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 유모(31)씨는 최근 해외 직구를 통해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 ‘1985 샤또 쉬드로 소떼른(1985 Chateau Suduiraut Sauternes Blend)’을 구매했다. 1985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국내에선 찾을 수 없었다. 유씨는 “환율이나 배송비를 고려하면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원하는 와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박모(34)씨는 최근 시간이 날 때마다 독일 롱보드(스케이트보드 일종)를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한다. 오는 15일(현지시각) 예약판매를 시작하는 ‘바슬(Bastl)’사의 새 모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익스트림 스포츠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에선 유럽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다”며 “한정판이나 신상품을 살 땐 해외 직구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3040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블 영화 캐릭터 상품. 해외 직구를 통해 피규어를 구매하는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성인 남성이 증가하고 있다.

3040세대 남성 ‘덕후'들이 해외 직구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해외 직구를 이끌었던 30대 여성의 해외 직구 이용 비중이 크게 감소한 것과 달리 3040 남성의 직구 이용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해외 직구 구조가 가격과 여성 중심에서 최신 제품과 남성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3040 남성, 해외 직구 정체 속 나홀로 성장

14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해외 직구 수입액은 7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했다. 해외 직구물품 수입 건수(815만건)가 지난해보다 3% 늘긴했지만, 직구 시장 자체가 정체된 수준이다.

올해 1월 관세청이 발표한 해외 직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직구 금액은 2014년에 비해 1% 감소한 15억2342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머물렀다. 매년 50%씩 증가했던 해외 직구 규모가 감소한 것은 해외 직구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성별·연령대별 해외 직구 이용 비중 추이.

전체 해외 직구 규모가 주춤한 것과 달리 3040 남성의 해외 직구 이용 비중은 계속 늘었다. 신한 트렌드 연구소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1분기 해외 직구 이용 비중은 2011년 1분기 11.6%에서 올해 1분기엔 15.4%로 증가했다. 30대 남성, 20대 남성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1인당 해외 직구 구매 금액(객단가)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G마켓은 올 해 상반기 해외 직구를 한 고객들 중 30대 남성의 평균 구매 단가가 고객 평균 보다 80% 가량 높다고 밝혔다. 30대 남성의 평균 구매 단가는 같은 연령대의 여성의 두배에 달했다.

◆ “환율에 따른 가격변화 영향 덜받아”

전문가들은 환율이 이런 변화의 주된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2013년 1095원이던 평균 환율이 2015년 1131원으로 오르며 해외 직구의 장점이 희미해졌다. 배송비, 관세에 환율 상승까지 겹쳐 가격 부담이 커진 것이다. “불편해도 싼 맛에 해외 직구 한다”던 여성 소비자들이 확 줄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에 덜 민감한 남성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대비 해외 직구 거래액이 가장 크게 증가한 품목이 전자제품(35.8%)이었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제품의 거래액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이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추이.

품목별 취급액 구성비 추이도 비슷하다. 올해 1분기 게임·소프트웨어 콘텐츠 비중이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1%포인트 늘었고, 취급액은 23% 증가했다.

신한 트렌드 연구소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가격지향적인 30대 여성 비중이 급감한 반면, 3040 남성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얼리어답터, 마니아적 성향이 있는 남성들이 국내에 없는 희귀제품, 최신기기 등을 해외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입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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