%만이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반대로 ‘투자를 늘릴 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78.8%에 달했다.

대한상의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선도기업은 먼 미래를 보고 ‘문샷씽킹’(로켓을 달로 쏘아 올리겠다는 혁신적 사고)같은 도전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기업도 현안에 대한 단기적 대응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문샷 프로젝트’의 가속화를 위해 지난해 지주회사인 알파벳 산하에 구글(검색회사), 베릴리(생명과학), X랩(무인자동차), 네스트(스마트 홈), 구글벤처스(벤처 투자) 등 계열사를 두는 구조로 조직을 개편했다.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으로 경영에 도움을 얻은 기업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기 사업계획의 성과를 묻는 말에 응답 기업의 34.7%가 ‘새로운 아이디어 포착, 선제 투자 등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사업 우선순위 조정, 인력재배치 등으로 시행착오 감소’(30.4%), ‘위기시 계획적 대응으로 피해규모 축소’(23.9%), ‘사전대비를 통한 심리적 안정 효과’(11.0%)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운 요인으로는 '단기 현안에 매몰돼 여유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81.9%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빨라진 환경변화 속도'(6.0%), '잘못 예측할 경우 책임소재 부담'(5.2%), '자사내부 인식부족'(4.3%) 순으로 답했다.
기업들이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시 가장 우려하는 변수로는 '중국 경기둔화'(34.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재편'(23.0%), '한·중간 기술격차 축소'(18.0%),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보호무역 등 통상환경 변화'(11.0%), '인구고령화'(9.7%)를 차례로 들었다.

산업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하는 미래기술로는 '신소재'(28.3%)를 첫 손에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이어 '에너지 효율화·친환경에너지'(18.3%), '인공지능'(16.7%), '바이오·헬스케어'(11.0%), '사물인터넷·클라우드'(9.3%), '로봇·무인기기'(9.0%), '가상·증강 현실'(6.0%) 순으로 답했다.

대한상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지금은 기술혁신에 의한 이종산업간 융복합,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지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며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는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순혈주의 등 폐쇄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오픈마인드 사고를 갖고 다양한 계층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봉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시기일수록 장기적인 밑그림을 갖고 있어야 구성원들이 목표를 공유하고 흔들림 없이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며 “중장기 사업계획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기보다는 자신의 핵심역량을 키우면서 사업내용을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