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증거와 메신저 정황 증거 모두 ‘미흡’

공정거래위원회의 6개 은행 양도성예금증서(CD)담합 조사가 ‘심의절차종료’로 싱겁게 결론 났다.

심의절차종료란 공정위가 사건의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위반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혐의와는 향후 재조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과징금과 시정명령 등 제재가 없다는 점은 같다.

공정위는 지난 2012년 은행들의 야후 메신저 대화내용을 정황증거로 확보했지만, 이후 이렇다할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4년 동안 ‘헛바퀴’를 돌려온 셈이다.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 공정위 전원회의서 ‘증거불충분’ 판단...은행에 제재 못내려

6일 공정위와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012년 7월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농협은행-SC은행 등 6개 은행이 3개월물 CD발행금리를 담합한 정황을 포착하고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어 2013년 8월까지 자료를 검토하고 시장동향을 파악한 후 2013년 9월과 2014년 8월 추가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어 올해 2월 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고 지난달 22일, 29일 두차례에 걸쳐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국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심의절차종료로 결론냈다.

심의절차종료와 무혐의의 차이점은 전자는 향후 재조사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 주심을 맡은 김석호 공정위 상임위원은 브리핑에서 “무혐의와 심의절차종료는 둘 다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며 “현재 상태로서는 조사가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심사관들은 피심인(은행)들이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CD금리를 ‘금융투자협회에서 전일 고시한 수익률 수준으로’ 발행하기로 한 것으로 답합 추정했다.

담합 추정을 위해서는 피심인들의 행위의 ‘외형상 일치’와 그 행위를 공동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당한 개연성(정황)’이 있어야 한다.

공정위 심사관은 2009년을 기준으로 은행들의 3년물 CD par(표면금리와 동일한 수익률)발행 비율 평균이 46%(2007~2008년)에서 89%(2009~2015년)로 높아졌다는 점을 외형상 일치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공정위 전원회의 심판정에서 은행들은 “CD발행 시점이 은행마다 다른데 수년간의 평균수치를 들고 담합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또 심사관들은 은행들이 ‘발행시장협의회’를 꾸려 야후 메신저를 통해 상호간 의사 연락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들은 “메신저에서 CD에 관한 언급은 있었지만, 문맥상 담합의 증거가 될만한 부분은 없었다”고 심판정에서 주장했다.

아울러 은행채와 CD발행형태가 2009년 전후로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담합의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은행들은 “은행채와 CD는 발행규모-만기-수요처 등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심의위원들이 지난달 29일 전원회의에서 사실상 은행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 상임위원은 브리핑에서 “은행간 CD 발행시점의 격차가 최장 3년9개월이나 났다”며 “또 은행간 평균 발행금리 차이도 80~98%까지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메신저를 통해 은행원들의 CD관련 대화가 있었지만, 담합을 확인할만한 대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며 “그리고 해당 모임에는 CD발행을 담당하지 않는 자도 포함됐으며, 지방은행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김석호 공정위 상임위원이 지난 5일 세종시 공정위 청사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은행들 “당연한 결과”...4년간 명확한 증거도 못찾은 공정위

이런 결정에 은행들은 반색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특히 공정위는 지난 2012년 첫 조사에서 야후 메신저 증거를 확보한 후 4년이 지나도록 명확한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2일 심판정에서 한 은행관계자는 “공정위가 금융시장 현실과 CD금리의 성격을 전혀 모른다”고 면박을 줬다.

공정위의 전문성 부족에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이에 대해 최영근 공정위 카르텔총괄과장은 “조사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협의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해왔다”며 “금융관련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공정거래법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하다. 단지 금융 전문성 부족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은 “과거 일부 은행들의 외환 스와프 담합과 생명보험사의 보험금 답합 등 금융관련 처벌 사례도 많으니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