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 가능성이 낮은 꼬리 위험(tail risk)에 불과한 듯 보였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 됐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지난 23일(현지시각) 브렉시트 여부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끝난 후 현지시각으로 24일 오전 6시까지 진행된 개표 결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진 사람들의 비중은 전체 투표자의 52%로 반대 48%를 약 4%포인트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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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투표 전날까지 치러진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로존 잔류를 택한 국민이 52~55% 정도로 브렉시트 지지 의견을 약간 앞섰다. 영국 석간신문 '이브닝 스탠더드'가 21일부터 22일 오후 9시까지 159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EU 잔류를 지지하는 응답자가 52%, 탈퇴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48%로 나타났다. 또 다른 온라인 여론 조사에는 잔류가 55%, 탈퇴가 45%였다.

영국 베팅업체들도 ‘잔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베팅정보사이트 '오즈체커'의 실시간 집계에 따르면 이날 투표 결과를 알아맞히는 종목을 개설한 업체 11곳 가운데 9곳이 잔류보다 탈퇴 배당률(수익률)을 낮게 책정했다.

브렉시트 논란의 시작부터 국민투표 찬성 배경, 그리고 국내 전문가들의 전망까지 정리했다.

◆ 英 보수당이 제안한 브렉시트 국민투표…중산층 반(反)EU 정서 자극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는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24일(현지시각) 밝혔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은 지난해 5월 열린 총선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승리했지만, 1년 만에 같은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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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은 작년 5월, 영국 보수당이었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작년 총선 때 "2017년 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제위기 이후 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반(反) EU 정서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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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민들은 왜 EU에 반감을 갖게 됐을까. EU가 추진하는 경제통합 때문에 폴란드 등 동유럽의 EU 회원국 주민들이 대거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영국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의료 혜택, 실업 수당과 같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열풍은 같은 배경에서 기인했다는 시각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1980~1990년대 전세계 소득 상위권을 차지하던 선진국 중산층들이 세계화로 자유무역, 이민이 활발해지면서 개발도상국에 비해 소득 증가가 정체되자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며 극단적인 정책에 호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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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에 빠진 세계금융시장...환시·증시 '패닉'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외환시장에서는 파운드화 가치가 장중 한때 10% 이상 폭락하면서 1985년 이래 최저치인 파운드당 1.35달러를 하회하기도 했다. 유로화도 한때 1.0913달러까지 내려갔다. 유로화 환율이 하루 만에 4% 가까이 내린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중국 위안화 환율도 역외시장에서 0.5% 하락한 달러당 6.6186위안을 기록했다. 이는 5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반면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유럽연합 잔류 기대감에 상승 개장했던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폭락세로 돌아섰다. 이날 일본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 종가보다 7.92% 폭락한 1만4925.02에 마감했다. 토픽스 지수도 7.26% 추락한 1204.48에 거래를 마쳤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3.09% 떨어진 1925.24로 마감해 가까스로 1900선을 지켰다. 코스닥 지수는 장중 7%대까지 낙폭을 키웠다가 4.76% 하락한 647.16에 마감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2.30% 떨어진 8476.99로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오후 3시 3분 기준 4.64% 하락한 1만9901.85에,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79% 빠진 2869.09에 거래되고 있다. 유럽 증시는 폭락세로 장을 시작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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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전자산인 국채와 금 가격은 일제히 치솟았다.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0.09%를 기록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국채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국채 가격 올랐다는 의미다. 혼란스러운 시장 상황을 틈타 금값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금 현물가격은 이날 12시 50분 온스당 1358.54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예상 가격이었던 1300달러를 훌쩍 넘긴 것이다.

반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일제히 내렸다. 전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8월 인도분은 배럴당 50.11달러에 거래를 마쳤지만, 브렉시트 공포에 짓눌려 5.21% 하락한 47.50달러까지 떨어졌다.

◆ 엔고에 아베노믹스 ‘직격탄’...“원화약세 우리 수출에는 도움”

일본 아베노믹스는 '브렉시트 직격탄'을 맞게 됐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막대한 양적완화를 통해 꾀했던 엔화약세(엔-달러환율 상승) 효과가 소멸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장중 6.7% 폭락, 오전 한때 99.01엔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 2013년 11월 이후 2년 7개월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00엔대가 무너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신흥국 통화들과 마찬가지로 원화약세(원-달러 환율 상승)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9.70원 급등한 1179.90원에 장을 마쳤다. 이번 상승폭은 지난 2011년 9월 14일 기록했던 30.50원 상승 이후 4년 9개월만에 최고치다. 이날 장중 고점은 1180.30원, 저점은 1147.10원이었다.

이 같은 환율만 놓고 본다면 부진의 늪에 빠진 수출 경쟁력 회복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전망이다. 원화가치 하락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같은 물건을 더 싸게 팔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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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 “금융시장 영향 오래가지 않을 것”

전문가들의 금융과 실물에 대한 장·단기 전망은 대체로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먼저 금융시장에 대한 견해를 보면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내려가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1~2주가 지나면 금융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주 짧은 시간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김경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외국인 자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29%에 달하는 데 영국계 자금이 미국 다음으로 많다”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금융시장은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단기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연구원도 장기적으로는 “국내 은행의 외화유동성 여건이 개선되면서 대외 충격의 불안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금융시장에 악재가 생기면 안전자산 선호와 신흥국 자본 유출 현상이 일어난다”면서 “한국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고 환율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 영향도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을 때보다는 적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자본 유출은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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