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캐릭터다. 이 게임을 실행하면, 지금의 20~30대가 어린 시절에 만화로 보던 포켓몬스터와 포켓볼 등이 3차원 그래픽으로 등장한다. 휴대폰에 비춰진 실제 건물과 땅을 배경으로 입체적으로 서 있는 만화 속 캐릭터들은 길을 걷다 직접 마주친 것처럼 반갑다.
만화 속 캐릭터가 실제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살려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포켓몬 고 개발사인 나이앤틱의 한국계 디자이너 황정목(38·미국명 데니스 황) 아트총괄이사다.
구글에 근무하던 황 이사는 구글 사내 벤처 형태였던 위치기반 게임 '인그레스(Ingress)'의 개발팀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다. 이후 구글 지도 개발을 주도한 존 행크 전 부사장을 중심으로 개발팀이 나이앤틱이라는 개발사로 독립하면서 그도 자리를 옮겼다.
황 이사는 포켓몬 캐릭터의 개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증강현실 기술의 몰입도를 높이는 작업을 주도했다. 게임 업계에서는 "그가 없었다면 포켓몬 고 열풍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미국 디지털 대중문화 전문가인 버지니아 헤퍼넌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포켓몬 고는 사회적 실험이 아니라 예술 작품'라는 기고를 싣고 포켓몬 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뛰어난 예술적 측면"이라면서 황 이사를 언급했다. 그는 "포켓몬 고가 신비로운 신세계를 창출하고, 낡고 지루한 지구에 디지털 세상의 판타지를 접목시키는 데 황 이사가 핵심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황 이사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순수 미술과 컴퓨터를 전공했다. 1998년 그는 구글에 웹페이지를 운영하는 인턴으로 입사했다. 구글은 당시 모든 직원에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중 20%는 무조건 업무와 관련 없는 일로 채우라는 '20% 룰'을 시행하고 있었다. 황 이사는 이 시간에 구글의 로고를 변형하는 등 낙서를 하곤 했다.
이 모습을 본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창업자는 "로고 디자인을 한 번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황 이사는 "어릴 때 낙서를 많이 해서 선생님께 꾸중을 자주 듣곤 했는데 그 때의 낙서가 구글 로고 디자인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황 이사가 2000년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새롭게 디자인한 구글 로고가 메인에 걸리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황 이사는 'GOOGLE'이라는 여섯 글자를 기념일 등에 맞춰 새롭게 창조하는 구글 로고(두들) 디자인을 도맡았다.
구글이 2001년부터 한국의 명절과 기념일을 맞아 디자인한 로고를 선보인 것도 한국계인 그가 디자이너로 활약한 영향이 크다. 황 이사는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는 구글 로고를 선보이며 국가 기념일이 겹친 인도인들에게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그는 국내 예술·문학 작가와 관련된 두들도 많이 선보였다. 2010년 12월 30일에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일 기념 로고를 선보였고, 2013년 10월 20일에는 소설가 박완서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한 두들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2014년 2월 23일 작가 이효석의 탄생일에 맞춰 '메밀 꽃 필 무렵' 가운데 한 장면을 표현했고, 2014년 4월 10일에는 서양화가 이중섭의 탄생일 96주년을 맞아 유명작 '흰소'를 구글 로고로 만들었다.
지난 6일 서비스를 시작한 포켓몬 고는 미국·호주·영국 등 현재 35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 정식 출시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사용자들이 설치파일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서 즐기고 있어 업계에서는 사용자가 이미 1억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