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성전자에 있을 때 ‘중국이 반도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영역은 5년 이내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경고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습니다. 실제로 중국이 급부상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요? 한국이 중국을 이기려면, 한 세대 앞선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자축하며 그 덕분에 국민이 희망을 찾는 분위기가 이어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을 보세요. 너무나 조용합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별명이 많다. 1985년 IBM에서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돼 ‘반도체 신화’를 일궈내면서 ‘미스터 칩(반도체 사나이)’으로 불렸다. 1987년 이사, 1992년 상무, 1995년 부사장으로 초고속승진한 그는 2000년 삼성전자의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을 맡으면서 ‘미스터 디지털’ ‘디지털 전도사’를 자처했다. 2002년 그는 삼성전자가 3년 내 소니의 브랜드 파워를 따라잡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그의 공언은 현실이 됐다. 2003년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에 발탁된 그는 ‘참여정부 혁신의 아이콘’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장관 재직 중 한국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IT839 전략’과 ‘유비쿼터스 코리아(U-korea) ’ 프로젝트를 수립했고 세계 최초의 휴대인터넷 ‘와이브로’와 DMB(Digital Mulimedia Broadcasting) 사업을 주도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서울시 강남구 카이스트소프트웨어 대학원에서 만난 진 전 장관은 거대 기업 수장이나 부처 사령탑으로 사업과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경북 의령 출신인 그는 붉은 셔츠를 입은 마른 체격에 도수가 낮은 안경을 끼고 소탈한 어법으로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의 눈썹 위로는 안타까움이 계속 흘러갔다.

진 전 장관은 “PC 중심의 유선인터넷에서 스마트폰 중심의 무선인터넷(모바일)으로 가는 시점에서 한번 삐끗한 후 한국이 계속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새 기술을 주도하며 북치고 장구치고 해야 하는 데 왜 안하나. 요즘은 한국이 IT강국인지 별로 안쳐주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2006년 10월 IT 기업 투자 전문회사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중소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진 장관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대제AMP(최고경영자과정)도 운영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자서전 ‘열정을 경영하라’를 줬다.

◆ 참여정부 '혁신의 아이콘'...승부수는 ‘IT839’

― '미스터 반도체'라는 별명이 참 멋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삼성전자에는 스타 CEO들이 꽤 있었습니다. '황의 법칙(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현 KT 회장)', '미스터 휴대폰(이기태 전 삼성전자 사장)'도 스타 CEO였습니다.

“1983년 삼성이 64K D램 개발에 성공합니다. 삼성과 현대가 1980년대 반도체에 도전한 덕분에 IT발전이 시작됐지요. 삼성전자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도 후발주자로서 1위하면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죠. 그걸 ‘반도체 DNA’ 라고 불러요. 그 역량이 다음에는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상용화’로 이어졌고요, 정부도 정통부를 출범시켜 CDMA를 표준으로 채택하는 등 과감한 의사 결정을 합니다. 1980,90년대에는 무모한 도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자동차 엔진을 가져보자고 해서 현대가 ‘알파엔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도전은 파급 효과가 큽니다.”

―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발탁됩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이틀 후인 27일엔 개각이 있었죠. 개각 당일인 25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국민이 향후 10~15년 먹고 살 거리를 정보통신부에서 만들어볼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정통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신문에서 정통부 장관 유력 후보로 제 이름이 보름 가량 오르내리기는 했습니다만, 당일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지요.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주지 않길래 '잘 알겠다'고 수락을 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이건희 회장을 모시면서 매일 고민했던 것이 3~5년 후 삼성의 미래먹거리였는데, 국가를 위해 고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날 오후 3시에 임명장을 받으러 청와대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오후 3시에 임명장을 받고 오후 5시에 정보통신부가 있는 과천 청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6시 삼성전자에 사표을 제출했지요. 바로 다음날인 28일부터 정통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삼성전자 내에서는 깜짝 놀랐죠."

― 노 대통령이 삼성전자 출신 사장을 장관에 임명한 계기가 있습니까.

