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연세대 교수 특별기고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 보편화 되면서 이혼율도 증가했다. 이혼이 점점 더 흔한 일이 되면서 부부는 결혼생활에 대한 노력을 덜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이혼율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악순환이다.

지금까지 리스본 조약 50조(EU 탈퇴 절차 규정)를 적용해 유럽연합과 '이혼'한 주권국가는 없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결되면서,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에서는 이혼에 대한 토론이 정당화 됐다.

브렉시트는 2008년 리먼 사태 이후로 세계금융 시장을 가장 놀라게 한 이벤트다. 금융위기 당시 사람들은 금융권의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을 우려했고, 그 불확실성이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았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이혼은 유럽 정치권의 체계적 위험을 통해 불확실성을 다시 키운다. 앞으로 영국의 뒤를 따를 유럽 국가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실시된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유럽연합에 대한 비 호감 여론은 네덜란드에서 46%, 독일과 영국에서 48%, 스페인에서 49%, 프랑스에서 무려 61%에 이른다.

내년 상반기에 프랑스 대통령 선거, 하반기에 독일 연방 선거 등을 앞두고 벌써 유럽연합과 이혼을 주장하는 후보자들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브렉시트의 경우 국민 여론은 정치인들의 발언, 영국 하원 의원의 살해, 언론사들의 편들기 등에 의해 크게 흔들렸다. 세계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유럽연합과의 이혼이 얼마나 쉽고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알게 됐다. 유럽연합 회원 국가들에게 지속적인 협력과 타협을 요구하는 회원국 증가, 연방 연합 체제 등 유럽연합의 장기목표들은 벌써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에 대한 강한 지지가 확인됐다. 이에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유럽연합의 강고함을 재확인하는 이벤트로 역사에 기록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예측 아래 캐머런 정부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안으로는 당을 결속시키고, 밖으로는 유럽연합으로부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 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극적으로 가결됐다. 선거 날 아침에 금융시장은 부결 전망을 반영했으며, 영국의 도박 매체들은 브렉시트 부결 가능성을 80% 이상으로 잡고 있었다. 브렉시트 가결 운동에 앞장 선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마저도 선거 날 부결을 예측했다.

결국 국민 투표를 통해 런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부결’, 영국의 나머지 지역들은 ‘가결’로 뚜렷한 의견 차를 보여줬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영국과 이혼한다는 이야기도 다시 거론 되고 있다. 캐머런의 정치적 도박은 결국 그를 완전히 굴욕에 빠지게 했다. 그의 사임은 당연하다. 그의 어긋난 도박은 앞으로 영국 역사, 유럽 역사를 얼마나 바꾸게 될까.

브렉시트 이후로 한국은 단기적으로 수출과 금융시장, 외환시장에서의 한정된 글로벌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주요 수출 대상이자 외국인직접투자(FDI)의 목적지인 유럽연합의 불확실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일컫는 그렉시트(Grexit) 등을 다루며 이런 불확실성에 익숙해져 있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는 서로 다른 이슈지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유사했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럼에도 브렉시트를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그리스보다 더 중요한 경제국가가 유럽연합과 아예 이혼 결정을 내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