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계획에 대한 심사를 '불허'로 결론내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SK텔레콤 내부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CJ헬로비전의 아날로그 방송을 디지털로 전환해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와 2강 구도를 만들려던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대규모 콘텐츠 투자 약속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KT,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들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서둘러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들은 "당분간은 이동통신사가 케이블방송 업체를 넘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 "이동통신사들은 각자 보유한 인터넷TV(IPTV)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다른 기회를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유료방송 1위 KT와 '2강 구도' 꿈 물거품…"대책 고심 중"

SK텔레콤(017670)은 5일 입장 자료를 내고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M&A 이후 대규모 콘텐츠·네트워크 투자를 통해 유료방송 시장의 도약에 일조하고자 했던 계획이 좌절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4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에 발송한 심사보고서에서 "두 회사의 결합으로 국내 방송·통신 업계에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주식양수금지와 합병금지 명령을 내렸다. 아직 공정위 전원회의 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심사보고서의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SK텔레콤은 "공정위는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 합병법인이 출범할 경우 권역별 유료방송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가 강화될 우려가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왔다"고 설명했다.

당초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한 뒤 올해 상반기 중 완전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을 합병할 계획이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M&A 계획을 발표하면서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법인에 향후 5년 간 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SK텔레콤은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CJ헬로비전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사용하고, 주문형비디오(VOD)·초고화질(UHD) 방송 등 부가서비스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해 디지털 가입자를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CJ헬로비전 유료방송의 디지털 전환율은 60%대에 머물러 있다. SK텔레콤은 이를 5년 간 90% 이상으로 끌어올려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에 대적한다는 계획이었다.

이형희 SK텔레콤 MNO 총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CJ헬로비전 인수 후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올해 5월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KT와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의 가입자 점유율은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29.34%를 차지했다. 가입자 수는 KT가 510만1944명(18.31%)으로 가장 많고, CJ헬로비전(382만3025명·13.72%)과 SK브로드밴드(335만6409명·12.05%), 티브로드(325만1449명·11.67%), KT스카이라이프(307만4234명·11.03%)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의 가입자 수를 합치면 약 718만명이 된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KT(KT스카이라이프 포함)와 가입자 수로도 한판 붙어볼 만하다고 판단했으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KT의 독주 체제가 더욱 굳어져 사업자 간 경쟁 촉발을 통한 서비스 개선의 기회가 저해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SK브로드밴드의 콘텐츠 투자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SK브로드밴드는 올해 3월 서울 을지로 T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콘텐츠 산업 활성화와 생태계 조성을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합병법인은 총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제작사와 관련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불허 결정으로 이 계획도 무산 위기에 놓였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합병이 성사될 것을 전제로 발표했던 계획이기 때문에 앞으로 잘 추진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시장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에 대해 불허 방침을 정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 당황스럽다"며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여러가지 후속 대책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이 올해 3월 서울 을지로 T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합병법인의 콘텐츠산업 투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표정 관리하는 KT·LGU+…"통신·방송 결합 움직임 다시 나타날 수도"

이번 M&A를 강하게 반대해 온 KT와 LG유플러스도 공정위의 불허 방침에 놀란 눈치다. KT(030200)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조건부 승인'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았는데 막상 공정위가 불허 결정을 내리자 다들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두 회사는 말을 아끼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국내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들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가 무산된 이상 당분간은 이와 비슷한 M&A 시도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M&A 계획을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회사가 KT와 LG유플러스"라며 "두 회사는 케이블방송사 인수 의지가 있더라도 여론을 의식해 당장 행동에 나서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T와 LG유플러스(032640)는 공정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듯 "기존 사업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KT는 IPTV 서비스 '올레tv'를 운영하고 있고, LG유플러스는 기존 IPTV 서비스와 더불어 지난해 6월 새롭게 선보인 'LTE비디오포털'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이동통신 3사 모두 인터넷 기반의 IP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서비스 품질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결국 통신과 방송의 결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케이블방송 사업이 저성장 침체기에 빠져들어 관련 사업자들이 탈출구를 찾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를 끝까지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해 1월 21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6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왼쪽)과 황창규 KT 회장의 모습. 두 최고경영자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결합을 앞장서서 반대해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2015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의 매출은 2014년보다 3.7% 감소한 2조259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IPTV 사업자들의 매출은 같은 기간 28.3% 증가한 1조9088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IPTV 콘텐츠 사업자들은 전년도 대비 333.1% 증가한 265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방송 전문가들은 특히 유료방송 수신료 매출에서 IPTV가 지난해 케이블방송을 처음 넘어선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유료방송 수신료는 유료방송 시청자가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비용이다. 지난해 IPTV의 수신료 매출은 전년보다 25% 증가한 1조50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유료방송 전체 수신료 매출(2조7885억원)의 54%에 해당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케이블방송의 수신료 매출은 3.7% 감소해 9405억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경제학과)는 "통신이나 유료방송 모두 기본적으로는 가입자 수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이동통신 3사는 케이블방송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M&A 매물에 앞으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시간이 좀 지나 분위기가 잦아들면 이번과 같은 움직임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