"2003년 2월 모 협회(무역협회로 기억합니다만)에서 주최한 조찬 모임에서 삼성전자 사장으로서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나는 중국이 반도체 분야를 제외하고 5년 내에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그 발표자료를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입수해 노무현 대통령께 보고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노 대통령께서 처음에는 '진대제는 중국이 우리를 따라와서 큰 일 났다고 했다더라. 국민을 겁주는 사람이 장관 자격이 있나'라고 했다고 해요. 문 실장이 일주일 후에 또 추천하며 '문제점을 아니까 해결책도 아는 것 아니겠냐'고 하며 노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해요. 조각하는 당일 연락이 온 것도 이런 과정 때문인 것 같아요."

2007년 8월 서울시와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서울 메트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휴대 인터넷(와이브로)과 게임체험이 가능한 노트북을 장착한 'e-트레인'을 운영했다. e-트레인에 탑승한 승객들이 도우미들의 설명을 들으며 체험시간을 가지고 있다.

― 입각한 후에는 정보통신부 사상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웠습니다. IT839라는 정책도 만들고요.

"대통령 미션이 대한민국 먹거리를 만들라는 것이었으니, 고심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업무 관할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와 싸우기도 했구요.

정책의 원칙은 종합적인 정보통신 육성 정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통신 회사를 세우는 수준을 뛰어넘는 종합대책 말이지요. 그래서 나온 것이 20여개 서비스를 육성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대통령이 20여개 서비스라고 하면, 국민 입장에서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국민이 들으면 딱 알 수 있게 이름을 붙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온 게 ‘IT839’입니다.

IT839는 8대 신규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동력을 지칭하는 것입니다.'8'은 8가지 핵심서비스(2.3㎓ 휴대인터넷, 위성·지상파DMB,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RFID, W-CDMA, 지상파DTV, 인터넷전화), '3'은 3가지 핵심 인프라(광대역통합망, U-센서 네트워크, Ipv6 도입), '9'는 9대 신성장 동력(차세대 이동통신, 디지털TV, 홈네트워크, IT SoC, 차세대 PC, 임베디드 SW, 디지털콘텐츠, 텔레매틱스, 지능형로봇)을 의미합니다. 이 IT839를 통해 2007년 연간 생산 380조원, 수출 1100억달러의 성과를 내 보자는 게 목표였죠."

― 왜 IT839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까.

“10년~20년을 앞서가려면 획기적인 것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엔 디지털TV, 휴대폰, 로봇, 시스템반도체 등을 묶어서 9개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랬더니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통부에서 늘 하던 거라 새로울 게 없었던 거지요. 곰곰이 생각하니 IT 쪽은 네트워크 비즈니스이지 않습니까. 늘 서비스가 함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TV 쪽을 일으키려면 디지털 방송 서비스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디지털TV를 사죠. 일종의 가치 사슬을 만들자는 겁니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선행하는 서비스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와이브로(휴대인터넷), DMB, 디지털TV, 텔레매틱스, 3G통신서비스 등 8대 신규 서비스였습니다.

서비스가 잘 되면, 인프라가 절로 형성됩니다. 사업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인프라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광대역 망 등을 구축할 거라는 게 제 예상이었습니다. 8개 신규 서비스를 하면 3개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9개 신성장동력이 선순환적으로 돌아간다는 거죠.

2006년 9월 13일 경기도 분당 야탑동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열린 `2006성남우수상품박람회` 현장. 이 행사에서 마련한 `U-HEALTH` 전시관에서는 IT와 BT를 결합한 첨단 의료기기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대통령은 힘을 실어줬습니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기각되고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고 처음 참석한 외부 행사가 IT839와 유코리아 발표대회였습니다. 행사를 보고 노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IT839로 국민소득 2만불로 키우고 IT산업도 딱 2배로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할 때 진 장관을 꼭 데리고 가셨지요.

“대통령이 네달란드, 독일, 브라질 등 해외 순방을 가면 항상 제가 수행을 했어요. 그 때가 우리나라 IT 전성기 같아요. 한국하면 IT였으니까. 당시 룰라(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한국에는 부러운 게 두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교육, 또 하나는 IT라고요.

솔직히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가면, ‘자원 좀 달라’고 부탁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노 대통령이 제 옆자리에 앉아서 절 딱 쳐다보면서 ‘회담 중 IT 관련 얘기가 나오면 우리가 뭐 도와줄까라고 한 마디 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필리핀에 인터넷 센터 짓는 데 300만불 정도를 지원했어요. 당시 필리핀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이 직접 행사에도 오셨죠.

