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헤어스프레이나 등산제품용 발수코팅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호흡기 질환이나 폐 손상 등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일부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20111년 피해가 집중된 원인이 당시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 농도가 유독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독성학회가 주최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 계기로 본 주변의 호흡기 관련 위험물질’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헤어 스프레이의 독성 여부, 가습기 살균제 제품 안정성에 관한 새 연구와 새 쟁점이 쏟아졌다.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독성학회 주최 세미나.

◆ “스프레이류 안심 못해...흡입할 수 있는 화학물질 안전성 관리 지침 없어”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시험연구센터장은 “헤어스프레이의 경우 실제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는 양의 약 7배 가량을 실험 쥐에 노출시켰더니 사망했다”며 “유통량이 많은 헤어스프레이 제품 1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공기중에 뿌려져 인체에 흡입될 수 있는 제품들의 안전성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사람이 흡입할 수 있는 화학 제품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살충제, 방향제, 세정제, 청소용품 등이다. 이 센터장은 “4년 전 조사 기준으로 청소용품의 경우 독성 정보가 표기된 제품 비중이 50~60%에 불과했고, 흡입했을 때 안정한지 여부를 표기한 경우는 10%에 그쳤다”며 “소비자들이 흡입 독성이 있는 화학 제품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흡입 독성은 인체에 흡수됐을 때 독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헤어스프레이의 경우 일반적인 방 크기의 공간에 사람 1명이 흡입할 수 있는 양의 6.90배에 달하는 양을 실험 쥐에 투입했더니 사망했다. 발수코팅제의 경우 지난 2012년 발수코팅제를 사용한 30대 남성이 사용 2시간 만에 구토와 호흡곤란을 동반한 간질성 폐렴 증세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

이 센터장은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스프레이류의 화학 제품은 인체 흡입이 될 수 있는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별다른 규정이 없다”며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흡입 독성과 안전성 관리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보건기구는 전세계 사망원인 중 만성폐쇄성 폐 질환이 1990년 6위에서 2020년이 되면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만큼 앞으로 폐 질환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약 85%가 안전성 데이터가 미비한 상황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 2010·2011년에 집중된 원인,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핵심 제품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 손상 피해자가 2010년과 2011년에 집중된 것은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 구아디닌)의 농도가 일부 제품에 한해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2차 조사까지 접수된 폐 손상 환자 221명 중 42%인 92명이 2011년, 17%인 38명이 2010년에 집중 발생했다. 이 기간 동안 폐 손상으로 인한 사망자 95명 중 2011년 38명, 2010년 20명으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폐 손상자들의 살균제 사용 기간은 대부분 ‘1년 이내’였다.

박동욱 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문제가 된 옥시 제품의 경우 판매량 추정치를 보면 2005년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며 “2000년대 이후 가습기 살균제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제품의 주요 성분 농도를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의 폐손상 원인으로 ‘우연의 일치’ ‘추운 날시로 인한 가습기 사용량 증가’ ‘ ‘신종인플루엔자와 구제역 등 감염위생으로 살균제 구매 급증’ ‘중간 원료 제품의 농도 증가’ 등도 있지만, 일부제품의 살균제 농도가 높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가 지난 5월말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또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한 화학 제품의 기본적인 판매량 데이터나 안전성 지침 등이 없는 게 더욱 큰 문제”라며 “화학물질 중독에 대한 감시 체계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곧 완료되는 3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및 폐 손상자 현황 조사에서는 가정이 아닌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회사, 학교, 사무실 공간에서의 피해 사례가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 교수는 “가정 외 장소에서의 피해 사례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며 “사례가 많지 않지만 병원명과 호흡기 질환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례도 있어 추가 쟁점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