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미각이란 존재하지 않아… 맥도날드로 포장하면 당근도 맛있다고 느껴
맛있어도 망하는 작은 '맛집'들… 시스템으로 무장한 대기업 당할 수 없어

최근 스타벅스 등 브랜드 커피숍에서 콜드브루 커피를 선보였다.

지난 주말, 여름 볕이 내리쬐는 선릉역 주변 거리를 노닐다 모 대기업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았다. 요즘 대세라는 콜드브루 커피를 맛보기로 했다. 인상적이었다. 쓴맛은 적고 달착지근한 맛에 미묘하게 다른 커피향이 흥미로웠고, 설탕을 넣지 않았음에도 부드럽게 혀를 감싸며 넘어가는 용액의 점도 역시 재미있었다.

맛이 뛰어나다고 경쟁에 승리하는 게 아니다

굵게 분쇄한 원두를 차가운 물로 14시간 추출해서 만드는 커피와 뜨거운 물에 대기압의 9-10배에 이르는 압력을 가해 추출한 커피의 성분과 맛은 확실히 다르다. 오랜 시간 추출하면 물에 녹는 성분들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녹아나온 원두 속의 당분과 수용성 섬유질은 콜드브루 커피 특유의 맛과 질감을 준다.

오늘 아침엔 뜨거운 캡슐 커피를 마셨다. 주말에 맛본 콜드브루 커피를 다시 마셔보고 싶었지만, 집에서 나가기 귀찮았다. 원고를 마쳐야 하니 얼른 잠부터 깨우고 싶었다. 하루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카페인의 양적 한계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세 잔째를 넘어가면 정상적인 수면에 지장이 생긴다.

남은 한 잔을 어떤 커피로 선택할 것인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오후에 어디에 있을 것이며, 누구를 만날 것인지, 보너스 쿠폰을 사용할 것인지, 맛으로 커피를 마실 것인지 아니면 졸림을 방지하기 위해 마실 것인지에 따라 결정이 내려질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끝이다. 어떤 커피를 마실 것인지는 내일의 문제가 된다. 사람의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과 음료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 빵집과 카페가 들어와도 걱정할 게 없다. 맛있기만 하면 작은 가게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종종 들리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을 먹고 마실 지를 선택하는 데는 맛 이외의 수많은 다른 요소가 관련된다. 맛이 뛰어나다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다. 다이어리와도 경쟁해야 하고, 사이렌 오더와도 경쟁해야 하고, e-쿠폰과도 경쟁해야 하고, 무료음료 리워드와도 경쟁해야 한다.

절대 미각은 환상! 우리는 모두 상대 미각의 소유자들

그래도 우리가 '절대 미각'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가리고 맛본 콜드브루 커피가 바리스타가 추출한 것인지 야쿠르트 아줌마가 판매하는 원액에 물을 탄 것인지 알 수 있다면 말이다.

음식 맛만 봐도 재료와 배합 비율을 파악하고, 조리법을 유추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맛있는 가게만 찾을 것이고 작은 ‘맛집’들이 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절대적인 입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맛에 대한 느낌(perception)은 음식의 이름, 포장, 색깔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모두는 상대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맥도날드 로고가 찍힌 감자튀김을 더 맛있다고 느낀다.

포장지에 음식을 싸두는 것만으로도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은 3세부터 5세까지의 아동 63명을 대상으로 음식 포장이 맛의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햄버거, 치킨 너겟, 감자 튀김, 우유, 그리고 당근을 두 가지 다른 포장으로 준비했다. 한쪽은 음식물을 맥도날드의 로고가 찍힌 포장지와 컵에 담았고 다른 쪽은 아무 표시가 없는 일반 포장지와 컵에 담아서 어린이들에게 시식하도록 한 다음, 어떤 것이 더 맛있는지 물어보았다.

더 맛있게 느낌을 주는 건 익숙한 포장

결과는 맥도날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아이들은 거의 모든 경우에 맥도날드 포장재를 이용한 음식들이 더 맛있다고 대답했다. 똑같은 감자튀김이었는데도 아이들 가운데 77퍼센트는 맥도날드 포장지에 담아낸 것이 더 맛있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일반 포장에 담은 감자튀김이 더 맛있다고 대답한 아이들은 13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 중 54퍼센트는 맥도날드 포장지로 싼 당근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맛있다고 응답했다. 일반 포장에 싼 당근이 더 맛있다고 느낀 아이들은 23퍼센트에 불과했다. 치킨 너겟과 우유의 경우도 각각 59퍼센트와 61퍼센트의 아이들이 맥도날드 포장에 싸인 음식을 더 맛있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맛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맛있어서 문제다. 대기업이 만든 콜드브루 커피도 충분히 맛있다. 그 맛이 컵에 찍힌 로고 때문이었는지, 쾌적하게 구성된 공간 때문이었는지, 편리한 위치와 주문체계 덕분이었는지, 커피 자체의 맛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들을 구분해도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느끼는 맛이란 그 모든 게 합쳐져서 느껴지는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위장에는 한계가 있다. 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면 다른 곳에서 또 마실 수 있는 여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작은 가게들이 커피 맛으로만 승부수를 걸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기업 커피전문점이 평균적인 커피 맛을 끌어올려주었다고 칭찬해줘야 할까, 아니면 맛이 획일화된다고 비판해야하나. 깊어가는 고민에 커피 맛이 쓰다.

◆ 정재훈은 과학,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강한 잡식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