정통부 장관 중에서 저처럼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장관도 없을 겁니다. 제 이전에는 정통부 장관이 순방에 참여한 적이 거의 없고, 제 이후에는 정통부가 아예 없어져서 장관이 대통령을 따라갈려고 해도 못갔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6년 3월 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와이브로와 DMB 시연장에서 와이브로 시연을 하고 있다.

― 가까이 지켜보니 노 대통령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인가요.

“노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약자를 돕는 것이었어요. 가난한 사람, 노약자, 여성 다 해당될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치적으로도 노력했고, 또 수도권보다 지방이 약하다 해서 지역 균형 발전 등의 정책에도 힘쓰셨었죠. IT에 관해선 저와 생각이 달랐지만 애착이 많아서 IT 관련 행사도 잘 참석하셨습니다. 로보트를 보여주면 대화를 해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고 관심이 많으셨죠.”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통부가 해체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제가 직접 인수위를 찾아사 정통부가 없어지면, 문제가 많을 거라고 했습니다. 정통부가 없어지면 IT의 본류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봤죠. 굳이 정통부를 없애야겠다면, 청와대 혹은 산자부 안에 IT컨트롤 타워라도 만들라고 조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통부 해체는 좋은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현재 미래부는 여러 면에서 정통부보다 힘이 약화돼 있습니다. 정부의 힘이란 게 예산과 법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법률도 다 흩어져 있던 걸 모은 거라 예전만 못하다고 봅니다. 정통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도 쪼개져 있고요. 소프트웨어 관련 부서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속해 있고요. 예전엔 정보통신발전기금이 2조원이나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일을 벌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미래부는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은 IT라는게 특정 산업이 아니라 하나의 기간산업화 된게 맞아요. IT를 중심으로 한 창조경제를 하려면, 국가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IT 839같은 걸 만들어야 합니다. IT가 서비스와 인프라 성장동력이 되려면, 성장동력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가치 사슬을 어떻게 만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통일, 안보, 복지, 에너지, 교육 수준으로까지 로드맵이 나와야 합니다.”

◆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와이브로가 힘을 받았을 텐데 아쉬워

― 장관으로 재직 시절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2006년 지방선거에 나가지 않고 끝까지 정통부 장관을 했다면 ‘와이브로(고속 이동 중 사용할 수 있는 휴대인터넷)’가 이렇게 처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와이브로는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먼저 나왔고, 우리나라가 국제 표준을 주도해 세계 최초로 기술 개발에 성공했었지요. 아, 그때 정통부 장관으로서 좀 더 와이브로를 밀어붙였다면 국제 표준이 돼 있고 기반도 쌓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정부는 기업처럼 밀어붙이는 게 좀 약하다 보니 흐지부지 돼 버린 게 사실입니다.”

2006년 3월 26일 경기도 수원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열린우리당 입당식에서 진 전 장관(왼쪽)과 정동영 당의장(오른쪽)이 함께 서 있다.

― 2006년 정통부 장관 재임 중 경기도지사는 어떤 계기로 출마하게 되신 겁니까.

“당시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워낙 인기가 없으니까 서울이나 경기도 지방선거에 출마해주기를 희망하더라고요. 이후 2007년 대통령 선거도 있으니 전환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정치인들은 지방선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이후 선거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득표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더라고요. 이번 선거에 안 되더라도 여러가지 정책을 발표하는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저야 될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출마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방선거는 당 지지율을 뛰어넘기 어렵고요. 다만, 득표율로 봤을 때는 열린우리당 내에선 광주 시장 다음으로 제가 높았습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웃음)”

― 중국 IT 위상이 날로 높아집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단순 IT제조업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도 인구가 줄어 고령사회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고급 제조’ 분야에 뛰어들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브랜드, 한류를 이용한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창의적인 컨텐츠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인적 자산이 중요합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교육제도도 다 손 봐야 하고요. 재원이 한정돼 있는데 복지제도로 돈을 다 쓰고 나면 자원 확보를 어떻게 합니까. 예산을 불필요한 데 쓰지 않도록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등 숙제가 부지기수로 많을 것입니다. 이대로 10년, 20년 흘러 가면, 우리나라도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 스마트폰 시장도 성숙기가 와서 성장 속도가 정체된 상태입니다. 삼성전자도 고민이 깊죠. 또 삼성전자라는 한 기업에 매달려 있는 중소기업이 엄청나게 많은데요. IT뿐만 아니라 바이오 등 국가 전체에서 힘을 들여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은 바이오라든가 셰일가스가 나와서 다시 부활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안 보이죠.”

