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실시하는 8·15 광복절 특별사면에 상당수 기업인이 포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설명한 사면 배경에 '경제 위기 극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학자는 정치적 사면은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불법비리 기업인 사면 불가'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경제범죄를 사면하는 것은 사면의 기본 취지와도 맞지 않고, 과거 '경제 살리기' 효과도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재계 "우리 회장님 옥살이는 그만" 기대…경제개혁연대 "박 대통령, 대선공약 파기"
재계에서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인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이다. 조석래 효성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은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아 현재로선 사면 대상이 아니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7월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선고 결과 벌금이 소폭 줄고, 징역 3년으로 감형됐지만 실형을 피하지는 못 했다. 대법원이 작년 9월 항소심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집행유예를 노리고 재상고했던 이 회장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상고를 포기한 것이다. 이는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형이 확정되어야 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재계는 분석한다.
이 회장은 유전병인 근위축증(샤르코마리투스·CMT) 증세 악화로 수감생활은 물론, 더이상 재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CJ는 주장한다. 하지만 횡령 등의 혐의로 2012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고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의 선례가 있어 이재현 회장이 특사 대상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하다. 이 전 상무는 고령에 건강이 악화됐지만 감옥과 병원을 오가다 세상을 떠났다.
김승연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이어 서울고법에서 배임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김 회장은 경영에 복귀하자 삼성과의 빅딜, 면세점 사업 등 굵직한 경영활동을 했다. 하지만 집행유예 기간인 2019년 2월까지 회사의 등기임원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형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회삿돈으로 펀드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최태원 회장에 대해 징역 4년,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는 징역 3년 6월의 형을 확정했다.
작년 광복절 특사로 최태원 회장은 풀려났지만 최재원 부회장은 옥살이를 계속 해야만 했다. 오는 10월 20일 형기가 만료돼, 현재 90% 이상의 형기를 감옥에서 보낸 상태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도 사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구 부회장은 LIG건설의 기업어음(CP)을 사기발행한 혐의 등으로 2014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전체 형기의 93%를 이행했고, 3400억원 규모의 피해보상과 민·형사상 합의를 마무리한 상황이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형기의 절반이 지나 특사 요건을 갖췄다.
경제개혁연대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불법비리 기업인 사면 불가' 원칙은 2015년 광복절에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복역중이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특별사면한 것으로 이미 깨졌다"면서 "올해 또 다시 불법비리 기업인을 사면한다면 기업인 사면을 연중행사로 치렀던 역대 대통령의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기업인 풀어주면 경제가 살아난다고?…해외에선 중대 경제범죄 사면 안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총수들도 국회의장 보고용으로 작성된 특사 예상 명단에는 올라있다. 명단에는 조석래 효성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현재현 전 동양 회장 등이 포함됐다.
5000억원대 분식회계와 탈세·횡령·배임·위법 배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석래 회장은 1심에서 탈세와 위법배당 혐의 등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과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았다.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에게는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조 회장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았으나 2012년 보석으로 풀려났다. 일부 시민단체는 보석 허가 조건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횡령 및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받고 수감중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기업인을 풀어주고 기업이 투자를 하는 것은 사법정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과거에도 기업인 특사가 많았지만 사면을 해서 경제가 살아난 적이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재벌 총수들이 여전히 대법원 양형기준에 비해 적은 형을 받고 있다"면서 "해외에서는 중대 경제범죄를 사면하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