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언제 비가 또 올지 몰라 새벽 일찍 자욱한 안개를 뚫고 장수로 왔다. 장수읍내에 도착하기 전 천천면 장판리, 13번 국도 옆에 작은 공원이 보여 가 보았다. 이 공원 안에 타루비(墮淚碑)라 이름 붙인 비석이 있다. 조선 순조 2년(1802)에 세운 것이다. 안내판에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장수현감이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데 꿩이 놀라 날았고, 이 소리에 말도 놀라는 바람에 현감이 절벽 옆 연못에 빠져 죽었다. 수행하던 관리가 자신이 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현감이 죽었다고 생각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타루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기고 꿩과 말을 그린 다음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타루(墮淚)는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뜻이다. 공원 안에 들어가면 타루각이 있고 연못 옆 벽에 꿩과 말을 함께 조각해 놓았다.
타루공원을 지나 장수군청에 도착하였다. 군청 주변에 옛 관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왔는데 옛 건물은 보이지 않고 안개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래되고 멋있어 보이는 나무다.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 스토리가 더 감동을 주는 법이다. 장수의 대표적인 인물이 논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촉석루에서 일본군 장수를 안고 남강으로 뛰어 내려 죽은 이가 주논개(朱論介, 1574-1593)다. 강으로 뛰어내린 의로운 바위가 의암(義巖)이다.
소나무 아래 설명문에는 이 나무를 1588년경 논개가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의암송(義巖松)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여기서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장수군청에서 장수초등학교 방향으로 향했다. 군청 건물 뒤편에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둘레 7.0m, 높이 22m다.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405년된 나무다. 1577년경 장수현감 최경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옛지도를 보면 아사(衙舍), 객사(客舍), 향교(鄕校)가 보인다. 장수군청 근처에 장수초등학교가 있다. 1912년에 개교한 학교다. 장수초등학교 오른쪽에 장수향교가 보인다. 옛지도에 객사 옆에 향교가 그려져 있다. 남아 있는 건물은 향교 밖에 없으니 상대적 위치를 통해 옛지도와 현재 건물을 비교해 보았다. 객사터에 장수초등학교가, 아사터에 장수군청이 들어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장수향교는 다른 향교에 비해 크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처음 지었는데 지금의 장소로 옮긴 것은 숙종 12년(1686)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비각이 하나 보인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향교를 불태우려 했는데 정경손(丁敬孫)이 필사적으로 지켜내, 그 공적을 기린 비각이다.
아침 일찍 안개 속에서 바라본 향교의 대성전(大成殿)은 근엄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 건물로 알려져 있는데 보물 제 272호다. 시간의 흔적이 어떻게 건물에 녹아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장수의 대표적 인물이 논개니, 그의 사당이 없을 수 없다. 향교에서 약 1km 떨어진 장수읍 두산리에 논개사당이 있다. 1955년에 남산공원에 처음 지었는데 1974년에 이전한 것이다. 논개 사당 안내문에는 주논개가 태어난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추모대제를 지낸다고 설명해 놓았다.
논개 사당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옛지도를 통해 장수군 주변의 산줄기를 살펴 보았다. 장수군 동쪽은 덕유산으로부터 내려온 맥이 육십령으로 연결된다. 이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동쪽의 물은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육십령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는 장수 남쪽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연결된다. 장수 남쪽에 그려진 고개가 물을 나누는 고개, 수분치(水分峙)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수분현(水分峴)으로 표시되었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북쪽은 금강 유역권, 남쪽은 섬진강 유역권이 된다.
장수읍내에서 남쪽으로 오면 국도변에 수분령휴게소가 있는데 그 근처에 있는 고개가 수분치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금강과 섬진강이 갈라지니 고개의 북쪽에 해당하는 장수군에 금강의 발원지가 있는 셈이다. 장수 답사를 왔는데 금강 발원지를 가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금강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 뜬봉샘이다. 뜬봉샘 생태공원에 주차를 하고 나무데크를 오르고 올라 뜬봉샘에 도착하였다. 한강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는 가는 길도 멋있고 물도 쏫아올라 한강 발원지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뜬봉샘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뜬봉샘 옆에 그려놓은 금강 유로 그림과 설명판을 보고 내려 왔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뜬봉샘 근처까지 동네 주민의 트럭이 다니고 있었다. 힘들게 걸어서 올라왔는데 더 허탈했다. 금강 발원지를 다녀 왔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았다.
뜬봉샘에서 내려와 땀을 식히며 장수군 관광안내도를 보니 논개생가가 눈에 띈다. 장수군청 앞에서 의암송을 보고 논개 사당을 다녀왔지만, 장수에 와서 논개 생가를 보지않고 갈 수는 없다. 다시 힘을 내어 논개 생가로 간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에 생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설명을 보면 논개는 1574년 음력 9월 3일에 주달문과 밀양박씨의 딸로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지 제일 위쪽에는 논개의 부모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원래 생가는 1986년에 대곡저수지 축조로 수몰되었고, 이곳은 1997년부터 생가지로 새로 조성한 곳이다. 유명한 인물을 통해 장소마케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답사지로 육십령 고개를 선택하였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거창군과 함양군, 서쪽이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장수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경상도로 넘어가는 고개가 육십령이다.
육십령(六十嶺)의 육십(六十)이란 명칭이 붙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지금은 함양에 속하는 조선시대 군현이 안의현이었다. 장수현 읍치와 안의현 읍치에서 각각 60리에 위치한 고개가 육십령이라는 설, 이 고개를 넘기 위해 작은 고개 60개를 지나야 한다는 설, 산적이 많고 험준하여 60명은 모여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는 설 등이다.
어떤 설명이든 이 고개가 백두대간의 중요한 교통로였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경로라는 점은 분명하다.
장수를 답사하면서 곳곳에 축사가 있는 것을 보았고 뜬봉샘 가는 길에서는 사과 조형물이 크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육십령 고개 마루에 세워놓은 '군민이 중심되는 행복 장수, 어서오십시오'라고 적힌 안내판 아래에 한우와 사과가 크게 그려져 있다. 관광안내도에 오미자, 토마토, 표고버섯, 흑돼지도 소개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장수 한우와 장수 사과를 홍보하고 있었다.
육십령 고개에서 겹겹이 펼쳐진 산줄기를 바라보며 논개의 고장, 금강의 발원지가 있는 장수군 답사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