◆ 벤처 캐피탈 만든 이유는

2007년 진 전 장관은 벤처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는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SIC)의 대표로 취임했다. '삼성 경영자와 정통부 장관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구리 알 수준의 국내 벤처기업을 온전한 개구리로 성장시키는 생태계 정원사가 되겠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 대표가 2010년 9월 27일 서울 도곡동 본사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투자전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경영자에 이어 장관, 이번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인생 3막을 열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생태계는 어떤가요.

“우리나라에서는 똑똑한 인재가 중소기업을 회피합니다. 소위 스카이 출신도, 박사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중소기업은 좁은 국내 시장만 겨냥하고 글로벌 전략에 대해 잘 모릅니다. 성장에 한계가 있고 대기업에 예속돼 버리는 이유가 다 여기 있습니다. 단순히 벤처 기금 마련하고 투자해주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생태계에 있으니까요. 저는 두 가지 일을 합니다. 기업에 투자하는 일, 기업인을 교육하는 일입니다. 진대제AMP(최고경영자과정)를 통해 수백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정부 규제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규제라는 게 다 나쁠까요. 규제는 필요해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밸런스(균형)를 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규제가 너무 강해져도, 개발이 너무 과열돼도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정부는 이 밸런스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했던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면 나홀로 공장이 생기겠죠. 공장을 위해 길을 만들고, 오·폐수 배출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면 돈이 더 많이 듭니다. 공장을 만드는 데 기업이 들어가도록 정부가 유도를 해야 되는 거지, 그린벨트를 무작정 푸는 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규제를 없애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반도체 시장은 더 커질까요.

“전 세계 시장 규모가 4000억달러~5000억달러에 20년 간 머물러 있습니다. 시장 자체는 더 커지지 않습니다. 반도체 쓰임새가 크게 늘어났지만, 여러 반도체를 하나에 구현하는 기술 덕분에 시장 규모 자체를 늘지 않는 것입니다. MP3플레이어, 전자앨범 등이 스마트폰 속으로 다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복지, 바이오 등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겁니다.”

2003년 5월 30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정통부 워크숍에서 진대제 전 장관이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발표를 하고 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2003년 취임하자마자 "모든 보고를 민간기업처럼 파워포인트(프레젠테이션용 소프트웨어)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파워포인트는 기업의 보고, 회의, 발표에서는 기본이지만 당시 정보통신부 관료 중에서 파워포인트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의 지시 때문에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던 과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은 파워포인트를 새로 익히느라 늦은 밤까지 일하곤 했다.
진 전 장관이 파워포인트를 도입한 덕에 부처에는 '보고와 지시'가 아닌 토론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보고자가 쟁점을 프레젠테이션하면 토론을 벌이고 결론을 내린다. 또 진 전 장관은 IT 성장엔진의 발굴에 관심을 보이며 새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감성 로봇과 텔레매틱스·임베디드 소프트웨어·컴퓨터그래픽스 등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또 진 전 장관은 대개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시작하던 브리핑 관례를 깨뜨렸다. 2004년 6월 유비쿼터스 코리아(U-korea) 추진 전략 보고 당시, 진 전 장관은 별다른 서론 없이 “u코리아 전략에 대해 보고하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운을 뗐다. 기업인 출신답게 브리핑 실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정통부가 잘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오늘 와보니 이 정도로 잘하는 줄 몰랐다”고 진 전 장관을 공개적으로 칭찬했을 정도다.

진 전 장관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성격 탓에 처음에 원칙과 관례를 중시하는 간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4년 동안 끌었던 디지털 TV 전송 방식 논란을 간단히 매듭짓는 등 “과연 얼마나 갈까”하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또 산·학·연 협조 체제를 구축해 세계 최초로 무선휴대인터넷(와이브로)을 개발하고 삼성전자 재직 시절 쌓은 글로벌 인맥을 적절히 활용해 IBM, 인텔, HP 등 해외 IT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